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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급식대가'가 음식 내면서 꼭 했던 말은...

[인터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급식대가' 양산 이미영 조리사 "내 음식 평범할 뿐인데..."

등록|2024.10.10 15:55 수정|2024.10.10 16:04

▲ 올해 8월 30일까지 양산 하북초등학교에서 조리사로 일했던 이미영 조리사. 이 조리사는 최근 넷플릭스 인기작 〈흑백요리사〉에서 '급식대가'로 출연했다. 이 조리사가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 경남도민일보


최근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인기를 끌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방영해 입소문을 타고 누리소통망(SNS)에서 더 활활 불타올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를 '백'으로 재야의 고수처럼 무명이어도 실력이 출중한 요리사를 '흑'으로 분류했다. 백팀 요리사는 20명, 흑팀 요리사는 80명이 참가했다. 그중에 1등을 고르는 요리 경연대회다. 총 12회차 중에 나오는 음식부터, 참여자들의 개성, 심사위원들의 평 등 화제가 안 되는 것이 없다.

8일 마지막 화가 방송됐고 우승자가 나왔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우승자만 기억되는 프로그램이 아닐 것이다. 참가자들 중에 양산에서 20년 가까이 요리를 해 온 '급식대가'인 이미영(60) 조리사 또한 많은 관심을 얻었다. 최고급식당(파인다이닝), 중화요리 등 화려한 음식들 속에서 이미영 조리사가 내놓은 급식판을 반가워했다. 파인다이닝보다, 급식이 친숙하기 때문이다. 그의 식판 위엔 쌀밥, 육개장, 보쌈과 매실청을 곁들인 양파절임, 견과류와 고추장에 볶은 멸치, 맵지 않게 버무린 겉절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연소로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안성재 심사위원은 옛 기억이 난다며 야무지게 먹었다.

이 조리사는 흑팀 20명을 추리는 심사에서 생존했다. 이후 단체 과제에서 100인분의 음식 준비를 순식간에 끝내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더불어 '급식대가'는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의 궁금증도 커졌다.

퇴직 앞두고, 아들의 권유로 참여

지난해, 전국적으로 요리깨나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돌았다. 백종원을 필두로 한 요리 경연 대회가 열린다.' 우리나라 요식업계 대표 인물인 백종원이 심사를 한다고 하니 경쟁률은 서류 심사 때부터 치열했을 것이다. 프리랜서 영상 감독인 아들 강나루(33) 씨는 우연히 요리 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접했다. 그리고 양산 하북초등학교에서만 7년째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어머니 이미영 조리사를 떠올렸다.

큰 욕심을 품고 명성을 떨치자는 거창한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8월 30일 퇴직을 앞둔 어머니에게 조리사로 기념할 만한 일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간의 노고를 알기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도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유튜브 채널 <급식대가(School Chef)>를 개설해 영상을 올릴 계획을 세움과 동시에 어머니께 경연대회 참여를 권했다.

강 씨의 마음보다 더 소박했던 게 이미영 조리사의 마음이었다.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이 나설 텐데 처음엔 안 나간다고 했어요." 그렇게 기대없이 참가한 대회였다. 다만 요리를 즐겁게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긴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이다. 이 조리사가 <흑백요리사>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우리 아들이 엄마, 자꾸 기죽지 말라고"라고 말한다. 강 감독은 "서류 심사에서 합격할거라는 예상을 못 해서인지 방송 출연이 확정됐을 때 순간 놀라고 덩달아 긴장했다"면서 "실제로 임하는 엄마가 더 긴장하실까 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요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 이미영(오른쪽) 조리사와 그의 아들 강나루 씨./주성희 기자 ⓒ 경남도민일보


방송을 탄 후 최근 온라인에 급식대가의 음식이라면서 급식 사진들이 올라온다. 이 조리사도 그 사진을 봤다. 그는 "양산 하북초등학교 누리집에 오늘의 급식 사진을 게시하는데, 그걸 보는 것 같더라"라면서 "일부 내가 한 음식이 아닌 것도 있었다"며 신기해하면서 유명세를 여전히 적응하지 못해 난감하다고도 했다.

<흑백요리사>에 참여한 다른 요리사들은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지만, 퇴직한 이 조리사는 운영하는 식당이 없기에 궁금증을 더 할 수밖에 없다.

그가 방송에서 100인분을 순식간에 준비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가 급식실 조리실에서 일할 때는 전교생이 100명이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학교지만 교직원을 포함하면 하루에 120인분을 준비했다. 이 조리사는 조리실무사 1명과 함께 매일 이 일을 해냈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쫄면, 비빔국수, 물국수, 짜장면 등이다. 염도계를 사용하면서 염도를 맞춰야 하므로 최대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음식을 한다. 특히 쫄면은 케첩을 첨가하면 색도 내고, 맵지 않으면서 맛있게 낼 수 있다. 밥도 현미밥, 밤밥, 흑미밥 등 아이들 영양을 생각해서 내주었다.

