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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마지막회를 나 혼자 본 이유

장안의 화제라지만 나는 아쉬웠다

등록|2024.10.11 09:11 수정|2024.10.11 10:04
TV프로그램 중에서 유독 우리가족이 함께 보는 프로그램은 음악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성악도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팬텀싱어>는 단연코 우리 가족 최애 프로그램 이었다.

금요일 저녁 늦게 하는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함께 보면서 각자의 소감도 얘기하고 원픽을 골라서 각자 응원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새곤 했었다. 아들이 드럼 전공으로 드러머이고 딸은 뮤지컬 광이라 할 정도로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 유명한 대극장 뮤지컬은 물론이고 한 달에 한두 번은 뮤지컬을 볼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남편은 교회에서 나와 성가대로 합창을 한 지 30년이 넘었고 기타와 피아노는 기본으로 다루다 보니 우리 가족은 음악가족라 해도 맞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다 할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도 없고 또 각자 바쁘다 보니 가족들이 TV앞에 모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딸 아이가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요즘 핫하다는 얘길했다. 우리 가족은 주말 저녁 자연스럽게 TV앞에 모였다. 우리 가족의 두 번째 공통점이라면 '요리'이다.

남편은 한식조리사 자격증이있는 조리사이고 딸은 조리학과 출신으로 제과제빵자격증이 있어서 관련 직장에 다니고 있다. 아들은 의경으로 군에 있을 때 취사병으로 근무하고 제대했다. 나는 도시락 만드는 일을 하니 제대로 걸렸다. 그렇다 보니 어떤 프로그램일지 기대가 컸다.

첫회는 온가족이, 마지막회는 나 혼자

그간 요리를 본업으로 몇 십 년씩 해온 베테랑 요리사들과 요리가 좋아서 요리를 하는 비전문가(?)들이 흑백의 조리복을 입고 요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회차가 거듭되면서 그 수가 점점 줄더니 마침내 오늘 그 마지막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첫 회와 초반부는 온가족이 같이 봤는데 오늘 마지막 회는 나 혼자 보았다.

<흑백요리사>의 이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민망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검정색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요리를 하는데, 머리 위 2층 베란다 쯤에서 흰색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래를 향해 시선을 두며 구경하듯 내려다보는 장면이었다.

요리에도 계급이 있다는 걸까? 상위계급과 하위계급을 나눠서 굳이 경쟁을 하게 하면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웃어 줄줄 알았을까? 공중파가 아니니 그렇게 자극적으로 해도 되는 것일까? 자꾸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중간에 시청 이탈자들이 속출했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그랬다. 예전 음악프로그램은 다시 보고 다시 듣고 하면서 할 얘기도 많았고 심지어 갈라콘서트를 온 가족이 가서 볼 정도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누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았는지 정도만 알면 더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마나 많은 사람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똑같은 재료로 저마다 색다른 요리를 해내는 창의성에 놀랐다. 또 우승자를 비롯 대부분의 요리사가 남자란 점에 놀랐다.

몇 안되는 여자 요리사가 고분분투 하다 떨어지면 마치 내가 거절 당한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는 내게 놀랐고, 아들 뻘 되는 젊은 요리사들이 인터뷰할 때 거침없는 그들의 말투에 깜짝 놀랐다.

몇 만원씩 매겨진 요리를 그것도 서너 접시씩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먹어 보이는 먹방 유튜버들이 나오는 장면에도 나는 생각이 많았다.

나의 원픽

나의 원픽을 뽑으라면 에드위드 리 이다. 미국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요리사로 성공한 그였지만 본인이 한국인임을 알리고자했고 만드는 요리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넘쳤다.

그가 만든 그만의 해석이 담긴 비빔밥이라든가, 최종 회차에서 선보인 떡볶이를 이용한 디저트와 참외를 넣은 막걸리는 그의 인생 이야기와 섞이면서 정말 최고였다. 무엇보다 그는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요리를 할 때 늘 겸손한 모습이었다.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듯한 심사위원 앞에서 자기음식을 소개하며 "잡숴보세요~"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나는 좋았다. 그런 사람이 한식의 세계화에 이바지 할 적임자라 생각되었다.

오늘 공휴일이라 조금 늦게 출근하다 보니 평소 보지 못하던 '인간극장'을 보았다.
한 20분 보는 내내 시종 내입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보통의 젊은 부부가 시골에서 아기 낳고 한여름에 육아하고 살아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오늘 아침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인간극장의 한장면 보기만해도 행복해진다 ⓒ 임경화


오늘도 나는 나만의 요리를 시작한다. 알록달록 잡채와 근대 된장국 그리고 잘 익은 파 김치와 맛살을 넣은 숙주나물, 고소한 보리 새우볶음과 알싸한 취나물이다. 김치와 고기만두 한 알씩 쪄서 도시락에 담았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됐다.

▲ 행복한만찬의 고기잡채 도시락이다 ⓒ 임경화

덧붙이는 글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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