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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부인 성폭행 장면 담긴 트럼프 영화, 의미심장한 댓글

영화 <어프렌티스> 미 개봉... '현대판 프랑켄슈타인' 평도

등록|2024.10.14 20:27 수정|2024.10.14 20:27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캠프에서 "불에 태워야 할 쓰레기"라며 비난한 영화 <어프렌티스>가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에서 개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진행하며 "넌 해고야(You're fired)"라고 외치면서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TV 리얼리티 쇼의 제목이기도 하다.

197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순진하면서도 패기 넘치던 20대 젊은 트럼프가 변호사 로이 콘을 스승 삼아 성공만을 위해 비열하고 뻔뻔한 인물로 변해가는 서사를 그렸다.

'20세기 가장 악명 높고 불명예스러운 해결사'로 불리던 콘은 "계속 공격하라. 모든 것을 부인하라. 그리고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는 '성공 3계명'을 가르쳐주고, 트럼프는 이를 철저히 따른다.

트럼프가 막말을 퍼부으며 상대를 공격하고, 지지자들의 폭동을 부추기며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첫 부인 성폭행 장면 넣은 이유

▲ 영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견디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형에게서 벗어나 꿈을 향해 질주한다. 뉴욕 변두리의 싸구려 부동산을 호화롭게 개발해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워간다.

트럼프가 첫눈에 반한 체코 모델 이바나를 붙잡고 "당신과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라며 지극정성을 다하고 결혼까지 하는 장면은 트럼프의 풋풋한 인간미까지 보여준다.

마블 히어로 영화 캐릭터 '윈터솔저'로 익히 알려진 배우 세바스찬 스탠은 트럼프를 연기하기 위해 7㎏을 살찌우고 금발 가발을 썼다. 말할 때 입 모양부터 걸음걸이까지 트럼프의 몸짓을 탐구했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 들어 본격적으로 악의적 시선에 따라 트럼프를 보여준다. 트럼프는 사랑하는 이바나와 결혼하면서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혼전 계약서를 강요한다.

또한 결혼 후에는 태도를 싹 바꿔 이바나를 경멸적으로 대하고, 강제로 성관계까지 한다. 작가는 이바나가 1990년 이혼 소송에서 트럼프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증언한 내용을 묘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바나는 훗날 "형사적 의미는 아니었다"라고 물러섰고, 트럼프 측도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각본을 쓴 저널리스트 가브리엘 셔먼은 11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수많은 성 추문을 떠올렸을 때 반드시 영화에 넣어야 했던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괴물이 만든 '더 큰 괴물'... 현대판 프랑켄슈타인

▲ 영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


이 밖에도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트럼프가 체중 감량을 위해 지방 흡입 수술을 받고, 약을 먹다가 탈모 증상까지 생겨 두피 축소 수술까지 받는 등 트럼프가 싫어할 만한 장면이 가득하다.

영화 속 트럼프는 빚 독촉에 시달리자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버지를 보증인으로 세우려고 하고, 에이즈에 걸린 콘이 도움을 구하며 찾아오자 냉정하게 돌아선다. 또한 자서전 대필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콘이 가르쳐준 '성공 3계명'을 자신이 만든 것처럼 꾸며내는 장면은 결국 그가 콘을 넘어서는 '괴물'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영화에서 콘을 연기한 배우 제러미 스트롱이 13일 미국 영화전문매체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뉴욕타임스>도 12일 "음란하고 거만한 미국인을 인간처럼 보여줬다"라며 "트럼프가 살아온 온 길은 교활한 속임수와 기괴할 정도로 과장된 언행, 고통스러운 가족사로 이어진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되자 트럼프 선거 캠페인 대변인 스티븐 청은 "불태워야 할 쓰레기"라며 "거짓으로 밝혀진 일들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허구"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영화 개봉을 막기 위해 소송까지 냈다.

영화 제작비 일부가 캐나다와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이유로 "외국의 미국 대선 개입"이라는 주장까지 폈다.

'어프렌티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 영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만든 이란계 덴마크 감독 알리 압바시는 개봉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권력에 의해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고, 그 시스템이 흘러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며 "트럼프와 콘의 구체적인 관계, 그 관계의 변화에 따라 젊은 트럼프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셔먼도 "트럼프는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다. 우리는 그에 대한 견해가 다르더라도 잘 살펴봐야 한다"라며 "그러면 다음에 또 다른 트럼프가 나타났을 때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막강한' 권력 탓에 <어프렌티스>는 빛을 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영화인 줄 알고 제작비를 지원했던 투자가가 뒤늦게 실제 내용을 알고는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독립 배급사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가 웃돈을 주고 투자금을 돌려줘서 배급을 맡게 됐다. 2018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 화씨 11/9 >를 배급했던 회사다.

또한 미국 지상파 방송 ABC와 CBS는 선거 중립을 지키겠다며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 영화의 광고를 거부했다. 이에 브라이어클리프는 "소심하고 비겁하다"라고 비판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꽤 호평받고 있지만, 흥행 성적은 아직 저조하다. 미국 영화흥행 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개봉하고 사흘간 158만 달러(약 21억4000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지난 주말 북미 지역에서 상영된 전체 영화 중 11위에 해당한다.

현지 언론의 평가도 엇갈린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 1700곳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대선 후보가 폭력적인 성관계를 저지르는 모습이 묘사된다면 트럼프에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며 "일부 주(州)는 불과 수천 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뉴욕타임스>는 "이 영화가 대선 판도를 흔들지는 알 수 없다"라며 "쇠락한 뉴욕에 특급호텔을 세워 성공하고 대권까지 얻은 트럼프의 모습은 세상에 익히 알려진 대로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 독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우리는 모두 트럼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묻고 있는 건 그런 사람에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여준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입니다"

<어프렌티스>는 오는 23일 국내에서도 개봉한다.

▲ 영화 <어프렌티스> 포스터 ⓒ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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