이 조리사는 2005년 무렵 조리실무사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100인분 넘는 음식을 해내야 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래도 신체·정신적으로 적응하고 나선 즐겁게 하려고 했다. 체력을 유지하려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 운동도 열심히 했다. 지금도 하루에 3km씩 걸을 정도로 활동적이고 건강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서는 '무서운 조리사님'으로 통했다. 이 조리사는 "칼을 다루고, 뜨거운 물과 불 앞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정신 차리자'라고 하며 야단치기도 한다"면서 "일할 때는 무서운 편이다"라면서도 해맑게 웃었다. 이 미소는 오롯이 급식을 먹는 초등학생에게로 향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무지 즐겁거든요. 아이들 배만 채운다고 생각 안 했어요. 사랑도, 정성도 있어야죠."

이 조리사는 배식할 때 학생들 이름을 불러 가면서, '많이 먹어. 맛있게 먹어'라고 덧붙였다. 사랑을 담는 것까지 그의 요리이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하는 일정인데도 이르면 오전 6시 50분, 보통 오전 7시에 출근해서 그날 조리법을 고민했다. "일찍 와서 조리장을 환기하고, 환하게 불을 켜놓고 오늘은 무엇을 할지 준비를 해놔야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점심 배식을 끝내고 뒷정리를 마치면 오후 3시가 된다. 서류 업무도 하고, 내일 할 차림표를 보면서 할 일을 정리하는 게 그가 20년간 지켰던 일과였다.

방송 이후 바뀐 일상

▲ 유튜브 채널 〈급식대가(School Chef)〉에 게시된 영상 속 이미영 조리사의 모습 ⓒ 유튜브 갈무리


이 조리사는 아들이 만들어 준 유튜브 채널 <급식대가(School Chef)>에 게시한 영상에 달린 댓글을 전부 살펴봤다고 했다.

그중에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이들이 "조리사의 위상을 높여줘 고맙다"라고 한 댓글을 보고서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리실 여건이 이전보다 나아졌어도 아직 개선할 점이 남아있다"면서 "여름에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뜨거운 물이나 불 앞에 서면 너무 덥다"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절을 살아왔으니 퇴직하면 재충전 시간을 갖고 남편과 국내 여행을 떠날 참이었다. 가족끼리 '식당을 열까?'라고 의논했지만, 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조리사의 남편이 차를 몰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부부가 오전에 동네를 걸을 때도 항상 함께이기 때문이다. 또 고향인 강원도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분간 여행 계획은 미뤄야 한다. 방송 후 생각하지 못했던 외부 일정이 너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유명세'를 치르느라 바쁘고 낯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정이 있어 서울에 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건네거나 사인을 요청하기에 길거리를 그냥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다. 공항이나 지하철에서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는 이도 많다.

퇴직 직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던 방송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지금의 인기를 두고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오늘 양산 장이 열리는 날인데, 가봐야 하는데 못 가요. 배추 사서 김치 담아야 하는데."

모두를 응원하는 평범함의 힘

▲ 유튜브 채널 〈급식대가(School Chef)〉에 게시된 영상 속 이미영 조리사의 모습 ⓒ 유튜브 갈무리


이 조리사가 결혼 전 강원도에 살 때는 음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게 의외였다. 결혼하고 아들 2명을 양육하면서 제대로 요리를 하게 됐다.

강 씨는 "<흑백요리사>에 엄마가 출연한 걸 보고, 친구들이 놀라기도 했지만 부러워하기도 한다"면서 "어머니 음식은 정말 맛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 덕분일까, 강 씨도 더러 요리를 하면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조리사도 자신의 요리 솜씨가 어머니와 이모에게 비롯했다고 말한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전혀 안 했는데도 어떻게 잘하느냐고 물어오면, 강원도에서 살 때 엄마나 이모들의 훌륭했던 음식 솜씨가 떠올라요."

가족이 즐기는 음식은 불고기, 잡채, 된장찌개, 김치찜 등이다. 된장찌개는 식탁에 꼭 올리는 음식이다. 전형적인 한국 식탁이다. 그는 몇 번이나 "내 음식은 평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강 씨가 어머니를 찍은 영상에서 찾을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성실을 더하는 힘, 당연하게 여길 일에 매번 진심을 담는 노력, 내 곁에 있는 가족과 동료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매일 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 일을 20년 가까이 해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이 조리사가 '급식대가'로 존재해 보통 사람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고 동시에 보통의 우리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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