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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했던 야구팬들, SSG에 다시 박수 보낸 까닭

친정팀서 은퇴식 치르는 김강민... 그가 한국 야구사에 남긴 발자취

등록|2024.10.15 15:05 수정|2024.10.15 15:05

▲ 2022년 11월 8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에서 키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SSG 추신수가 MVP를 받은 김강민을 안고 있다. 2022.11.8 ⓒ 연합뉴스


올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프로야구 선수 김강민이 친정팀 SSG 랜더스에서 은퇴식을 치르게 됐다.

SSG는 15일 공식 발표를 통해 "2025년 시즌 중 김강민의 은퇴식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SSG는 전신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23년간 구단에 헌신하며 다섯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김강민의 공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은퇴식을 열어주기로 했다. 야구팬들도 구단에 오랫동안 헌신한 레전드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는 차원에서 SSG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SK-SSG의 살아있는 역사

김강민의 야구 인생은 곧 SK와 SSG의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1982년생인 그는 경북고를 졸업하고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에 2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본래는 투수로 시작했으나 프로 입단 이후 부상으로 인해 타자로 전향했고, 다시 내야수를 거쳐 외야수로 자리잡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단 후 몇년 간 2군을 전전하며 크게 빛을 보지못했던 김강민은 입단 6년차인 2006년이 돼서야 당시 조범현 감독의 눈에 들면서 1군에서 꾸준히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는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당대의 스타인 박재홍을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는 2000년대 후반부터 SK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3회의 우승을 거머쥐는 데 기여하며 김광현·최정·정근우 등과 함께 'SK 왕조'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본래 수비형 선수에 가까웠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타격도 만개하며 그해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에 선정됐고, 생애처음으로 국가대표에도 선발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2018년에도 우승을 추가한 김강민은 2021년 SK 선수단을 인수해 재창단한 SSG에서도 변함없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을 이어갔다. 2022년에는 SSG에서 동갑내기 추신수와 함께 최고참이 돼 창단 이후 첫 통합우승이자 통산 5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인상적인 맹활약으로 역대 최고령 MVP에 선정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김강민은 2023년 SK-SSG까지 23시즌동안 191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4와 1470 안타, 138 홈런, 674 타점, 805 득점, 209 도루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처럼 인천에서 '원클럽맨'으로 명예롭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할줄 알았던 김강민의 말년에 뜻밖의 평지풍파가 찾아온 것은 지난 해였다. SSG가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에 김강민의 이름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한화 이글스가 4라운드에서 김강민을 깜짝 지명하는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SSG는 은퇴가 가까운 노장인데다 프랜차이즈스타 이미지가 강한 김강민을 설마 다른 구단이 지명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고 안이한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전력보강을 노리던 한화는 김강민의 노련미와 경험이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세대교체를 진행중인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갑작스러운 이적에 큰 충격을 받은 김강민은 은퇴까지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고심끝에 상황을 받아들이고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1년 더 이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하루아침에 아끼던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은 SSG 팬들은 구단을 향한 큰 실망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이 사건은 김강민을 비롯해 SSG와 한화 모두에게 뼈아픈 뒷맛을 남겼다. 김강민은 한화에서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불과 41경기에 출전해 타율 .224 1홈런 7타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이미 은퇴를 앞둔 노장선수를 요란한 무리수까지 두어가며 데려온 것에 비하면 소득은 적었다.

또한 한화는 6월 김강민을 영입했던 최원호 감독과 구단 프런트가 모두 물러나고, 김경문 감독이 시즌중 부임하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더 기회를 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김강민은 지난 7월 17일 NC전에서 마지막 1군경기를 치른 이후 더이상 그라운드에서 만나볼수 없었다. SSG와 한화는 나란히 올시즌 5강 진출도 실패하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으며 누구도 웃지 못했다.

▲ 김강민이 2월 23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 2차 스프링캠프 훈련에서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김강민의 24년이 남긴 진정한 가치

김강민이 한화 유니폼을 입고 유일하게 특별한 여운을 남긴 순간도 있었다. 지난 3월 2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한화의 경기. 팀을 옮기고 처음으로 친정팀 홈구장을 찾은 그가 9회초 2사 타석에 들어섰다.

당시 야구장을 찾은 약 1만 500명의 야구팬은 한화와 SSG 팬들을 가릴 것 없이 일제히 환호를 하며 김강민의 이름을 연호하고 응원가를 함께 불러줬다. 묵묵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서던 그는 팬들의 환호성에 잠시 헬멧을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주심은 김강민이 피치클락에 걸리지 않고 관중들에게 인사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일부러 홈플레이트를 쓸어내며 센스있게 배려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승부를 떠나 현장의 모두가 오직 레전드 한 명에 대한 예우를 위해 하나가 된 순간은, 2024년 프로야구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김강민은 "이제 다른 팀이 된 선수 한 명을 위해서 팬들이 응원가를 불러준다는 게 정말 감사했고 뭉클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구단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팬들이 대신 위로해줬다는 점에서도 치유의 의미가 컸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장면은 결국 김강민이 언젠가는 SSG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복선이 아니었을까.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고사처럼,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겪었던 김강민은 운명처럼 결국 은퇴식을 통해서나마 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됐다. 비록 SSG에서 '원클럽맨' 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팬들은 여전히 김강민의 헌신을 잊지 않았고 구단도 이러한 여론에 화답했다. 그래도 야구판에 아직은 '낭만과 의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 장면이기도 했다.

사실 성적만 놓고보면 김강민은 한 포지션에서 리그를 지배한 특급 선수도 아니었고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와도 거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짐승'이라 불릴 만큼 헌신적인 허슬플레이와 수비력, 꾸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풍미한 그 어떤 슈퍼스타보다도 더 장수하며 팀에 기여했다. 세월이 흘러 왕조의 주축들이 하나둘씩 은퇴하거나 구단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김광현·최정과 함께 오랫동안 팀을 지탱해온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감독들과 스타 선수들이 명멸하는 과정 속에서 꾸준히 그 가치를 인정받은 성실한 팀 플레이어이자, 훌륭한 조연도 충분히 '레전드'의 반열에 오를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것이야말로 김강민의 24년이 남긴 진정한 가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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