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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예찬 : 가시 덤불 헤집고 나갈 힘이 생긴다

등록|2024.10.15 10:06 수정|2024.10.15 10:06
밤하늘의 별을 보라. 어둠이 별빛에 떠밀려간다. 외롭고 높고 고단했던 마음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발걸음마저 가볍다. 하늘도 울적할 땐 먹구름으로 별빛을 가리듯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삶 속에서 풀리지 않은 일로 먹구름이 일고 괴로움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그땐 그 어디든 산책해 보는 것이 어떤가.

걷다 보면 그토록 먹구름에 가려진 별들도 속살 보이듯 영롱한 별빛을 보여준다. 과도한 욕심은 어둠 속에 맡겨두고 별빛 앞세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걸어본다. 머리가 맑아지고 세상이 가벼워진다. 그동안 쌓였던 고통이 줄어들고 사유의 공간도 생긴다.

임마뉴엘 칸트 역시 쾌니스베르그 거리를 산책했다. 그는 루소의 작품 <에밀-교육을 위하여>을 읽다 심취한 바람에 산책 시간을 놓친 것 외에는 어김없이 산책했다. 그는 걸으면서 사유 공간을 넓히고 새로움을 채워가며 집필과 강의 준비에 따른 고통을 견뎌낸다. 아인슈타인마저도 틈만 나면 산책하면서 머리에서 벌어진 복잡한 일들을 정리했을 정도이다.

요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으로 세상이 들썩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유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 어느 날 소설가이자 아버지가 생각에 잠겨있는 딸 아이를 보고 "너 지금 뭐 하고 있니?"라고 물었을 때, 그는 "뭔가 생각하면, 안 되나요?"라고 되물었다 한다. 한강 작가 역시 어릴 때부터 타자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오롯이 자신의 방식으로 산책하며 창작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낸 것이다.

우리는 자식들 스스로 산책 길을 걷게 하는 것보다 인생의 지름길을 가르쳐 주려 한다. 자식에게 다가올 고통을 덜어 주자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부모들은 같은 길을 걷는 자식들에게 정보와 삶의 경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가시 덤불을 피하길 바란다. 과연 옳은 일일까.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가시 덤불 가득한 미지의 세상을 걸었던 경험이 있는 자들을 원하고 있다. 아는 길은 점점 AI가 차지하고 있다. 이제 아는 길은 피하고 돌아서 가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길을 가다가 겪는 시행착오가 더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시행착오는 더 이상 손실이 아니고 또 다른 소중한 지식을 쌓는 데 필요한 기회 비용이다. 힘의 요령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던 농경 사회나 산업 사회에서는 부모 경험이나 아는 길이 필요했다. 이젠 아는 길은 더 이상 호기심과 새로움이 창출될 것 같지도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름길을 선호하고 기회 비용을 아깝게 생각한다. 호기심이 작동되고 새로움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라면 기회 비용을 서슴없이 치러야 한다. 학생들에게 기회 비용은 무엇보다 의자에 앉아 참고 견뎌야 할 고통일 것이다. 그때 산책이 필요하다. 산책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머리를 맑게 해주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영감(靈感)을 얻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여, 수험생들이여, 그리고 젊은이들이여, 공부하다 지치면 홀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개울 물 소리, 풀벌레 소리나 바람에 스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산책해 보라. 그리고 걸으면서 사유 하라. 젊은이로서 미지의 길을 돌아 걷다가 가시 덤불을 만났을 때 헤집고 나갈 힘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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