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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걸려야 갈 수 있는 섬, 혼자서 다녀온 사연

[활 배웁니다 19] 1인 전지훈련, 한산도 습사 여행... 난중일기 필사하니 참 좋습니다

등록|2024.10.15 20:03 수정|2024.10.15 20:03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지난 5월, 대학 국궁동아리 학생들을 인솔하여 통영 한산도를 찾았다. 1박 2일 동안 우리는 한산도에서 활쏘기를 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다. (관련 기사 : 430년 전, 이순신이 섰던 자리에서 활을 쏩니다 https://omn.kr/28tz7 )

그리고 지난 11일, 5개월 만에 다시 한산도를 찾았다. 다만 이번엔 혼자였다. 최근 이런 저런 일들로 마음이 번잡하여, 정신을 다잡고자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물론 활과 함께.

걸어서 한산도 한 바퀴

한산도에 가는 건 쉽지 않다. 소위 '장롱면허'라서 늘 걸어다니는 뚜벅이 신세다. 그 탓에 일단 서울에서 늘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이상 이동한 뒤, 다시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한산도에 도착한 날, 제승당터미널에서 목적지인 입정포마을까지 6km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택시는 당연히 없고, 버스 역시 언제 올지 기약할 수 없었다.

뚜벅이인 나로서는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었다. 짐가방에 활과 화살통까지 메고 걸으려니 쉽지 않았다. 이렇게 짐을 잔뜩 메고 오래 걸어보는 건 군대 제대 뒤 오랜만이다. 10년 전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행군할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 활을 들고 떠난 한산도 트래킹 (2024.10.11) ⓒ 김경준


몇 십분 걸었을 뿐인데 가을 날씨가 무색하게도 온 몸이 땀범벅이 되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걷는 동안 마주친 차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차도 사람도 드문 조용한 시골 섬이었다.

거기서 바다 내음, 흙 내음 맡으며 뚜벅뚜벅 걸으니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듯했다. 매년 찾는 한산도이지만, 이렇게 두 발로 직접 걸어 섬의 반대편까지 가는 건 처음이었다.

뚜벅이로 걷자 자연히 차로 다닐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대고포마을, 장곡마을, 창동마을, 입정포마을, 진두마을 등 그 작은 섬에 마을이 몇 개던지. 재밌는 건 마을마다 이순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었다. 과연 한산도는 '이순신의 섬'이었다.

한산도 '활쏘기 전지훈련', 혼자 가면 더 좋다

▲ 한산일주로 (2024.10.11) ⓒ 김경준


1시간 30분 정도 걸었을까. 중간목적지인 입정포마을이 나타났다. 입정포(立碇浦)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의 전선들이 왜적의 습격에 대비하고 적선을 탐색하기 위해 해역을 초계하던 중 잠시 정박했다는 뜻에서 유래됐다.

이곳에 '한산정(閑山亭)' 활터가 있다. 활터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푼 뒤, 습사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어 홀로 활을 쏘면서 한산도의 가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 한산도 입정포 '한산정'에서의 활쏘기 (2024.10.11) ⓒ 김경준


나는 평소 활터에 오르면 2~3시간 동안 8~9순(1순 5발) 정도를 쏘고 내려오곤 한다. 서울의 활터들은 사람이 많다 보니 기다리는 텀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날은 나 혼자였기에 자연스레 활을 쏘는 속도도 빨라졌다. 1시간 동안 10순(50발) 가량을 쐈다.

평소보다 과녁의 정곡(정중앙)에 화살이 잘 들어가 기분이 좋았다. 마음 같아선 더 쏘고 싶었으나, 하늘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기에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서둘러 나서야 했다. 그렇게 1일차 전지훈련을 마친 뒤, 최종목적지인 진두마을에 도착해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 입정포 한산정에서의 습사 (2024.10.11) ⓒ 김경준


이튿날 아침, 입정포 활터에 도착하니 오늘도 사람이 없었다. 사무실에 마련된 이순신 장군의 영정에 인사를 드린 뒤, 2일차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활터에서 영화 <명량> OST를 배경음악으로 튼 채 활을 쏘고 있노라니, 마치 430여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조선 수군의 일원으로 전투를 치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한산정 사무실에 걸린 태극기와 충무공 이순신 영정 (2024.10.12) ⓒ 김경준


'텅! 텅!'

화살이 과녁을 때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떠나오기 전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세상사 모든 고민들이 먼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활 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활쏘기의 매력이자 묘미다.

