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배역' 곽동연·이순재, '63살 나이차' 극복한 비밀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같은 대본이지만 다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 (주)파크컴퍼니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출연진이 공개되었을 때, 필자는 그저 놀라웠다. 원로 배우 이순재가 캐스팅된 것도 그랬지만, 이순재보다 63살이나 어린 곽동연이 같은 배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역 배우들이 무대에 오를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용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제 의식을 계승한 오마주한 코미디극이다.
필자는 지난달 이순재의 공연을 관람했다. 극에서 이순재가 연기하는 에스터는 오랫동안 무대에 올라갈 날을 기다려온 노배우였다. 공연을 보고 난 후 궁금해졌다. 과연 곽동연의 에스터는 어떤 모습일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최근 곽동연의 공연까지 관람했다.
다른 설정 보여준 곽동연의 '에스터'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 (주)파크컴퍼니
6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한 비밀은 '다른 설정'에 있었다. 이순재의 에스터는 노배우라면, 곽동연의 에스터는 젊은 꼰대 배우였다. 연극에는 '밸'이라는 인물이 추가로 등장하는데,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의 대역 배우다. 배우에 따라 에스터와 밸의 관계나 호칭도 달라진다. 밸은 노배우 에스터에겐 '선생님'이라고 호칭하고, 젊은 꼰대 에스터에겐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늙은 에스터와 젊은 꼰대 에스터는 살아온 세월이 다른 만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곽동연의 에스터는 이순재의 에스터보다 몸을 더 격렬하게 사용하고, 동선이 다양하다. 이는 곧 러닝타임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이순재의 공연은 약 80분, 곽동연의 공연은 약 90분 동안 진행된다.
두 배우가 연기하는 에스터는 각기 어떤 매력을 뽐낼까.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제작사인 파크컴퍼니 관계자는 "두 배우의 연기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미묘한 차이도 있는데, 곽동연 배우의 공연은 좀더 에너제틱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순재 에스터는 원숙함과 경건함이 느껴졌다면, 곽동연의 에스터는 유쾌함과 발랄함이 묻어났다.
엔딩 장면 역시 다르다.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려온 에스터와 밸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한다. 이때 곽동연의 에스터와 밸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장면을 시연하고, 그렇게 연극은 막을 내린다. 반면 이순재의 에스터는 공연 시작과 동시에 고개를 떨군다. 노배우의 죽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지름길은 없다"며 기다리는 게 자신의 일이라는 에스터의 말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동시에 이들의 기다림은 연극을 보는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관객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말이다.
세부적인 설정은 차이가 있지만, 연극의 주제 의식은 변함없이 굳건하다. 아직 오지 않았으며,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것이 에스터와 밸에게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속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였다.
이순재, 곽동연과 각각 호흡을 맞추는 배우는 각기 다르다. 이순재와 호흡을 맞추는 '밸'은 뮤지컬 배우 카이, 그룹 샤이니의 멤버 최민호가 연기하고, 곽동연과 호흡을 맞추는 '밸'은 박정복이 맡는다. 무대조감독 '로라'는 각각 박수연과 정재원이 맞는다. 공연은 오는 12월 1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이어진다. 지난 10일 이순재가 건강 문제로 이날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는데, 그가 건강을 회복해 다시 무대 위에 오르길 바란다.
▲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공연사진 ⓒ (주)파크컴퍼니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