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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이 자괴감으로, 청와대 노동자는 지금

[노동자의 비상구① ] '노동자의 비빌 언덕' 비상구, 다시 시작합니다

등록|2024.10.16 10:27 수정|2024.10.16 10:27
노동의 유형이 다양해진 만큼 노동착취와 사용자 책임 회피의 모습도 다양해졌습니다. 가짜 3.3 노동,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노동 등 어떠한 이름을 붙여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내 마음속 비빌 언덕, 비상구가 필요합니다. 3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비상구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와 제도적·사회적 해결방안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자 합니다.[기자말]
#이야기 하나, 우리는 청와대에서 일하는 노동자

▲ 지난 2일 청와대 정문 펜스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김화빈


비상구 발족식을 준비하면서 상담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에서 일하는데 청와대재단 노동자가 아니랍니다." 처음에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으며 청와대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보니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청와대가 '다단계 하청' 앞장? 청소·경비 민간에 '재하청'> 2023년 11월에 보도가 되었었는데, 근 1년이 지났지만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현 정부가 내걸던 캐치프레이즈다. 그런데 사안을 들여다볼수록 실망스러웠다. 강유정 의원실에 따르면 시설관리·조경·미화·방호·관람안내·홍보 등 모든 것이 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재단에 준 것을 다시 용역업체에 넘기는 '다단계 하청구조'였다(청와대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여러 용역업체에 나눠서 용역을 주고 있으며, A업체는 그 중 하나다).

청와대를 국민 품이 아니라 용역업체 품으로 넘긴 것이다. 하다못해 천연기념물까지 하청을 줘서 사실상 폐가 수준으로 관리가 되었다. 이렇게 운영한다면 청와대재단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파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야기 둘, 근로자를 대표하지 않는 근로자대표

근로자대표는 연차휴가 대체, 휴일 대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시 협의 주체 등 권한이 막강하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자대표의 선출 방식, 임기, 권한 제한 등 근로자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업장에서 엉터리로 근로자대표를 선임하고 있다. 자신의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모르고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사업주와 친한 관리자가 근로자대표가 되기도 한다.

근로기준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이 근로자대표가 되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3.1%에 불과(2022년 기준)하고, 그마저도 50인 이상 기업이 대부분이라 작은 사업장에 노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이상을 주장하는 것이 더욱 힘이 들기 때문에, 최소한의 권리라도 제대로 보장 받기 위해서는 근로자대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근로자대표에 대한 통제장치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은 거꾸로 가는 근로기준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청와대 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의 공백을 사용자가 잘 이용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청와대재단이 하청을 준 용역업체 A사는 2023년 1월 회사 관리자인 김00 과장을 근로자대표로 선임하였고, 그 과정에서 A사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의 서명을 강제로 받았다. 당연히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서명하는 것이라며 따로 불러 서명하고 가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미래의 불이익이 두려운 노동자들은 현재의 불이익을 감수한다.

사진1▲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근로자대표 선임서, 연서명은 있지만 형식적으로 선출한 것에 불과 ⓒ 하은성


그렇게 선출된 근로자대표 김00 과장은 아무런 상의도 없이 휴일대체, 연차휴가대체 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고 6개월 만에 퇴사했다. 개탄스러운 것은 합의의 기간이 2023년 말, 1년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대표가 합의 기간 도중 퇴사하였더라도 '근로자대표가 퇴사할 시 근로자대표의 자격으로 사업장과 합의한 내용에 대해 효력이 없다'는 등의 별도 규정이 없다면 근로자대표로서 합의한 연차휴가대체 합의는 유효하다는 것이 현재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이다(근로기준정책과-2660, 2021. 8. 31). 결국 사업주는 '근로자들 중 사용자대표'만 형식적으로 세우면 연차휴가·휴일 등 수많은 권리를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

#이야기 셋, 처분문서의 증명력? 노동법의 탄생 과정을 보라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노동관계의 실질"로 판단하는 실질주의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는 물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를 판단한 판결의 판시사항이지만, 이러한 취지를 고려한다면 사기‧강박 또는 기망에 의해 문서를 작성하였는지를 기계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노동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여 노동자 권리보호의 관점에서 사안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흔히들 인용하는 "처분문서의 증명력"판결은 노동관계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대등한 양 당사자'를 전제하는 민법과 '사용종속관계를' 전제하는 노동법은 법이 실제로 구현되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처분문서의 증명력 판결은 민사판결로서 대등한 두 당사자 사이의 계약을 전제로 나온 법리이다. 양 당사자 사이의 어떠한 우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로 작성한 계약서의 효력은 사기·강박으로 인한 작성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이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사법(私法)적 관계, 대등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최소한의 근로기준을 정하고 사업주에게 준수할 것을 강제한 것으로서, 공법(公法)적인 성격을 가지는 법이다. 공법이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율하거나 국가 기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인 반면, 사법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말한다.

결국, 국가가 노동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시민법의 계약자유의 원칙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업주의 우월한 지위에 의해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노동부가 진정 성립된 문서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원칙으로 전제하여 사안을 판단하는 것은 시민법의 원리를 수정한 노동법의 탄생 연혁에도 반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 청와대 노동자들의 목소리

청와대 노동자들은 당초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것' 만으로도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다단계 하도급구조'와 최종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의도적 방관, 그리고 고용노동부의 면죄부는 자부심을 자괴감으로 바꿔버렸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요구'라고 명명하기도 민망할만큼 소박하다. 도둑맞은 명절 상여금을 되찾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휴일근로수당을 받으며,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고, 무엇보다 1년 단기 계약직 신분을 벗어나 고용의 안정감을 찾고 진짜 사장에게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질문게시판▲ 도둑맞은 명절 상여금 10만원에 대한 질문을 올렸지만, A업체는 답변이 없다. ⓒ 하은성


그러나 그런 소박한 요구가 노동자들의 책임은 아닌 것은 자명하다. 현 정부는 노동자가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이고 실효적이지 않은 방법들만 해결책이라고 제시하지 않았는가? 그러다보니 현장의 요구는 '인간답게 노동하며 살 권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권리포기각서'에 서명을 강제당하는 현장에서, 소박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요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성취의 대상이 아닌 최소한의 기준이고, 그 기준은 고용구조나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노동법의 기본원칙은 사용자가 편법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앞으로도 단순히 "법 위반은 아닙니다"라고 상담을 마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비상구의 첫 연재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 마음속 비빌 언덕, 비상구가 다시 시작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비상구 기획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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