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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가 어디 갔지? 경북 봉화 청정 계곡의 비밀

맑은 물에 저서생물은 '0'... 낙동강 최상류 계곡에 무슨 일이

등록|2024.10.11 11:20 수정|2024.10.11 15:24

▲ 낙동강 최상류 협곡 ⓒ 정수근


▲ 낙동강 최상류 협곡 ⓒ 정수근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은 자줏빛이고 강물은 맑다"는 뜻으로 청정계곡의 모습을 이르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런 광경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낙동강 최상류 협곡이다. 특히 봉화군 승부리 승부역에서 소천면 양원역에 이르는 6㎞ 구간은 사람도 살지 않는 청정 대자연에 속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이곳은 트레킹 구간으로 이름이 높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힐링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이 구간은 민가도 없고 인적도 드물어 평일 찾아가면 물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산새 소리뿐 문명의 소음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다.

가을 낙동강 협곡을 따라 걷다낙동강 최상류는 협곡입니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그 협곡을 따라 걸었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가득한 그곳은 천국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특히 봉화 승부 ~ 양원 구간이 아름답습니다. 그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시길 바랍니다 ⓒ 낙동강 수근수근TV


산자수명(山紫水明) 청정 낙동강 협곡의 비밀

이렇게 산 좋고 물 맑은 이 구간에 비밀이 하나 있으니 이 청정계곡엔 다슬기뿐 아니라 그 어떤 저서생물도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은 맑아 물고기는 있으나 강바닥 생태계는 절멸했다.

물살이 세지 않은 곳 돌 표면엔 다슬기나 우렁, 날도래류 같은 물벌레 저서생물들이 수도 없이 살기 마련이지만 이곳의 돌을 뒤집어 보면 생물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 때문일까?

▲ 저 청정계곡에 다슬기를 비롯한 저서생물이 보이지 않는다. ⓒ 정수근


비밀의 열쇠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게 된다. 승부역이 있는 이곳에서부터 상류 8㎞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 청정계곡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완전히 이질적인 모습이 펼쳐져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산자수명과는 전혀 다른 청정계곡에 들어선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영풍제련소). 도대체 이런 협곡에 어떻게 저런 거대한 공장, 그것도 일반 공장도 아닌 중화학공업단지에나 들어설 법한 공단 규모의 거대한 공장이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 낙동강 최상류 협곡 사이에 이질적으로 들어선 영풍석포제련소 ⓒ 정수근


▲ 낙동강 협곡을 초토화 시킨 영풍석포제련소 ⓒ 정수근


공장 주변의 산만 봐도 정상이 아니다. 푸르름을 넘어 자줏빛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곳의 자랑인 금강송 군락지는 그 빛을 완전히 잃어 잿빛이다. 금강송 군락이 죽어 나무와 식물이 고사하고 그것을 넘어 산 자체가 흘러내렸다.

그 상태가 낙동강의 강물 속에서도 재현돼 저서생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벗어나 상류로 조금만 올라가 보면 거기에는 다슬기가 바글바글한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에서 불과 20㎞ 하류 낙동강 최상류 협곡은 이렇게 영풍제련소 때문에 공기·토양·수질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 낙동강 최상류 협곡에 들어선 영풍석포제련소. 이 위험한 공장 때문에 낙동강 최상류 산천이 초토화되고 있다. ⓒ 정수근


▲ 영풍제련소 1, 2공장 뒷산의 금강송이 대부분 고사해 버렸고, 산지 자체가 심각하게 산성화되어 흘러내리고 있다. ⓒ 정수근



100개가 넘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가 공기를 오염시켜 산의 나무와 식물을 죽이고 오염수가 강으로 흘러 다슬기 같은 저서생물의 씨를 말려버렸다.

이런 사실은 지난 2018년 영풍석포제련소의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 주도로 발족한 민관협의체 기구 '낙동강 상류(영풍제련소~안동댐) 환경관리협의회'가 밝혀냈다.

반세기 넘게 가동된 위험천만한 공장, 이제는 낙동강을 떠나야

1970년부터 가동된 이 위험한 공장의 뿌리 깊은 공해의 역사가 이곳에서부터 90㎞ 하류의 안동댐까지 다슬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죽음의 환경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21세기인 아직까지 해결되고 있지 않다.

생명은 연결돼 있다. 자연이 병들고 죽어가는데 인간 사회라고 무사할까. 그것이 아니란 사실이 최근 속속 밝혀졌으니 지난해 겨울부터 이 공장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죽었고 다수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고통받고 있다. 이 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1997년 이후 밝혀진 것만 15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29일 영풍제련소 대표이사가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관련기사: '중대재해' 영풍석포제련소 대표이사 등 구속 https://omn.kr/29za3).

영풍제련소는 뒤늦게 수천 억원의 예산을 들여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고 폐슬러지 적치장을 처리하고 공장 굴뚝 감시 장치를 증설하는 등 오염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주변 산천은 이미 임계점을 지난 채 죽음의 수렁에 빠진 지 오래다. 이곳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죽음의 영풍석포제련소 즉시 폐쇄하라!", "영풍은 즉시 낙동강을 떠나라"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이유다.

▲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영풍석포제련소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 정수근


▲ 낙동상 최상류 산천을 초토화시키고 노동자 사망 사고를 연이어 일으키는 영풍석포제련소 장례 퍼포먼스를 벌이는 환경단체 활동가들 ⓒ 정수근




환경부가 지난 2022년 12월 영풍석포제련소에 103개 허가 조건(세분류 235건)을 단 통합환경허가를 조건부 승인해 구사일생으로 3년의 유예기간을 받아냈지만, 그 후로도 계속되는 환경 오염에다가 노동자 사망 사고까지 일어났으니 이 심각한 공해 공장이 더는 이곳에 존속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 낙동강 최상류 협곡을 살리기 위해서도 영풍석포제련소는 낙동강을 떠나야 한다. ⓒ 정수근


저 맑은 청정계곡에 너무나 이질적으로 들어와 자리 잡은 영풍석포제련소. 저 위험한 공해 공장만 없다면 낙동강 최상류는 온전한 협곡의 모습으로 명실상부한 청정지역으로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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