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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이 내놓는 핵심 정책이란 게 고작 이건가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퇴행적 권위주의가 재호출한 문체부 장관의 책임심의관제

등록|2024.10.21 06:53 수정|2024.10.21 06:53
돌이켜보면 6공화국 이후의 정부들은 대부분 문화·예술 정책을 이끌어갈 나름의 비전을 제시했다. 노태우 정부는 '문화발전 10개년 계획', 문민정부는 '신한국 문화창달 5개년 계획', 국민의 정부는 '문화산업발전 5개년 계획', 참여정부는 '창의한국', 이명박 정부는 '품격있는 문화국가',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 문재인 정부는 '문화비전 2030'이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집권 반환점을 지났음에도 여전히 문화·예술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는 K-컬처, 관광 정도를 강조하거나 다양한 분야의 개별 사업들을 얼기설기 나열하는 수준을 못 벗어났다.

윤석열 정부의 문체부는 성과주의 중심의 체계성 없는 사업 나열 문제 외에도 퇴행적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가 문체부 장관으로 재등장한 유인촌씨가 문화·예술 지원 방향을 대폭 개편한다면서 재호출한 책임심의관제다.

▲ 2023년 10월 30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책임심의제 도입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제도 변천

책임심의관제의 맥락은 1973년부터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운용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제도의 변천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제도 개선방안 연구'(2018)에 따르면 2005년에 재출범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계속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2006년에는 기금지원심의위를 구성하여 문화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8개 분야별로 1인씩 심의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2007~2008년에는 심의위원추천위원단을 구성하여 분야별 심의위원을 위원회의 의결로 위촉했다. 2009년부터는 약 2000명 규모의 심의위원 후보단을 바탕으로 심의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2010~2015년에는 앞서 언급한 책임심의관제가 도입되어 상당 기간 운영되었다. 즉, 책임심의관제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나왔던 제도다. 2010년에 예술위가 제시한 책임심의관제 도입 근거를 살펴보면 심의위원의 선정과 심사 과정의 객관성에 대한 행정과 문화·예술 현장의 불신 해소, 단발성 심의제의 한계 극복 등을 제시했음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근거에 따라서 작동한 책임심의관제는 예술위 사무처(10년 이상 근무 경력) 직원이 심의에 참여함을 골자로 한다. 왜냐하면 당시 문화부와 예술위는 사무처 직원이라면 문화·예술 현장과 직접적 관계가 없으니 객관적 심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심의제도 개선 논의는 제도를 운영하는 측과 제도를 마주하는 당사자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왜냐하면 문화·예술이 다양한 기준을 가진 전문가의 정성적 평가에 상당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2010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책임심의관제가 도입됨에 따라서 개별 사업들의 대한 심층 심의, 책임심의관을 통한 선정 사업의 지속적 관리가 용이해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에 심의 권한이 소수(분야별 대략 5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책임심의관의 객관성, 균형성 검증 필요성이 더 대두되었다.

사실 책임심의관제를 운영함에 따라 도출되는 문제는 객관성, 균형성 외에 심의의 독립성·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즉 책임성을 강조한 심의제도였음에도 여전히 심의위원의 의사결정이 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첨병으로 왜곡된 책임심의관제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이명박 정부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2008)을 계승하여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정비'(2013)부터 '9473 시국 선언 명단'(2015)에 걸쳐서 문화·예술 검열을 위한 다수의 문건을 생산했다.

이러한 문건들이 생산되는 과정 가운데 국정원의 2014년 1월 '문체부장관, 좌성향 민간보조사업 지원 배제책 강구 지시'에서는 문화·예술분야 보조사업에서 불법단체, 좌편향 단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도록 균형적 심사위원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시되었다.

그리고 동년 2월에는 청와대가 문체부에 문예진흥기금 사업에서 좌파 예술인 및 단체가 선정되는 이유가 책임심의관에 좌파 인물이 포함되기 때문이므로 심의위원에 건전 예술인사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팩스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서 문예진흥기금 사업 책임심의위원을 구성할 때 문체부와 사전 조율하고 책임심의위원 중에 사무처 직원 1인을 포함시켜 관리하겠다는 대응책이 나왔다.

