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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K-문학이다

등록|2024.10.13 17:01 수정|2024.10.13 17:01

▲ 지난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림원은 올해 노벨 문학상에 한국의 한강 작가를 수상자로 발표했다. ⓒ Nobel Prize SNS 갈무리


가을이다. 일몰 후 천 변의 물소리는 어제보다 청량하고 푸른 하늘에 붙어있는 별들도 더욱 초롱초롱하다. 논두렁 사이로 걷는 소가 여유롭게 거닐고 하루 나 절 맑은 햇살로 못다 익은 벼들이 누렇게 출렁인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천고마비란 가을을 품은 표현으로 풍요와 삶의 여유다. 천고마비의 유래를 좀 더 깊이 천착해 보면 긴장감이 감돈다. 혹한의 날씨와 척박한 땅에서 겨울을 견뎌야 했던 흉노족이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비옥한 남쪽 땅 들판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을 탐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남쪽 한나라의 풍요로운 들판이 북쪽 흉노의 전쟁을 자극한 것이다. 들판의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에 남쪽 사람들은 수확의 기쁨과 수확 물을 온전히 지켜내야 할 걱정이 공존한다. 평화가 혼돈의 씨앗을 낳고 있었다.

천고마비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자.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풍성한 과일이나 곡식을 앞세워 고객들을 맞이하는 천고마비 축제를 연다. 그들은 들판을 단순한 노동의 장이 아닌 피와 땀으로 일궈낸 삶의 현장이라는 인문학적 해석으로 이익을 창출한다. 시골 옛 정서와 추억, 향수를 담아낸 축제를 만들어 낸다. 알고 보면 시골 출신이 아닌 도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천고마비는 미래를 준비한 학생들에게 안성맞춤의 표현이다. 깊은 사유를 위해서는 먼저 많은 독서가 필요하다. 요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축제 분위기다. 아니 유리 천장으로 여겨 왔던 서양 주류 문학을 뛰어넘었다고 세상이 놀라워하고 있다. 그 작가 역시 중학교 때 독서 활동을 통해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독서는 사유를 위한 선행 도구이다. 심오한 사고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움을 창출한다. 한강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천고마비는 유비무환의 다른 표현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독서가 유비무환이다. 중학교 시절 독서를 하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소녀의 꿈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태어나게 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꿈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황석영 작가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말을 하지 않은가. 우리가 함께 꿈을 꾸었더니 함께 꿈을 이룬 것이다. 같이 꾼 꿈이 현실이 되었다.

조선 후기 천재 작가 박지원 작품 <양반전>, <방경각외전>,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 작가 박태원의 <천변 풍경>이나 염상섭의 <삼대> 등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주옥같은 현대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미학과 인문학적 사유를 키워 왔다. 한강 작가 역시 선배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이제 함께 'K-문학'이다. 황 작가의 말대로 이제 세상이 우리 문학을 인정해 줬다. 우리 문학은 변방의 문학에서 세상의 주류 문학으로 발돋움했다. 우리 민족은 본디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긴다. 맑은 바람을 노래하고 맑은 달빛을 즐긴다는 말로 시 짓기를 좋아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것이 없다는 불학시면 무이언(不學詩, 無以言)이라는 말도 있듯이 옛날 선비들은 시 짓기가 일상이다. 오죽하면,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고 하던가. 서당 개도 풍월을 할 정도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디 시(詩)를 좋아하고 시를 쓰는 일이 다반사 일 수 있다.

한강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세계 주류 문학의 문을 열었다. 이제 소설을 넘어 시 장르에도 머지않아 단비가 오기를 기대한다. 밖은 온통 천고마비 계절 가을이다.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며 꿈을 키워가는 젊은이들의 책들 속에 시 한 편 정도는 들어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소설과 함께, K-문학이 세상의 주류 문학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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