그렇게 쉴새 없이 쏘다 보니 현을 당기는 깍짓손이 퉁퉁 부어오르고, 팔에도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힘차게 날아가 과녁에 텅텅 맞던 화살들이 언제부턴가 힘을 잃고 과녁 앞에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템포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잠시 활을 내려놓은 뒤, 가방에서 노트와 붓펜을 꺼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원문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한산도에서 쓰는 <난중일기>라, 이보다 더 운치 있는 휴식이 있을까. 한 글자 글자 장군의 일기를 써내려가며 나는 이순신 장군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활과 난중일기 (2024.10.12) ⓒ 김경준


그렇게 이틀 동안 도합 30순(150발) 가량의 활을 냈다. 더 내고 싶어도 팔에 힘이 빠져서 무리하면 자세가 무너질 것 같았다. 아쉽지만 이제는 활을 내려야 할 때가 온 듯했다.

그런데 평소보다 실컷 쐈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1년에 1~2번이나 갈까, 아무래도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에 유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한산도가 '국궁의 성지'로 발돋움하기를

"활 진짜 좋아하는가배?"

활터 관계자가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다. 매년 이렇게 한산도를 찾다보니 이제는 날 알아보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서울서 매년 활을 둘러메고 한산도까지 내려오는 젊은 청년이라니.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든 작은 섬마을에 매번 활을 들고 나타나는 30대 청년은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듯했다. 저 멀리 남쪽 바다 섬마을에 나를 기억하고 반겨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이날 습사를 마무리한 뒤, 한산정 손경환 사두(활터의 우두머리)와 정소란 사무국장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산도를 '국궁의 성지'로 만들고자 하는 포부를 품고 있었다.

한산도에는 현재 두 개의 활터가 있다. 하나는 그 유명한 제승당 활터(한산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입정포마을에 조성된 같은 이름(한산정)의 활터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직접 수하들과 활쏘기를 연마했다고 하는 '제승당 활터'의 경우, 정식 국궁장이 아니다. 사적지이기에 일반 궁사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활을 쏘려면 사전에 미리 경상남도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나 이용 자격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워 아무나 이용할 수 없다. 최소 2주 전에 경상남도청에 공문을 보내야 하는데, 여기엔 또 대한궁도협회 공인 심판 자격증 혹은 지도자 자격증 등이 있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 한산도 제승당 활터 '한산정' (2024.10.12) ⓒ 김경준


반면 입정포에 조성된 한산정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일단 현재의 시설이 매우 열악한 상태다.

먼저 사무실은 컨테이너 박스에 임시로 조성돼 있었고, 과녁에는 관중 여부를 알려주는 라이트도 달려있지 않았다. 모래를 구하기 쉽지 않아 과녁 뒤에는 모래 대신 조개 껍질을 깔았는데, 화살이 넘어갈 경우 충격을 받고 부러지기 쉽다는 위험도 있었다.

활을 쏘는 사대 역시 제대로 된 지붕 하나 없이 검은 천으로 대충 덮어놓은 채였기에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힘들었다. 만약 비나 눈이라도 온다면 전혀 활을 쏠 수 없는 상황이다.

활터에 화장실이 없는 것도 큰 문제 중 하나다. 지난 5월에 방문했을 때도 인근 주민의 개인 집 화장실에 양해를 구하고 이용해야만 했었다.

이날 손경환 사두는 대화 중에, 자신이 통영시와 경상남도 등 행정 당국에 한산정의 시설 정비를 계속 촉구하고 있다며 "이순신 장군의 항일호국정신이 깃든 한산도에 제대로 된 국궁장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산도에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제대로 된 국궁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그 국궁장은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활터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새롭게 지을 국궁장은 실제로 조선 수군이 바다에서 왜적을 상대로 싸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활터가 될 예정이다.

사대는 판옥선처럼 조성한 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 섬에 과녁을 설치하여 마치 임진왜란 당시 배 위에서 싸웠던 조선 수군처럼 활쏘기를 체험할 수 있는 그런 활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가 준비 중인 한산도 국궁장 건립은 현재 사업계획서를 준비하여 경상남도청에 제출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없고, 경남도청 등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의 포부를 들으니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계획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한산도는 명실상부 '국궁의 성지'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히 활만 쏘는 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항일구국정신·애국애족정신·상무정신 등을 온 몸으로 느끼며 활을 쏠 수 있는 곳. 만약 그런 활터가 세워진다면, 대한민국의 국궁 수련자들 누구나 앞다퉈 그곳을 찾아올 게 뻔하지 않는가.

한산도에 그런 '꿈의 활터'가 세워질 수 있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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