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거절한 한강, 이제야 그 마음 알 것 같다
전쟁통에 가족을 잃었던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날이 올지 막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사는 영국 서점가에는 예전부터 일본 작가의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작가의 책은 가끔 있는 행운과도 같은 일이라, 한 권이라도 눈에 띄면 타향에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갑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최근 들어 작가 한강을 비롯 꾸준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한국 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세계인들을 독자로 한 한국 작품의 내적인 에너지가 응축되어 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 <작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작품은 어렵다.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장을 열어야 한다. 전작을 읽다가 그 글이 주는 서늘함을 피해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작품은 피하고 싶은 때가 있다. 특히 내 마음이 약하거나 아플 때는 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용기를 내어 작가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읽기를 시작하자 멈출 수 없다. 작가는 내밀하고 조용하게, 심연 깊은 아픔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힘든 여정을 말한다. 폭설을 뚫고 친구의 집을 향해 가는, 가는 길이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막막함. 막상 그 길을 걷게 된 이유마저 사라져 버린 허무함,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되새김의 시간, 눈 폭풍과 같은 시류에 휩쓸려간 민초들의 비극적 사실들을 알아내고 극적으로 표현해 낸다.
책을 읽다가 보면 화자와 함께 눈보라 몰아치는 설원을 하염없이 걷는 기분이다. 내 뺨을 스쳐 녹는 눈송이를 만져보는 것 같고, 나뭇가시에 긁혀 이마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시적 감상에 흠뻑 젖는다. 끌려갔던 외삼촌과 잠시나마 형제들이 나눠 먹었다던 할머니가 싸주셨던 도시락 이야기에 먹먹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저 함께 웃으며 나눠 먹는 밥 한 끼가 행복인 사람들이 겪은 비극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조금은 친절해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느껴 보기도 한다. 독자인 내가 나의 속도로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작가가 조금씩 공감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는 듯하다.
물론 내용을 따라가기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화자의 시점이 '경하'였다가 그 친구인 '인선'인 듯도 하고, 다시 '인선의 모친'으로 바뀌기도 한다. 심지어 후반부로 갈수록 영혼과의 대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이 아픔을 내가 과연 따라가며 호흡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손 끝을 스치는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연의 저 끝,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전해져 온다. 이는 모두 결국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가족의 아픔도 떠올라
문득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있는 큰 재단이었는데 방과 후 정문을 나서다가 학교 담벼락 주위에 빼곡히 붙어 있는 흑백의 대형 사진들을 발견한다.
눈을 감고 있거나 사람의 얼굴인지 그림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뒤틀린 사진들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뒤편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같은 교문을 쓰던 대학생들은 흰 무명천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호전적인 붉은 글귀를 적어 학교 교정 이곳저곳에 걸게를 걸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 담장을 뒤덮던 모든 사진들이 철거됐고, 난 한참 후에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 사진들 중 한 젊은 여인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편안한 얼굴이었으나 목에 상흔이 있었다. 잠든 것이 아니라 실은 나라의 군경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후 며칠을 무서워 혼자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나보다 더 어렸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 엄마는 한 아이씩 맡아 따로 자기로 했는데, 난 엄마와 자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니까 양보해야 했다. 마땅치 않지만 아빠와 한동안 같이 잠을 자야 했다.
내 아버지는 평소에는 다름없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조용해지시고는 했다.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 같았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 가정의 장손이었고, 당시 고작 열 살 소년이었다고 한다.
피난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여동생을 잃었다. 양가집 규수던 친할머니는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홀로 건사해야 했다. 극심한 전쟁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아버지는 아들이자 집안의 기둥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모두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이야기들이다. 명절이면 식구가 많던 친가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이 무색할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픔의 역사에 공감하는 시간도 되길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전쟁통에 가족을 잃었던 내 가족의 슬픔을 생각해 본다. 이미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상상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제주 4.3 사건, 세상의 혼돈의 힘에 휘둘리던 민초들의 삶을 읽는다. 남은 자들에게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하교한 내 아이들을 맞이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에 나와 인터넷 방송을 켠다. 북한에서 한국군이 평양으로 드론을 보냈다며 대남 비방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일 아침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줄을 이은 지는 한참이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을 거절하면서, 그 이유로 세계 곳곳이 전쟁 중인 상황을 말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유난하다고 느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금도 비극의 역사는 진행 중이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을 축하는 마음과 함께 아픔의 역사를 공감하며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내가 사는 영국 서점가에는 예전부터 일본 작가의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작가의 책은 가끔 있는 행운과도 같은 일이라, 한 권이라도 눈에 띄면 타향에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갑던 시절이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 <작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작품은 어렵다.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장을 열어야 한다. 전작을 읽다가 그 글이 주는 서늘함을 피해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작품은 피하고 싶은 때가 있다. 특히 내 마음이 약하거나 아플 때는 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용기를 내어 작가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다음날인 11일 오전 10시 30분께, 특별매대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이서윤(60, 여)씨가 이날 구매한 한 작가의 책 5권을 내보였다. ⓒ 박수림
읽기를 시작하자 멈출 수 없다. 작가는 내밀하고 조용하게, 심연 깊은 아픔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힘든 여정을 말한다. 폭설을 뚫고 친구의 집을 향해 가는, 가는 길이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막막함. 막상 그 길을 걷게 된 이유마저 사라져 버린 허무함,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되새김의 시간, 눈 폭풍과 같은 시류에 휩쓸려간 민초들의 비극적 사실들을 알아내고 극적으로 표현해 낸다.
