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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슬픈 한국어강사 "언제든 잘릴 수 있다"

한국어교원 절반은 월 수입 200만 원 미만, 88% "가족·지인에게 이 일 추천 안 해"

등록|2024.10.09 19:13 수정|2024.10.09 19:13

▲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한글 자음·모음 활자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언제든지 잘릴 수 있고, 다음 계약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안고 일한다."

5년 넘게 국내의 여러 사립대 어학당에서 일해온 한국어교원 김아무개(34)씨는 3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쓴다. 김씨는 이런 근로 형태가 노동 의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학생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오마이뉴스>에 제공한 한 서울 유명 사립대 근로계약서에는 실제로 "학생 수의 변경 등의 사유로 담당 강의 시간이 없을 경우, 별도의 통보 없이 자동으로 위촉 계약 종료 및 해촉 처리한다"라고 나와 있다. 김씨는 과거 코로나19로 인해 학생이 줄었다는 사유로 계약을 해지당했다.

한국어교원 55.4% "월 200만 원 미만 받아"

국내 외국인 체류자가 250만 명(2023년 기준)을 넘어서면서 한국어교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지만 정작 한국어교원 절반이 넘는 55.4%는 월 200만 원 미만을 받으면서, 3개월 미만의 초단기 계약(62.4%)을 강요받는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추진위원회와 한국어교원협회 준비위원회가 한국어교원 524명을 대상으로 8월 26일부터 9월 13일까지 19일간 진행한 노동 실태 설문조사 결과다.

김씨는 대학이 쪼개기 계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발생하는 주휴수당이나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는 현재 월·수·금은 A대학 어학당에서, 화·목은 B대학 어학당에서 하루에 4시간씩 수업한다.

A대학에서 주 12시간, B대학에서 주 8시간을 나눠 일하다 보니 한 곳에서 주 15시간 이상을 근무해야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다.

한국어교원이 가장 주목 받는 한글날, 정작 김씨는 이러한 '쪼개기 계약' 때문에 법정 공휴일을 유급 휴가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어교원 93.4%가 지난 1년간 연차 휴가를 사용한 적 없다고 응답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어학당 학생들은 이전과 같거나 더 많은 돈을 내고 하루치 수업을 손해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어 시험을 보기 위해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는 시급으로 계산하지는 않지만 그간 암묵적으로 해왔다"면서 "그런데 어학당에서 시간 외 업무를 금지하면서 출제와 채점도 강의 시간에 포함시켜 버려 시험 기간을 3일로 만들고 그중 하루를 채점 시간으로 빼버렸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 대학에 쓰기 시험에서 주관식과 서술형 채점을 시간 외 업무로 보고 모든 쓰기 시험을 객관식으로 만들어 주관식과 서술형을 없애버렸다"라면서 "문제를 제기하면 대학에서는 그 문제를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선택한다"라고 지적했다.

불안정한 한국어교원의 노동 환경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가곤 했다. 김씨는 "품위 유지 위반 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운동화를 신거나 청바지를 입는 것도 금지돼 있다"라면서 "한국어교원이 늘어나면서 '너 아니어도 다른 애 있다'는 식으로 대우해 마치 부품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사명감도 있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언제든 계약이 종료될 수 있고 수업 시간 외에 보장받을 수 없는 불안함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만든다"라고 전했다.

한국어교원 88.1% "가족이나 지인에게 한국어교원 추천하지 않겠다"

▲ 한국어교원대상 설문조사 결과 열에 아홉(88.1%)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한국어교원을 추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자료사진) ⓒ sincerelymedia on Unsplash


이들은 대부분 대학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강의를 하고 필요시 행정 업무도 한다는 점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이 명백하나 법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일부 한국어교원들이 행동에 나섰다.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어교원협회(준) 등은 올해 한글날을 맞아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지난 8일 국회에서 '한국어교원 노동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창용 한국어교원협회(준) 위원장은 지난 8월에 열린 세계한국어교육자 대회에서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한 말을 인용해 한국어교원의 현실을 알렸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용호성 차관은 '딸아이가 국문학 전공자인데 한국어교육을 부전공하라고 부추겼다. 딸도 나중에 한국어교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뿌듯하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전혀 달랐다. 한국어교원 열에 아홉(88.1%)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한국어교원을 추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국어교원의 91.2%는 여성이었다. 실제로 한국어교원의 절대다수가 여성으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한 김씨는 "한국어강사는 '결혼하고 애도 다 키워서 할 일 없는 여자가 하기 좋은 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한국어강사라면 누구든 정말 싫어하는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정도 급여로 가족이 먹고 살 수 없으니 맞는 말이 돼버렸다"라고 전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어교원 53.4%가 "(다른) 가족의 소득에 의지한다"고 응답했다.

김씨 외에도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국어교원 가운데 "면접 시 결혼 여부와 자녀 계획에 대한 질문(을 들었다)", "원서 작성 시 결혼 여부에 대해서도 작성(해야 했다)" 등의 증언이 다수 나왔다. 남성이 다수인 일자리에서는 나오지 않았을 부적절한 질문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여성의 일자리'라는 인식 속에 한국어 교원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8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국어교원 최희숙씨는 "최저시급은 2011년에 비해 두 배가 넘게 올랐지만 한국어교원의 시급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아 대다수 교원이 생계를 위해 두 기관 이상에서 수업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방학 동안에는 수업을 할 수 없어 다른 일을 찾거나 무급으로 생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극히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한국어교원이 뭉칠 수 있는 마땅한 노동조합 등이 없는 현실 속에서 9일 현재 한국어교원 100명가량이 소속된 한국어교원협회(준)는 직종별 노동조합 출범을 고민하고 있다.

다만 고용이 불안정해 해고 위협에 노출돼 있는 탓에 공개적으로 노동조합 가입이 어려운 한국어교원들을 위해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준) 등과 더불어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이창용 한국어교원협회(준) 위원장은 "어디에서 가르치든 한국어교원 모두가 덜 나쁜 노동 조건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정말로 멋지다는 자부심과 함께 가족과 지인에게 당당히 추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한데 모여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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