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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나온 방대한 '가람문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31] 500여 쪽에 이르는 벽돌책

등록|2024.10.14 15:15 수정|2024.10.14 15:15

▲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주)CPN문화재방송국


가람이 환중에서 투병생활을 계속할 때 지인들이 자료를 모으고 토론을 거쳐 방대한 <가람문선>은 준비하였다. 500여 쪽에 이르는 벽돌책이었다. 가급적 그의 생시에 내고자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사후인 1971년 6월에 신구문화사에서 나왔다.

앞에서 잠깐 소개한 대로 편찬위원은 이희승·정인승·김상기·백철·신석정·정병욱· 이태극·강한영·신동문·최승범·박재삼·고은이었다. 오랜 동지와 시조연구가 제자들이 고루 참여하였다.

책의 구성은 가람의 생애를 보여주는 12편의 화보, 아직 중환이 되기 전인 1966년 5월에 직접 쓴 서문 <책머리에> 이어서 목차는 시조집(전기)와 (후기), 일기초, 수필·기행문, 시조론, 고전연구, 잡고, 연보, 가람에 대하여 <가람문선>이 나오기까지 등으로 꾸며졌다. 미리 써 놓은 저자의 서문이다.

고향에 돌아온 지 어언 여러 해가 된다. 흔히 항간에서는 낙향이라고들 말하지만, 낙향이 아니라 귀향이요. 귀거래 전의 심정에서 옛 보금자리를 찾아왔던 것이다. 새 소리에 날이 밝아오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송뇌에 해가 저무는 속에, 나는 오늘도 담담히 잔을 기울이다가 그만 하루 해를 보내고 있다. 매화도 늙고 보면 성근 가지에 한두 송이 꽃을 꾸며 족하듯이, 이제 나는 허물을 다 떨어버린 한 그루 고매(古梅)로 그리 무념무상이면 넉넉하다.

회고하면 모두 아득한 옛날, 내 주변을 지켜주고 보살펴 주던 친구들의 소식은 이제 저 산 너머 오고가는 한 점 구름처럼 내 마음의 한구석을 지나가는 그림자요, 산골을 흘러내리는 물 위에 떠가는 꽃잎파리들이다.

문득 헤아려 보면 내 나이 이른 여섯 해 동안 기구한 속에서 나날을 보냈고, 쌓아놓은 학문 또한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면귀스럽기 그지 없는데도, 이처럼 자기와 후배들의 알뜰한 정성이 결정하여 그동안에 기록한 것들 중에서 골라 '문선'을 상재하게 되니, 한편 내 옛 얼굴을 다시 대하는 듯도 하다.

다만 이 조촐한 용기에 담을 만한 것들이 못됨을 한할 뿐이요, 그에 따르는 향기가 또한 짙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이 쉽지 않은 일에 힘을 아끼지 않은 편찬위원회의 여러 지기와 후배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이 '문선' 상재를 맡아주신 신구문화사 이종익님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주석 1)

이 <책 머리에>는 가람이 쓴 마지막 글에 해당된다. 5년 후 책이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이 '문선'에는 일기 4천여 매, 수필·기행문 5백여 매, 시조 165편, 시조론 1천여 매, 고전연구 5백여 매, 잡고 5백여 매 등 7천 여 매가 실렸다.

앞에서 드문드문 소개한 글도 있지만 대부분 인용하지 못한 데 아쉬움이 남는다. 편찬위원회 명의로 책의 말미에 <가람에 대하여>를 실었다. 편찬위원들의 '가람관'이라 하겠다. 몇 대목을 소개한다.

이 나라 국문학의 지평선 위에 찬연히 빛나는 성좌가 그 광망을 던지기 비롯한 것은 극히 짧은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역사 위에 주석을 일삼던 테두리를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제대로 한 주류를 형성한 것은 더구나 그 역사가 짧다.

가람은 이 짧은 역사가 열린 뒤, 그 희소한 성좌가 겨우 첫 광망을 던질 때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독립된 가람 성좌를 이룬 국문학계의 태두로 자타가 공인하는 거벽이다.

정형시인 시조를 정형(整形)한 분도 가람이요, 신조(新調)로 뒤집은 이도 가람이니, 어느 한 국문학자가 가람을 가리켜 시조를 망쳐놓았다고 한탄한 그의 독단은 차라리 가람을 역사의 선구적 대열에 내세운 보다 확실한 증언이라고 해서 역설은 아닐 것이다.

가람은 애주가이자 애란·애서가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사람됨과 그 성격 및 특성을 알자면 여러 가지 면으로 살펴야 하겠지만 가람의 경우는 이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그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다.

술로는 두주를 사양치 않으며 청탁을 가리지 않는 대인의 풍도가 있는가 하면, 난을 사랑하기로는 그를 데리고 자리를 같이 할 정도요, 그것이 피면 친구나 제자를 불러 함께 즐기는 말하자면 문객의 품격도 있었고, 책을 좋아하기로는 엄두도 못 낼 값비싼 희귀본을 빚지면서까지 사들이는 학자다운 선한 욕심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람 시조는 어떠한 문학적 성과를 낳았는가. 그것은 한두 가지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섬세한 언어감각에 의하여 한국적 리얼리즘을 재현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더러는 사회사상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 후기작에 반드시 합당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집약적인 문학적 평가는 우수한 작품의 언저리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주로 <가람시조집> 무렵의 초기작에서 이상과 같은 일방적 결론을 유추해 내는 것은 지극히 온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람 시조에서 단 하나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소재를 늘 신변적이고 일상적인 데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가람이 시조론에서 항용 주장해오던 '실감적인 것'의 한 실천인 것으로도 보여진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반드시 신변적이나 일상적인 데서만이 '실질적인 것'이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도 유추해낼 수 있고 보면 얼마만큼의 격세지감이 없잖아 있다.

주석
1> <가람문선>, 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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