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임진왜란의 후회와 교훈, 전쟁 기록이 태어난 장소

[안동 2박3일 여행 ①] '니가 사대부면 난 팔대부다' 서민 애환 담긴 탈놀이 보세요

등록|2024.10.16 11:36 수정|2024.10.16 11:40

하회마을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문화와 전통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 ⓒ 문운주


경북 안동은 도산서원, 하회마을 같은 문화유산과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근대 독립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가을의 초입, 선비의 고장 안동으로 여행을 떠난다.

광주에서 안동까지는 가깝고도 먼 거리다. 지리적으로 250 여 km로 약 4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더 멀게 느껴진다. 이번 기회에 안동에 있는 서원·고택을 답사하고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경북 도청경북 도청 청사 로비에 있는 대형 '선비붓' ⓒ 문운주


지난 10일, 경부도청을 찾는 것으로 안동의 2박 3일 여행을 시작했다. 청사의 기와지붕, 길게 배치한 회랑, 구불구불 용수로 등 과거와 현대 건물의 조화가 돋보인다. 로비에 설치한 대형 선비붓은 이곳이 선비의 고장임을 보여준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안동의 선비들'이다. 첫날은 류성룡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하회마을 답사다. 하회마을은 하회(河回)라는 이름 그대로 강물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만년에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을 쓴 장소 ⓒ 문운주


부용대는 "연꽃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하회마을과 만송정 숲,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이 아우진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부용대 왼쪽과 오른쪽에 옥연정사와 겸암정사가 있다.

강 변 절벽에 두 정자를 잇는 벼랑길이 보인다. 류운룡, 류성룡 형제는 이 길을 통해 왕래하며 형제애를 나누었다.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만년에 임진왜란 당시의 후회와 교훈 등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을 쓴 장소이기도 하다.

겸암정사류운룡이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전념한 곳 ⓒ 문운주


건물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별당채로 이루어져 있다. 별당채가 류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서재이고, 맨 앞쪽 건물이 서당으로 사용하던 사랑채다. 안채는 부엌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방이 있는 독특한 구조다.

부용대에 오르니 흰모래밭과 솔숲,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하회마을 선비들이 즐겼다는 하회선유줄불놀이 재현 현장인 듯 길게 늘어선 5 개의 밧줄이 걸려있다.

'하회선유불줄불놀이'는 지금으로 말하면 불꽃 축제다. 선비들이 나룻배를 타고 형제바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강 중앙에 배를 멈추고 술잔을 나눈다. 이때 부용대에서 강 건너 만송정에 이르는 공중에 매달아 놓은 숯 봉지들이 차례대로 타들어가면서 불을 밝혀내려 온다.

숲길을 따라 한 십여 분 내려갔을까. 류운룡이 1567년 지은 겸암정사가 이른다. 현판은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이 직접 써 주었다. 간 건너로 마을과 모래사장, 솔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류운룡은 이곳 자연 속에 파묻혀서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전념했다.

옥연정사와 겸암정사를 살펴보고 다음 행선지인 하회마을로 향한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 집성촌이다. 이곳에서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가 태어났다.

오후 2 시에 공연하는 '하회 별신굿탈놀이'를 관람 후, 충효당 등 고택을 둘러보고 마을을 돌아 나오기로 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하회 별신굿 탈놀이'

play

하회별신하회별신 마을 수호신인 성황(서낭)신에게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큰 굿 ⓒ 문운주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마을 수호신인 성황(서낭) 신에게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큰 굿이다. 전체 구성은 강신, 백정, 양반 등 10개 마당으로 되어 있다. 양반의 위선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낸다.

특히 사회적 비판 내용을 춤과 연기로 표현한다.

"여보게 선비. 내가 이래 봬도 사대부의 자손일세"
"아니, 사대부 그까짓 거 가지고. 이보게 양반, 나는 팔대부 자손일세"

"여보게 선비,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네"
"아니, 그까짓 사서삼경 가지고. 이보게 양반, 나는 팔서 육경을 읽었다네"

선비와 양반,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눈다. 배를 내밀고 팔자 걸음을 하며 허세를 부린다. 약방의 감초처럼 초랭이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람자들이 지켜보다 배꼽을 잡고 웃는다.

양진당류윤용 이 지은 집 ⓒ 문운주


▲ 충효당 서애 류성용의 생가 ⓒ 문운주


공연을 보고 난 뒤, 조선시대 와가와 초가 등이 어우러진 경관을 둘러보았다. 양진당은 하회마을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고택 중 하나다. 류운용이 지은 건물이다. 사랑채, 안채, 중문채, 대청마루 등을 가옥을 'ㅁ'자형으로 배치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충효당이다. 충효당은 류성용의 생가다. 가옥 구조를 보면 긴 행랑채를 두고 'ㅁ'자 형의 안채와 '一 '자형의 사랑채를 배치했다. 사랑채는 류성룡 관한 역사적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류성룡(1542-1607)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천거, 발탁하고 군사 전략을 주도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전란 후 복구에 힘썼으며 <징비록>을 남겼다.

충효당징비록 서애 류성용 의 관한 자료가 전시된 사랑채 ⓒ 문운주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