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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셰프도 이겼는데... '급식대가'가 고통 호소한 이유

[박정훈이 박정훈에게] 저임금·고강도·고위험에 시달리는 '능력자', 학교 급식 노동자들

등록|2024.10.11 13:23 수정|2024.10.11 13:23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 '급식대가' 이미영 셰프가 <흑백요리사>에서 요리를 만드는 모습. ⓒ 넷플릭스


"알배추겉절이에다가 수육에 쌈, 쌈장에 멸치고추장볶음에 육개장에, 매실청으로 이제 소스를 만들어가지고 수육하고 곁들어 먹으면 조금 느끼함도 없어지고."

정훈님, 요즘 장안의 화제였던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보셨나요? 저는 내로라하는 100명의 셰프가 모인 경연장에서 급식판이 등장하는 장면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깐깐하던 미쉐린(미슐랭)가이드 3스타를 받은 심사위원은 "추억이 떠오른다"라며 무장해제된 채 계속 먹더군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여느 유명 셰프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건, 바로 이 급식판을 구성한 '급식대가' 이미영 셰프였습니다.

이미영 셰프는 15년 경력의 학교 급식 조리사입니다. 경남 양산에 있는 하북초등학교에서 일하다가 지난 8월 정년퇴임했습니다. 아들이 권유해서 출연하게 된 <흑백요리사>에서 그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시청자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셰프들까지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가 오골계를 주제로 한 1:1 미션에서, 오골계 볶음탕을 만들어서 '백수저' 방기수 셰프의 오골계 찜국을 이기고 올라왔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방 셰프는 '시그니엘 서울'에 있는 한식당 비채나에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바 있습니다. 경남 한 초등학교의 급식 조리사가 한국에서 가장 높은 호텔에 있는 식당을 이끌었던 미쉐린 셰프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냈다니, 얼마나 대단하고 충격적인 일인가요?

아쉽게도 제작진은 두 사람의 경연 과정을 거의 편집하고 결과만 보여줬습니다. 이에 당시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유튜버 승우아빠(목진화 셰프)가 '안될과학' 유튜브 채널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습니다.

"급식대가님께서 현장에서 요리를 엄청 빨리 끝내셨어요. 그래서 다들 걱정했어요. 제한시간의 거의 3분의 1밖에 안 쓰시고 그냥 미리 만드시고 나머지 시간을 그냥 아무것도 안 하셨어요. 그걸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 더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다들 떨어지시는 거 아닌가?(생각했다)

근데 심사평에서 '요리가 만들어지고 식는 과정 중에 맛이 안으로 다시 배어들어 가서 더 맛있어졌다'는 얘기가 나온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셰프들이 '나는 요알못이다'(라고 탄식했다)... 급식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퍼가는 거잖아요. 이거는 이미 다 계산을 하고 만드신 거다. 그게 항상 해오시던 노하우이기 때문에, 또 이제 조림류다 보니까 그게 맞거든요."

▲ <흑백요리사>에서 '급식대가' 이미영 셰프를 소개하는 웹포스터 ⓒ 넷플릭스


<중앙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이미영 셰프와 조리실무사 두 명이 매일 120인분의 점심을 책임졌다고 합니다. 120인분을 하던 이가 1인분을 하는 건 비교적 쉬웠을 겁니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24일 MBC 표준FM <여성시대 양희은, 김일중입니다>에 출연해서 "적은 양이 쉽다. 많은 양을 만들 때는 조금 실수할 때도 있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1:1 미션 이후 그가 본인만의 요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탈락한 것이 아쉬움이 남는 이유입니다.

그는 <흑백요리사>에서 탈락이 확정되자마자 심사위원인 백종원씨 앞에서 "가서 이제 밥해야겠습니다. 애들 밥해줘야겠습니다"라면서 웃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그는 많은 사랑을 받는 조리사이기도 했습니다. 배식 도중에 아이들에게 "감사하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편지를 받는가 하면,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맛있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하북초 홈페이지에 올라온 2023년학년도 학교급식 만족도 자체 분석 결과표를 보면 "나는 우리 학교 급식을 좋아한다"는 항목에 학생의 98%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비빔국수처럼 매운 음식은 1~3학년과 4~6학년용 양념을 따로 만들고, 수육 소스는 새우젓 대신 양파소스로 대체한 노력을 아이들이 알아봐 줬던 겁니다.