2014년 3월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위원 105인 후보 중 19명이 청와대, 문체부의 사전검열로 배제되기도 했다. 책임심의위원 통제를 골자로 한 문체부의 대책은 2014년 9월 국정원이 작성한 '문체부, 문예진흥기금 비판단체 지원 차단책 추진'에 책임심의위원들을 보수인사로 선임하여 문제 사업들을 배제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또한 문체부가 2014년 10월에 작성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 간부가 심사에 참여해 비공식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정치편향 작품을 배제할 것이라는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다.

▲ 박근혜 정부에서 좌파로 명명한 문화예술 현장을 탄압하기 위해 생산한 문건의 표지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책임심의관제 통제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실행된 사례로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2015년 공연예술발표공간 사업을 꼽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 시기에 진행된 진상조사 과정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 직원이 순조롭게 문제 사업들을 배제하기 위해 두 명의 심의위원을 만나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고 배제 방법을 협의했다는 진술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책임심의관제 통제를 바탕으로 한 블랙리스트 실행은 마냥 순조롭지 않았다. 가령 청와대와 문체부가 2015년 2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문학창작기금 사업의 2차 심사 통과 102명 명단 중 6명을 배제할 것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지시했던 경우가 그렇다. 왜냐하면 이 지시에 따라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 직원이 문학분야 심의위원들에게 청와대, 문체부가 배제하라고 한 인물들을 제외하고 3차 심의 진행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2015년 6월에는 공연예술창작산실-우수작품제작지원 사업의 심사위원들이 청와대, 문체부의 지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 직원의 타협을 빙자한 협박성 대리검열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책임심의관제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었던 탓인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5년 8월부터 기존의 책임심의제도를 심의위원 후보단 제도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의 감독 하에 2016년 7월 즈음 마무리된 이 후보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구성한 후 위원장이 선정하는 방식을 보였다.

이러한 심의 제도 변화에 따른 검열 사례로는 2016년 1월부터 진행된 공연예술행사지원 사업 심사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업에 대한 심사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 직원이 심사위원에게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업의 번호를 구두로 은밀히 전달하면 해당 사업이 낮은 점수를 받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공정성, 개방성에 주목한 심의제도로 이행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반성과 혁신이 요구되는 과정에서 심의제도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이에 따라서 2017년부터 시작된 제도가 심의위원 후보자 공개추천 제도다. 이 제도는 직전의 심의제도와 마찬가지로 심의 후보단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문화·예술 현장이 심의위원 후보자를 공개 추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공정성, 개방성, 투명성을 높였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영향으로 더 이상 사무처 직원이 문예진흥기금 사업의 심사위원이 될 수 없음을 대전제로 한 심의제도이기도 하다. 심의위원 후보자 공개추천 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개선을 이어나가 문예진흥기금 공모 사업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대부분의 사업에 적용된 첫째 방식은 심의위원 후보단 내에서 담당 사무처와 위원이 2배수 이상 심의위원 후보 명단을 구성한 후 감사부 입회 하에 무작위 추첨으로 최종 심의위원을 확정하는 적격자 지정 방식이다.

둘째는 더욱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이나 평가 방식의 일관성이 필요한 일부 사업에 한해서 심의위원 후보단 외에서도 심의위원을 위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담심의위원 방식이다. 셋째는 심의위원 후보단 안에서 더 다양한 심의위원이 문예진흥기금 심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감사부 입회 하에 심의위원을 무작위 추첨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문화·예술 현장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며 공정성과 개방성을 높이기 위해 개선을 이어나간 제도이지만, 심의위원 구성의 적절성, 심의결과의 수용성을 담보할 평가문의 부실, 심의위원 후보단 운영 방식의 체계화 등의 문제는 여전히 획기적으로 해소될 수 없었다.