책을 읽다가 보면 화자와 함께 눈보라 몰아치는 설원을 하염없이 걷는 기분이다. 내 뺨을 스쳐 녹는 눈송이를 만져보는 것 같고, 나뭇가시에 긁혀 이마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시적 감상에 흠뻑 젖는다. 끌려갔던 외삼촌과 잠시나마 형제들이 나눠 먹었다던 할머니가 싸주셨던 도시락 이야기에 먹먹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저 함께 웃으며 나눠 먹는 밥 한 끼가 행복인 사람들이 겪은 비극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조금은 친절해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느껴 보기도 한다. 독자인 내가 나의 속도로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작가가 조금씩 공감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는 듯하다.
물론 내용을 따라가기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화자의 시점이 '경하'였다가 그 친구인 '인선'인 듯도 하고, 다시 '인선의 모친'으로 바뀌기도 한다. 심지어 후반부로 갈수록 영혼과의 대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이 아픔을 내가 과연 따라가며 호흡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손 끝을 스치는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연의 저 끝,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전해져 온다. 이는 모두 결국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가족의 아픔도 떠올라
▲ 영국 서점에 전시되어 있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많은 작품들 중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매대에 전시되어 있다. ⓒ 김명주
▲ 영국 대형서점 포일즈 작가 한강 작품 섹션올해 초 영국 런던 포일즈 서점 한강의 희랍어 시간 영문판 매대 ⓒ 김명주
문득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있는 큰 재단이었는데 방과 후 정문을 나서다가 학교 담벼락 주위에 빼곡히 붙어 있는 흑백의 대형 사진들을 발견한다.
눈을 감고 있거나 사람의 얼굴인지 그림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뒤틀린 사진들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뒤편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같은 교문을 쓰던 대학생들은 흰 무명천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호전적인 붉은 글귀를 적어 학교 교정 이곳저곳에 걸게를 걸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 담장을 뒤덮던 모든 사진들이 철거됐고, 난 한참 후에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 사진들 중 한 젊은 여인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편안한 얼굴이었으나 목에 상흔이 있었다. 잠든 것이 아니라 실은 나라의 군경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후 며칠을 무서워 혼자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나보다 더 어렸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 엄마는 한 아이씩 맡아 따로 자기로 했는데, 난 엄마와 자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니까 양보해야 했다. 마땅치 않지만 아빠와 한동안 같이 잠을 자야 했다.
내 아버지는 평소에는 다름없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조용해지시고는 했다.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 같았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 가정의 장손이었고, 당시 고작 열 살 소년이었다고 한다.
피난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여동생을 잃었다. 양가집 규수던 친할머니는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홀로 건사해야 했다. 극심한 전쟁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아버지는 아들이자 집안의 기둥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모두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이야기들이다. 명절이면 식구가 많던 친가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이 무색할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픔의 역사에 공감하는 시간도 되길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입고돼 진열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전쟁통에 가족을 잃었던 내 가족의 슬픔을 생각해 본다. 이미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상상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제주 4.3 사건, 세상의 혼돈의 힘에 휘둘리던 민초들의 삶을 읽는다. 남은 자들에게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하교한 내 아이들을 맞이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에 나와 인터넷 방송을 켠다. 북한에서 한국군이 평양으로 드론을 보냈다며 대남 비방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일 아침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줄을 이은 지는 한참이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을 거절하면서, 그 이유로 세계 곳곳이 전쟁 중인 상황을 말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유난하다고 느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금도 비극의 역사는 진행 중이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을 축하는 마음과 함께 아픔의 역사를 공감하며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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