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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명품백 조사 국장 사망, '진상조사 안 한다' 못박은 권익위원장

일부 위원들도 "외압 의혹 근거 없다" 동조하기도... 강훈식 "외압 진상조사 필요"

등록|2024.10.08 17:07 수정|2024.10.08 17:09

▲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10.8 ⓒ 연합뉴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위원장이 지난달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조사하던 A부패방지국장의 죽음과 관련해 "진상조사는 하지 않겠다"라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유 위원장은 진상조사가 "시급한 일이 아니다"라는 기존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A국장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외압이 없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회의에선 A국장의 죽음에 관한 의혹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 유포"라거나, A국장의 과거 발언과 행동이 "월권이다",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A국장 사망 이후 권익위 내부 회의에서 개진된 자체 진상조사에 대한 공식 방침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철환 위원장 "진상조사 안 한다"며 곧바로 폐회

<오마이뉴스>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지난 9월 9일 제17차 권익위 전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유 위원장은 A국장 사망 사건에 외압이 없었다며 자체 진상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뒤 곧바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날 전원위는 오후 3시부터 4시 25분까지 5층 전원위 심의실에서 열렸고, 유철환 권익위원장과 정승윤 부위원장을 비롯한 상임·비상임위원 등 12명이 참석했다. 회의록 발언자는 모두 익명으로 처리됐다.

유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제가 국회에서도 여러 번 답변했지만 외압은 없었다"라며 "제가 그동안 있었던 법원에서, 또 변호사를 하면서도 제 의견을 부하 직원이나 다른 분한테 강요한 적이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A국장 죽음의) 경위나 과정도 과도한 업무도 스트레스로 다 나왔는데 추가적으로 진상조사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22년간 판사를 지낸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9대 권익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유 위원장은 이어 "제 나름대로 고인과 가까운 분들과 고인과 같이 근무했던 분들의 제보와 의견 청취를 통해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라며 "야당으로부터 저와 우리 OOO 위원님(정승윤 부위원장으로 추정)은 공수처에 고발돼 있으니까 거기서 결론 내는 게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상조사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자체 조사는 시급한 일이 아니다"라고 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상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못 박은 것이다.

▲ 국민권익위원회 ⓒ 국민권익위원회


이날 회의에서는 일부 위원이 "A국장이 상급으로부터 압력이나 부담을 가진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진상조사위원회 자체를 우리가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부 진상조사까지 해야 한다는 건 외부의 허위사실 유포로 우리가 흔들리는 게 아닌가"라며 자체 진상조사에 반대하기도 했다.

또 "(권익위) 위원들에게 고인께서 뭐라고 얘기를 했다든가 인사 관련 좌천 논란 등이 있는데 다 근거가 없다고 본다", "고인께서 (명품가방 수수 사건) 종결에 반대한 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직접 하셨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도 위배될 수 있다"라며 숨진 국장의 과거 발언과 행동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강훈식 의원 "진상조사 필요성 더 강력해져"

이 같은 발언들은 앞서 한 위원이 A국장 사망 관련 자체 진상조사 필요성을 제기하자, 그에 대해 반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위원은 이날 회의 말미에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진상조사는 당연히 했으면 좋겠고 그것을 기초로 해서 직무 독립성 방안도 마련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이 위원은 앞서 8월 26일 제16차 전원위 회의에서도 "지난 전원위원회에서 국장 죽음과 관련해 위원장께 자체 진상조사 방안과 권익위 직원의 직무독립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드렸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8월 12일 제15차 전원위 회의록에서 유 위원장으로 추정되는 위원은 "다음 전원위에서 (진상조사 필요성에 대해)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으나, 유 위원장은 국회 정무위 출석으로 16차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17차 회의에서 관련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관련 기사: [단독] 권익위 복수 위원, '국장 사망' 자체 진상조사 요구... 위원장 최종 '불가' https://omn.kr/2a4ds)

▲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 강훈식 의원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 유 위원장이 '나름대로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외압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진상조사 필요성은 오히려 더 강력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권익위는 지난 6월 10일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위반 사항이 없다며 종결 처리했다. 이후 8월 8일 권익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로 일해오던 A국장이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김 여사 사건을 비롯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응급헬기 이송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조사를 지휘해 왔다.

야당은 권익위 국장 죽음과 관련해 유철환 위원장과 정승윤 부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상태다. 두 사람은 8일 현재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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