책임심의관제의 졸속 재탕

앞서 이야기했듯 어떤 심의제도이든지 간에 공모사업에 접근하는 이들의 불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즉, 유일하면서도 완벽한 대안으로서의 심의제도는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중장기적 관점으로 문화·예술 현장의 신뢰를 꾸준히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 심의제도는 있을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지점에서 유인촌 장관이 14년 전의 책임심의관제를 만능키로 여기며 그대로 반복한 것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본다. 과거의 책임심의관제가 그대로 재도입된 측면은 특히 유인촌 장관이 문화·예술 현장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을 내세우며 공공기관 직원들이 책임심의관으로 참여해야 공정성을 높이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도 차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지점에서 잘 드러난다.

책임심의관제 자체는 악마화될 제도가 아니기에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도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기에 책임심의관제가 국가폭력과 연결되며 왜곡되었던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유인촌 장관의 게으른 집착이거나 다시 국가검열을 재가동하겠다는 의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인촌 장관이 문화·예술 현장의 신뢰를 축적할 수 있는 방식의 책임심의관제를 도입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최소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해야 했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봤듯이 박근혜 정부 시기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이 국가검열의 말단 실행자로서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되뇌면 쉽게 도출된다.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에는 유인촌 장관의 성급한 책임심의관제 강요와 관련하여 현재 영진위 직원들이 심의위원으로 들어갈 만큼 전문성이 없다는 문제와 블랙리스트 사건의 트라우마로 직원이 심의위원을 맡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음을 정기회의 속기록을 통해서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경우는 2023년 말에 열린 전체회의에서 사무처 직원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논의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관련 논의가 있었던 속기록 부분이 비공개 처리되어 확인할 수 없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관제 도입에 따른 분야별 심의위원 현황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홀대 받는 책임심의관제의 현재

유인촌 장관이 그토록 강조하며 재탕한 책임심의관제지만, 정작 이 제도를 위한 예산 지원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심의 관련 예산은 2017년 전후로 약 3억 5000만 원 정도 할애되었다. 이 중에서 심의위원 사례비는 대략 2억 6000만 원 정도 차지했다.

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소화하는 몇천억 단위의 지원 사업 규모를 생각하면 굉장히 적은 예산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책임심의관제를 전격 도입하는 2025년을 맞아 차년도 관련 예산 8억 원을 신규 편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2025년에 문체부가 확정한 문예기금 예산안에서 각 분야별 지원심의 회의비나 사업 평가 및 모니터링 예산을 보면 전년도와 차이가 없거나 천만 원 단위의 소폭 증가만이 보일 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 해 3000건 넘는 사업 심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30명 조금 넘는 책임심의관들이 신청 사업들에 대해 밀도 있는 심의와 사후 평가까지 진행하려면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에 따른 충분한 지원 체계와 보상 체계를 갖춰야 하므로 책임심의관제를 위한 예산이라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어야 했다.

그래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련 2025년 정부예산안에서 심의제도 관련 예산이 소극적으로 편성된 상황은 유인촌 장관이 책임심의관제를 단순히 문화·예술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더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문체부의 총체적 무능과 무책임한 권위주의

유인촌 장관이 졸속 재도입한 책임심의관제가 다시 한번 박근혜 정부 시기와 같은 은밀한 국가검열로 이어질 것이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 접어들어 '윤석열차', 가수 이랑에 대한 문체부, 행안부의 검열을 기점으로 중앙, 지방 정부 단위에서 문화·예술 검열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의 책임심의관제가 과거와 같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편으로 유인촌 장관의 책임심의관제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문화·예술 정책 비전도 내놓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한 권위주의의 강화를 대변하는 사례 중 하나다.

어떻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내놓는 핵심 정책이란 것이 고작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주관적인 불신과 악의를 근거로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책임심의관 제도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문제적인 요소가 다분한 심의제도를 문체부 공공기관들에 재도입시키면서 문화·예술 현장과 공개 토론회 한 번 열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현재의 책임심의관 제도를 국가검열의 재발 문제에 한정해서 보지 않고, 퇴행적 권위주의를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문체부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더 존속할 이유가 무엇인지라는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갈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홍태림 미술비평가,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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