학교 급식노동자, 이렇게 일합니다

▲ 급식실에서 재료 준비를 하고 있는 이미영 셰프 ⓒ 급식대가 유튜브


그러나 이미영 셰프가 일했던 환경은 여느 학교 급식 노동자들처럼 녹록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그는 "조리실 여건이 이전보다 나아졌어도 아직 개선할 점이 남아있다. 여름에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뜨거운 물이나 불 앞에 서면 너무 덥다"(<경남도민일보 인터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훈님도 노조 활동을 해서 잘 아시겠지만, 학교 급식 노동자는 아이들의 성장과 건강을 책임져주고 한 번에 100인분 이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들임에도 그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 2일 부산노동권익센터가 발표한 '부산지역 대규모 학교급식 노동자 안전보건실태조사(607명 조사)'에 따르면 10명중 8.6명이 근골격계질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또한 노동 강도에 대해 '매우 힘듦 이상'으로 응답한 이가 48.4%로 과반 가까이 됐습니다. 조리 종사자(조리사, 조리실무사) 1인당 평균 급식 인원수도 115명이나 됐습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울은 1인당 급식인원이 100명 이상인 학교 수가 95%(부산 91%)가 넘었습니다. 서울대병원 등 주요 공공기관 급식노동자가 1인당 65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인력이 부족합니다.

또한 부산 학교 급식 노동자의 26.4%가 최근 2년 건강검진에서 흉부 이상 소견 판정을 받았습니다. 실제 2022년 전국 학교 급식노동자의 87%를 검진해 보니 '폐암 의심'으로 나타나는 비율이 일반 여성(35세~65세 미만)에 비해 3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튀김, 볶음, 구이 과정에서 생기는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2023년 10월 기준, 폐암 산재를 신청한 급식 노동자는 158명입니다. 이중 117명만이 산재를 인정받았습니다.

▲ 급식 조리사 복장을 한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고 있다. ⓒ 남소연


게다가 노동 강도에 비해 월급은 적습니다. 학교 급식노동자의 기본급은 198만 6000원입니다. 기본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206만 740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방학 중에는 상여금 50만 원을 받을 뿐이고요.

저임금에, 기본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일에다가, 폐암 우려까지 겹치자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반면 신규 채용은 잘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기준 신규채용 미달률을 살펴보면 서울은 34%, 충북 57%, 제주 59% 등이었습니다. 올 초 서울 서초구의 A중학교에서는 조리실무사 2명이 전교생 1043명의 급식을 조리해서 '부실급식' 논란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당초 이 학교의 조리실무사 정원은 9명이었는데,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입니다.

학교 급식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서울시교육청은 3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시범적으로 15개교에 로봇팔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듯 합니다. <한겨레21>과 인터뷰한 영양사들은 "볶음 로봇(팔)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디테일한 부분을 따라가지 못하며", "튀김 로봇팔은 공산품 조리에 적합한 기기이기 때문에 직접 만드는 고기튀김, 야채튀김 등 수제튀김을 잘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업무 분담은 될 수 있지만 숙련된 인원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 급식노동자 등이 2022년 6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급식실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및 산업재해 예방 국정과제 이행, 학교급식실 적정인원 배치 등을 요구하며 '점심한끼 같이 먹읍시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이희훈


정훈님, 결국 현 상황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학교 급식 노동자의 처우와 환경 개선을 통해서 인력 수급을 원활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폐암 방지를 위한 환기 시설 개선은 물론이거니와, 현재의 저임금·고강도 노동의 구조를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급식실 종사자 건강보장 책임을 지도록 하고, 학교급식위원회에서 학교 급식 종사자의 1인당 식수인원과 산재 예방을 위한 시설 개보수와 처우 개선 등을 심의하도록 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정혜경 의원 대표발의) 등도 국회에서 하루빨리 논의되고 통과될 필요가 있습니다. 급식 노동자 처우가 개선되는 모습이 가시화돼야, 급식 노동자 부족 사태도 끝날 겁니다.

현재의 저임금·고강도·고위험 구조는 어쩌면 '밥'을 하는 일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그래서 급식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한국 사회의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힘든지도 간과한 채로 우리는 학교 급식 노동자의 희생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밥'을 결코 아무나 하지 않는다는 걸 <흑백요리사>에서 이미영 셰프가 보여줘서 다행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미쉐린 셰프 못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는 수많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영 셰프가 경연을 다 끝내고 남긴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성공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시민들의 관심이 <흑백요리사>의 '급식대가'를 넘어서, 더 많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성공한 여자'가 될 수 있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셰프'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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