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경에 반해서 제주 오름 덕후가 되었습니다
황금빛 억새 물결의 천국, 다랑쉬 오름
▲ 다랑쉬 오름에서 바라본 우도, 성산일출봉 ⓒ 어혜란
"와, 제주에 이런 곳이 있었어?"
"너무너무 아름답다!"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다랑쉬 오름 정상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만큼 오름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풍경은 어떤 말로도 부족할 만큼 멋지고 황홀했다. 그동안 수없이 제주를 찾았으면서도 어떻게 이 멋진 광경을 놓치고야 말았을까.
그만큼 지금껏 제주의 오름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억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제주에서 본 그 어떤 모습보다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그날 이후, 나는 완전히 '오름 덕후'가 됬다. 이제는 바다가 아닌 오름의 '맛'을 즐기기 위해 제주를 찾는다. '오름 도장깨기 릴레이'도 계속되고 있다.
오름.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사실 처음 매스컴을 통해 오름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무척이나 낯설게 느꼈다. 몇 년 전, 예능 <효리네 민박>을 통해 오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당시 이효리와 아이유가 금오름 정상에서 노을을 본 장면은 방송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금오름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장사진을 이룬다.
▲ 다랑쉬 오름에서 만난 정겨운 소들 ⓒ 어혜란
오름은 제주에서 산(山)을 의미하는 단어로 화산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산봉우리'를 뜻한다. 총 368개의 오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오름까지 4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제주는 과히 '오름의 왕국'이라 불릴 만하다.
다랑쉬, 용눈이, 노꼬매, 따라비, 물영아리 등등 순 한글 말로 이루어진 이름도 무척 귀엽다. 다양한 이름만큼 크기도 모양도 태어난 날도 제각각이며 개성 넘치고 당당한 자태를 뽐낸다.
오름은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을 만큼 낮고 평탄한 능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육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위산에 비해 무척 편안하다. 특히 조금만 올라도 육지에서는 접할 수 없는 '멋진 정상의 경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노을 ⓒ 어혜란
그동안 수차례 오름 트레킹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 노꼬메, 다랑쉬, 궷물, 별도봉 등 제법 많은 곳을 올랐다. 모든 곳이 각각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10월 둘째주 주말, 남편과 함께 두 번째 찾았던 다랑쉬 오름을 소개해 볼까 한다.
사실, 이곳은 나에게 조금은 특별하다. 최초로 발도장을 꾹 찍은 곳이자, 오름의 진정한 매력에 눈뜨게 한 고마운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찾은 다랑쉬 오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처음 만났던 여름날의 푸릇푸릇함과 싱그러움은 흐릿해졌지만, 그 자리를 눈이 부실 만큼 빛나는 황금빛 억새 밭이 대신하고 있었다.
다랑쉬 오름은 제주에서 평생을 보냈던 김종철 작가가 <오름 나그네> 라는 저서에서 '비단 치마에 몸을 감싼 여인처럼 우아한 몸맵시를 가진 산'이라는 표현을 하며 극찬했을 만큼, 한번 오르고 나면 쉬이 잊히지 않는 아름아움과 우아함을 가진 곳이 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 다랑쉬오름 풍경 ⓒ 어혜란
다랑쉬 오름 초입에는 경사가 있지만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힘든 줄 모르게 된다. 걷다가 숨이 가빠 오면 돌아서기만 해도 우도, 성산일출봉, 바다, 아끈다랑쉬, 영 눈이 등 셀 수 없이 많은 오름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제주 동부의 탁 트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넓은 바다와 아기자기하게 수놓인 밭들, 멀리 보이는 풍차까지 그야말로 장관이다.
▲ 다랑쉬오름 분화구 ⓒ 어혜란
정상에 오르면 제주도의 중심에 우뚝 선 한라산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넓은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화구의 둘레길을 따라 걸을 땐 마치 너풀너풀 하늘길을 거니는 느낌이다. 게다가 분화구인 굼부리마저 다른 오름들보다 깊다. 한참을 넋 놓고 깊은 굼부리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대자연의 광활함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특히 제주의 가을은 억세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오름만큼 제대로 억새 물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억새 물결과 야생화를 감상하며 한참을 굼부리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의 숨결에 발맞춰 출렁이는 억새 물결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 다랑쉬 정상에서 바라보는 노을 ⓒ 어혜란
마침 운좋게 석양이 지는 시간에 맞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노을의 끝자락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차츰 사라져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황금빛 억새 밭에 넓게 펼쳐진 노을은 제주에서 조우했던 그 어떤 석양보다 벅찰 만큼 아름다웠다. 한참을 넋 놓고 감동적인 순간을 만끽했다.
▲ 황금빛 억새물결 ⓒ 어혜란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지만 특히나, 제주의 가을은 황금빛 억새와 신비로운 자연이 더해져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한 풍경을 자랑한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억새 춤을 벗 삼아 걷는 오름 트레킹은 그 어떤 제주의 관광지보다 값진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깊고 넓은 굼부리와 부드럽고 평화로운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든 다랑쉬 오름에 빠지고 만다.
이곳은 관광객이 자주 찾는 오름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트레킹 난이도는 중하, 약 8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가파른 구간이 있지만 산책처럼 즐기기 좋다. 주차장도 잘 되어 있다. 이 가을 제대로 제주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멋진 인생 샷을 남기고 싶다면 오름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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