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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거절한 한강, 이제야 그 마음 알 것 같다

전쟁통에 가족을 잃었던 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등록|2024.10.16 09:58 수정|2024.10.16 09:58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날이 올지 막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사는 영국 서점가에는 예전부터 일본 작가의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작가의 책은 가끔 있는 행운과도 같은 일이라, 한 권이라도 눈에 띄면 타향에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반갑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최근 들어 작가 한강을 비롯 꾸준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한국 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세계인들을 독자로 한 한국 작품의 내적인 에너지가 응축되어 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 <작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한강의 작품은 어렵다.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장을 열어야 한다. 전작을 읽다가 그 글이 주는 서늘함을 피해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작품은 피하고 싶은 때가 있다. 특히 내 마음이 약하거나 아플 때는 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용기를 내어 작가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다음날인 11일 오전 10시 30분께, 특별매대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이서윤(60, 여)씨가 이날 구매한 한 작가의 책 5권을 내보였다. ⓒ 박수림


읽기를 시작하자 멈출 수 없다. 작가는 내밀하고 조용하게, 심연 깊은 아픔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힘든 여정을 말한다. 폭설을 뚫고 친구의 집을 향해 가는, 가는 길이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막막함. 막상 그 길을 걷게 된 이유마저 사라져 버린 허무함,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되새김의 시간, 눈 폭풍과 같은 시류에 휩쓸려간 민초들의 비극적 사실들을 알아내고 극적으로 표현해 낸다.

책을 읽다가 보면 화자와 함께 눈보라 몰아치는 설원을 하염없이 걷는 기분이다. 내 뺨을 스쳐 녹는 눈송이를 만져보는 것 같고, 나뭇가시에 긁혀 이마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시적 감상에 흠뻑 젖는다. 끌려갔던 외삼촌과 잠시나마 형제들이 나눠 먹었다던 할머니가 싸주셨던 도시락 이야기에 먹먹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저 함께 웃으며 나눠 먹는 밥 한 끼가 행복인 사람들이 겪은 비극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조금은 친절해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느껴 보기도 한다. 독자인 내가 나의 속도로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작가가 조금씩 공감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주는 듯하다.

물론 내용을 따라가기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화자의 시점이 '경하'였다가 그 친구인 '인선'인 듯도 하고, 다시 '인선의 모친'으로 바뀌기도 한다. 심지어 후반부로 갈수록 영혼과의 대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이 아픔을 내가 과연 따라가며 호흡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손 끝을 스치는 아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연의 저 끝,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전해져 온다. 이는 모두 결국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가족의 아픔도 떠올라

영국 서점에 전시되어 있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많은 작품들 중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매대에 전시되어 있다. ⓒ 김명주

영국 대형서점 포일즈 작가 한강 작품 섹션올해 초 영국 런던 포일즈 서점 한강의 희랍어 시간 영문판 매대 ⓒ 김명주


문득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있는 큰 재단이었는데 방과 후 정문을 나서다가 학교 담벼락 주위에 빼곡히 붙어 있는 흑백의 대형 사진들을 발견한다.

눈을 감고 있거나 사람의 얼굴인지 그림인지 잘 분간할 수 없는 뒤틀린 사진들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뒤편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같은 교문을 쓰던 대학생들은 흰 무명천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호전적인 붉은 글귀를 적어 학교 교정 이곳저곳에 걸게를 걸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 담장을 뒤덮던 모든 사진들이 철거됐고, 난 한참 후에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사진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 사진들 중 한 젊은 여인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편안한 얼굴이었으나 목에 상흔이 있었다. 잠든 것이 아니라 실은 나라의 군경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후 며칠을 무서워 혼자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나보다 더 어렸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 엄마는 한 아이씩 맡아 따로 자기로 했는데, 난 엄마와 자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니까 양보해야 했다. 마땅치 않지만 아빠와 한동안 같이 잠을 자야 했다.

내 아버지는 평소에는 다름없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조용해지시고는 했다.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 같았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 가정의 장손이었고, 당시 고작 열 살 소년이었다고 한다.

피난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여동생을 잃었다. 양가집 규수던 친할머니는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홀로 건사해야 했다. 극심한 전쟁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아버지는 아들이자 집안의 기둥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모두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이야기들이다. 명절이면 식구가 많던 친가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이 무색할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픔의 역사에 공감하는 시간도 되길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입고돼 진열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전쟁통에 가족을 잃었던 내 가족의 슬픔을 생각해 본다. 이미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상상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제주 4.3 사건, 세상의 혼돈의 힘에 휘둘리던 민초들의 삶을 읽는다. 남은 자들에게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이해해 보려 애쓴다.

하교한 내 아이들을 맞이하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에 나와 인터넷 방송을 켠다. 북한에서 한국군이 평양으로 드론을 보냈다며 대남 비방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일 아침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줄을 이은 지는 한참이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을 거절하면서, 그 이유로 세계 곳곳이 전쟁 중인 상황을 말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유난하다고 느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금도 비극의 역사는 진행 중이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을 축하는 마음과 함께 아픔의 역사를 공감하며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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