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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없고 집 좁은데 소파 주우러... 이유 알면 눈물 납니다

[넘버링 무비 401]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소파가 있는 꿈> 외 1편

등록|2024.10.15 11:38 수정|2024.10.15 11:38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소파가 있는 꿈>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1.
<소파가 있는 꿈>
한국 / 2024
감독 : 남연우
출연 : 이한중, 정연웅, 성시원

태산과 동주는 누군가 길 위에 버려둔 소파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동주의 호출에 태산이 돕기 위해 나온 것이다.

사실 태산은 동주의 행동이 못마땅하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좁은 집에는 소파처럼 큰 가구를 둘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다. 공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차도 없이 두 사람의 맨손으로 집까지 옮기는 일도 고난이다. 날씨는 춥고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동주는 어떻게 이 먼 곳에 있는 버려진 소파를 발견하게 된 걸까.

남연우 감독의 영화 <소파가 있는 꿈>에는 버려진 소파를 집으로 옮기는 과정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동거 중인 두 사람에게 소파는 언젠가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갖고 싶은 대표적인 가구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갖고 싶은 것이야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이건 현실적인 지점의 문제다.

영화의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면, 이 작품에서 소파는 풍족한 삶을 살기 어려운, 아직 자신의 터를 제대로 잡지 못한 청춘의 표상과도 같다. 소파를 두지 못하는 이유는 집이 충분히 넓지 못해서이고, 버려진 소파를 굳이 주우려는 것은 새 제품을 살 수 없어서다. 그 먼 길을 맨손으로 옮겨야만 하는 이유 역시 무관하지 않다.

소파와 관련된 모든 장면에는 현재의 어려움이 그려지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형 진구의 결혼 소식에 놀라워하는 이유 역시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아직 없어서다. 금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심지어 관계의 측면에 있어서도.

한 가지 흥미로운 설정은 그런 두 사람이 이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5일 앞으로 다가온 이사. 그동안 쓰던 물건을 정리하고 버려도 모자랄 시간에 길에 버려진 소파를 집으로 가져온다는 설정에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동주라는 인물은 여전히 집 안에 새로운 무언가를 설치하고 주워다 놓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어쩐지 지금 당장 이룰 수 없는 꿈을 잠깐이나마 얻고자 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사를 가게 될 집에서도 역시 소파와 같은 크고 비싼 가구를 놓기는 어려울 것이니, 남은 5일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버려진 소파를 통해 잠시 그 꿈에 닿고자 하는 마음이다.

누구에게나 꿈은 존재한다. 모두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쩐지 놓지 않으려는 듯한 동주의 몸짓으로부터 눈길을 뗄 수 없는 것은 그래서인 것만 같다. 이렇게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적어도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영화 <소파가 있는 꿈>은 결코 밝고 명랑한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꿈이 언젠가는 뜨겁게 빛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소파가 있는 꿈>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2.
<드라이버>
한국 / 2024
감독 : 김기익
출연 : 이서한, 서석규, 장현준

19살 실습생 신분의 지훈(이서한 분)은 최우석 과장(서석규 분)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운다. 볼트를 만들고 납품하는 작은 공장의 일은 어려울 것은 없지만 단순한 노동이 반복된다. 지훈은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기술을 배우고 돈도 벌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하루빨리 사회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실제로 현장에서 배우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조차도 제대로 된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관리자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되고 만다.

영화 <드라이버>의 이야기 속에는 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실습생 지훈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관성적인 태도로 중무장한 최 과장이 있다. 일방적인 사수와 후임의 관계인 줄로만 알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의 초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납품할 볼트를 검수하는 단순노동을 최대한 빨리 끝내자는 최 과장과 작은 일이라도 정확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훈의 의견이 대립하면서다.

두 사람의 관계상 지훈의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는 없지만, 완전히 다른 지점에 놓여 있는 지훈과 우석의 태도는 영화를 움직이는 동력의 초석이 된다. 지훈으로 하여금 최 과장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첫 근거로서다.

이 작품이 극을 쌓아가는 방식은 정직하면서도 단순하다. 하나의 인과 관계로 인해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 뒤에 그렇지 않다는 또 한 번의 과정을 보여주는 식. 대충하자던 최 과장의 태도가 계속해서 불량이 발생하는 일에 대한 항의와 전량 회수에 대한 요구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그에 해당한다.

이 장면까지 관객이나 극 중 지훈 모두는 우석에 대해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납품 업체로부터의 통보 이후 최 과장에게는 부장의 성토와 더불어 급한 전화들이 연이어 걸려 온다.

"과장님 많이 바쁘시면 가는 길은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인간성을 떠나 궁지에 몰린 상사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지훈은 이 상황에서 하나의 사고를 더하고 만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최 과장은 지금까지 보여왔던 모습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며 지훈의 실수를 덮어준다. 인생 첫 끗발부터 잘못되면 안 된다는 사려 깊은 마음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다시 깨닫게 된다. 영화가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모두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사실. 자리와 위치에 따라서도 그 모양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매일 실습생만 데리고 와서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며 면전에서, 그것도 지훈의 바로 앞에서 최 과장을 비난하는 거래처 담당자의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체계조차 없이 매번 바뀌는 실습생만 데리고 다니며 업무를 책임지고 처리해야 했던 우석의 처집와 입장에 대해서. 또 문제를 제기하는 그의 방법과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우석과 지훈은 모두 회사를 그만 둔 상태다. 그 이유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영화의 지나온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이다. 표면적으로는 간단한 플롯에 불과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변해가는 인물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아래에 놓여 있었을 컨텍스트를 생각하면 이 작품은 역시 묵직하다. 우리가 떠안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야만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이 영화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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