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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폭행 의혹, 부모의 갈등...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

[넘버링 무비 398]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등록|2024.10.11 17:01 수정|2024.10.11 17:01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위대한 감독 중 하나로 손꼽힌다. 대표작은 <페르소나>(1966). 극 중 두 인물을 통해 인격의 교환과 경계에 대한 모호성과 인간의 내면성에 대해 펼쳐 보였다.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를 연출한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은 바로 그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까지 수상하며 할아버지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다. 6살 소년 아르망의 엄마 엘리자베스(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아들의 문제와 관련한 긴급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소환된다. 회의에는 다른 학생의 부모 역시 함께 참석하기로 돼 있지만, 이 자리가 아들의 어떤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지에 대해서 사전적인 정보를 얻지는 못한 상태다.

한편, 신임 교사 순나(테아 람브레크츠 베울렌 분)는 이 회의를 진행해야 할 임무를 맡는다. 교장은 그에게 학교를 대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견이나 개인적인 입장을 최대한 멀리하라고 주문하지만, 순나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또 다른 학생 욘의 부모인 사라(엘렌 도리트 페테르센 분)와 앤더스(엔드레 헬레스트베이트 분)가 학교에 도착하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아들 아르망이 욘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02.
"어린애잖아요. 아직 어린애라고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긴장은 아르망이라는 소년으로부터 시작된, 아니 어쩌면 소년이 받고 있는 오해로부터 시작된 양측의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소년이 받는 폭력에 대한 의혹이 '오해'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아서다.

문제를 제기한 욘의 부모 역시 아들인 욘의 진술에밖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며,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나선 학교 측 역시 다른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에게도 사건을 제일 먼저 발견한 교내 청소부의 진술이 전부다. 그 진술 또한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 피해자로 여겨지는 욘의 진술에 기대고 있다.

이제 양측의 대결은 허상 위에서 벌어진다. 아들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 가야 하는 사라와 앤더스. 그리고 역시 아들 아르망을 학교 폭력 가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의 주장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엘리자베스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이 사건의 당사자인 두 소년을 카메라 앞에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각자 아이들의 진술을 두둔하기만 하는 진창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하나, 어린아이들을 소비하고 전사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또 하나다.

이제 남는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양측의 갈등을 점차 쌓아나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사건의 중재자이자 학생의 처분권을 갖고 있는 학교 측이 필요해진다. 이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의 힘에 기대기 위한 학부모 측의 접근 역시 이 과정에서 행해진다. (신임 교사인 순나의 어리숙함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하나, 처음에는 감춰져 있던 사실 하나가 초반부를 지나며 이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친한 친구 정도로, 사생활의 영역에서는 완전히 분리돼 있을 줄 알았던 엘리자베스와 사라 가족이 훨씬 가까운 관계라는 것이 드러나면서부터다.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잠깐 영화 바깥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작품에서 감독이 분위기를 형성해 가는 방식에 대한 부분이다. 초반부의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먼저 도착한 엘리자베스가 욘의 부모를 불안하게 기다리던 모습,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화면을 채우기 시작하는 장면, 가끔씩 울리던 화재경보기의 오작동 소리. 대체로 이 상황들은 관객들이 바라보고 있는 프레임 바깥쪽, 외화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팽팽해지기 시작한 극의 긴장감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의 또 다른 긴장을 부여하는 식이다. 외화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컷 내부의 장치는 영화 전반에 걸쳐 여러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카메라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물이나 상황의 답답한 심리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쓰인다. 화면비 자체를 바꿔 관객이 처음부터 갑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첫째다. 기본비가 아닌 4:3과 같은 가로가 좁은 화면비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2014)가 그랬던 것처럼 인물의 심리를 투영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숏의 구성이나 위치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오버 더 숄더 숏(Over the shoulder shot)을 쓰고 있다. 어느 인물 할 것 없이 마주하고 있는 상대의 어깨를 화면에 걸어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갑갑하게 만든다.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상대의 어깨와 프레임의 틀 사이에 갇히게 되는 식이다. 풀 숏처럼 넓은 장면에서 거는 것도 아니고, 미디엄 클로즈업 이상의 숏에서 걸어버리니 실질적으로 카메라가 바라보는 대상은 좁은 공간 속에서 표현된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숏이 어깨에 걸린 채로 등장하는데, 답답한 나머지 위자 위에서 자세를 몇 번이나 고쳐야만 했다.

04.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뤄야 해요."

다시 극 안으로 들어오면,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입장은 더 단단해지기만 한다. 협상이나 탈출 전략은 찾아볼 수 없다. 거짓을 이야기해서라도 자신의 주장이 옳은 것이 돼야만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를 위해서 지금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모두 들춰진다. 없었던 일도 사실이 된다.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절대적 진실의 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과장과 두려움, 오해와 고집의 자리가 점차 커져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순나는 비공개 면담의 내용을 동료 교사인 파이잘 선생에게 토로하고, 그 일은 다시 학교에 모인 다른 학부모들에게까지 전달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욘의 부모가 따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영화가 감춰둔 또 하나의 클라이맥스에 가깝다. 플롯 상의 클라이맥스가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이라면, 이 지점은 내내 이어져 왔던 영화의 갈등이 어디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짓과 입장의 강화가 어떤 모습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또 그렇게 이미 지나쳐 온 진실을 두 사람이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보자면,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의 가장 큰 목적은 인간의 거짓에 대한 탐구와 상처를 갖지 않으려는 본능적 행동에 대한 관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무엇보다 이 작품 속 레나테 레인스베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2)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행복을 만끽하던 모습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연기다.

일방적인 불신과 비난에 맞서 3분이 넘게 멈출 수 없는 웃음으로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던 초반부 교실 신은 어떤 선언과도 같다. 이 작품에서 맡은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에 대한 연기가 결코 연약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선포. 그리고 그는 클라이맥스 시퀀스를 포함한 몇 번의 장면에서 인물의 내면을 격렬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해낸다.

첫 작품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은 뛰어난 성취를 보여줬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뒤를 이을 재능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보다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뚝심 있게 밀어붙일 줄 아는 힘이다. 결코 쉽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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