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생 어르신도 "재밌다"는 수업의 정체
나이를 잊고 마음을 나누는 글쓰기 수업... 어르신들을 응원합니다
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기자말]
일주일 동안 찾은 글감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려보시라 말씀드렸다. 쓰는 건 와서 해도 되니 쓰는 데 부담 갖지 말라 했는데 한 바닥 가득 써오신 분도 계셨다.
어떻게 망설임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이 생각났다. 비행사였던 작가의 자전적 소설에서 왜 어르신 글쓰기의 자신감이 생각났을까.
▲ 야간비행생텍쥐베리 초반에 나온 문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 최은영
이걸 읽어도 되겠는지 모르겠다는 분께 이 화면을 먼저 띄우면서 내가 먼저 말했다.
"제가 이 화면을 왜 준비했을까요?"
나는 다음 화면을 띄웠다.
▲ 내인생풀면 책 한 권생텍쥐베리 야간비행이 수업과 이렇게 연결됐다 ⓒ 최은영
머뭇거리던 어르신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셨다. 지난 시간에 제목으로만 나왔던 '그것이 첫사랑이었을까'가 교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것이 첫사랑이었을까. 라고 끝난 글에 다들 '첫사랑 맞네요~'라며 박수가 나왔다. 지난 시간에 계절감을 나타내는 문단이 한 줄 정도 들어가면 글의 서정성이 살아난다고 했더니 잊지 않고 이런 문장도 써오셨다.
▲ 계절감을 드러낸 한 문단강사 이야기를 너무 잘 반영해 주신 어르신 ⓒ 최은영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신 있게 본인 글을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이었다. 그 불빛의 부름에, 아니 그 글자들의 부름에 감동 받는 건 어르신들 동년배에서나 그럴 줄 알았다. 아니었다. 1941년생 어르신이 가방에서 곱게 접은 갱지를 꺼내실 때부터 이미 내게도 선물 보따리가 준비된 것 같았다. 갱지를 선물처럼 찬찬히 풀어보고 싶어졌다.
▲ 어르신의 숙제지금은 보기도 힘든 갱지에 직접 줄을 그어서 만든 노트 ⓒ 최은영
잠깐씩 떨리는 목소리에 다 같이 녹아들었다. 다를 것 없는 일상이 특별함으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어느 하루가 교실 앞에 가지런히 서 있었다. 우리는 그 하루 안에서 나이를 잊고 마음을 나눴다.
이렇게 잘 쓰시는데 안 쓰면 어쩔 뻔했냐면서 나는 다음 주도 기대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 주제도 이미 정하셨다고 한다. '복지관'을 주제로 쓰신다고 했다. "그런 주제라면 혹시 지나가는 행인1로 저도 나오나요?"라고 했다가 다 같이 웃음이 터졌다.
41년생 어르신이 '이 수업 재밌네' 하신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재밌으면 다 된 거 아닌가. 재미있으면 더 들여다보게 되고, 더 들여다보면 더 잘하게 되는 게 이치다.
새롭게 이어질 '글자들의 부름'을 기다린다. 어르신들 각자가 쌓아올린 시간이 더 빛날 수 있도록, 그 한 몫의 용기를 더 챙겨드리고 싶어지는 수업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참고도서 : 더클래식, 생텍쥐베리 <야간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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