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7년간 떠나지 못한 곳...우린 외국인들에게 뭐라 할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쳐... 우리 안의 변방을 넘어서야 할 때
▲ 소설가 한강 (2016.5.24) ⓒ 권우성
자그마치 123년이 걸렸다. 노벨문학상을 아시아인, 그중에서도 여성이 받기까지.
'변방의 문학', '변방의 언어'가 비로소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들 말한다.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의미 있는 첫발을 뗀 것만은 틀림없다.
광주와 제주, 변방의 잊힌 이야기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입고돼 진열되고 있다. ⓒ 연합뉴스
알려졌다시피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7년부터 1954년 사이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을 다루고 있다. 모두 대한민국의 변방에서 일어난 일들이자, 우리들조차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사건들이다.
한강 작가가 처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1980년대 초, 한 작가의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 온 학살 피해자들의 사진첩을 어린 그가 우연히 들쳐 봤던 것.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중
그는 훗날 어느 인터뷰에서 이 일을 두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도 했는데, 그 근원적 질문을 아주 오래 품고 있던 작가는 마흔이 넘어서야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썼다.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던 학생 '동호'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
어느덧 30년도 더 지나 저 남쪽 끄트머리 어느 변방에 멈춰 있던 시간은 그의 아름다운 글과 이야기로 되살아나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책이 세상에 나온 뒤에도 작가는 오래 열병을 앓은 걸로 보인다. 이번엔 그가 차마 외면할 수 없던, 군인과 경찰 그리고 국가가 길러낸 폭력조직인 서북청년단 등이 저지른 또 하나의 거대한 학살극이 그를 덮쳐왔다. 혼란스럽던 해방정국의 제주에선 광주에서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더 오랫동안, 더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 때까지.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작별하지 않는다> '1.결정' 중
그는 다시 더 먼 변방으로 향했고, 한참을 매달린 끝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썼다. 그는 이 책 '작가의 말'에 "2014년 6월에 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썼다"고 했는데, <소년이 온다>가 세상에 나온 바로 다음 달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이어서 쓸 수 있었고, 다시 삼 년이 지난 2021년 비로소 이야기를 매듭지을 수 있었으니, 아마도 그는 첫 두 페이지를 쓴 그날로부터 7년간 한순간도 변방을 온전히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바다 건너 제주의 어느 동굴 속에선가, 또 어느 땅속에선가 그대로 멈춰 있을 그날의 시간도 다시금 흐르게 될까. 꼭 그렇게 되길 빈다.
우리 안의 변방을 넘어설 기회로 삼아야
▲ 스웨덴 한림원의 마츠 말름 사무총장이 지난 10일 스톡홀름의 한림원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번에 알게 된 일이지만, 123년이란 긴 세월 동안 노벨문학상이 단 한 번도 아시아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은 건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영어라는 언어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른 언어로 쓰인 문학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건 번역의 문제이기에 앞서 태도의 문제이고,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라는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은 태도다.
중심과 변방을 갈라 보는 태도는 우리 안에도 있다. 노벨문학상이 오랜 세월 유럽과 북미 그리고 남성을 중심으로 돌면서 그 바깥에 변방이란 낙인을 찍었듯 우리도 우리가 중심이라 믿는 곳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서울, 남성, 자본, 권력, 트렌드... 따위가 지금 우리의 중심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하여 정치와 행정, 경제와 언론 그리고 문화 등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또 움직이는 거의 모든 권력이 변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구도 예상 못 했지만, 광주의 이야기라서, 저 멀리 제주의 이야기라서, 힘없는 이들이 겪은 일들이고, 벌써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우리 스스로 변방으로 밀어냈던 그 이야기들이 한참을 돌아 '노벨문학상'이라는 빛나는 이름에 싸여 우리 앞에 돌아왔다. 우리가 애써 지워왔던 그 변방에도, 아니 어쩌면 그 변방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깃거리와 또 다른 무언가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일깨워준 셈이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광주와 제주를 찾아온 외국인들이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거냐'고 물어올 때, 우린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또 더 많은 한국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며 또 다른 변방을 찾았을 때, 우린 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있을까.
이제 낡은 건 변방이 아니라 변방이라는 낙인찍기다. 더 늦기 전에 중심-변방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우리만의 이야기와 자원을 지키고 또 가꿔야 하지 않을까. 아직 세계에 들려줄 우리 변방만의 이야깃거리가 남아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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