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번갯불에 콩 볶나... 22초에 법률 1건 검토하는 국무회의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정부 최고 정책심의기구, 거의 모든 안건에 "이견 없음"

등록|2024.10.16 16:41 수정|2024.10.16 16:41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무회의는 정부의 최고 정책심의기구다. 주 1회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 등 국무위원이 모여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 사항을 심의한다. 정부발의 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국내외 중요정보의 분석 상황, 정부의 역점사업 추진 현황,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시책의 추진 현황, 대국민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할 중요사항, 부처 간 협조가 필요한 사항 등이 국무회의에 수시로 보고되어야 한다.

국무회의 규정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국가의 중요정책이 전 정부적 차원에서 충분히 심의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회의의 위상과 달리 국무회의는 충분한 심의는커녕, 22초에 안건 1개를 검토하는 수준으로 요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39회 국무회의 회의록 일부 ⓒ 행정안전부


지난 1~9월에 열린 국무회의는 총 40회다. 주로 대통령이 주재하고, 해외순방 등 대통령이 부재할 경우에는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된다. 40번의 국무회의 중 가장 논의 시간이 길었던 것은 6월 18일 열린 27회 국무회의였다. 이날은 29건의 안건을 다뤘으며,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대한 결과 보고가 이뤄졌다. 가장 짧았던 회의는 1월 5일 열린 임시국무회의로 11분 동안 진행됐다.

정부 법률안 등을 다루다 보니 회의마다 다뤄지는 안건 수도 천차만별이다. 4건을 다룬 2회 임시국무회의도 있지만, 6월 25일 열린 28회 국무회의에서는 무려 120건을 다뤘다. 국무총리가 주재한 이 회의에서는 법률안 57건, 대통령령안 61건, 일반안 1건, 부처보고 1건을 다뤘다.

국민의례로 시작한 후 국무총리는 회의 전날 발생한 화성 아리셀 화재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국가경쟁력 평가, 저출생 문제 등을 모두발언으로 했다. 9시에 시작한 회의는 안건 120건을 다루고 9시 44분에 마쳤다.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안건 하나에 22초가 걸린 셈이다. 모두발언과 국민의례를 감안하면 안건 하나를 다루는 데 10초는 걸렸을까 싶은 수준이다.

2024년 열린 국무회의를 살펴보니 평균 회의 시간은 40분, 평균 상정 안건은 44건이다. 주요 국가 정책을 위한 부처 간 논의와 심의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는 실제 회의록에서도 나타난다. 거의 모든 안건에 대한 토의 내용이 "이견 없음" 단 네 글자에 불과하다.

▲ 2024년 1~40회 국무회의 개최일, 회의시간, 안건수. 평균 회의시간은 40분. 평균 안건수는 44건이다. ⓒ 정보공개센터


물론 국정운영과 관련한 수많은 안건을 모두 국무회의에서 꼼꼼히 다루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국무회의에 제출된 의안은 반드시 차관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부처의 실효적 논의를 위한 보완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차관회의 운영은 국무회의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1월 5일 ~ 9월 26일 동안 열린 38번의 차관회의의 평균 회의 시간은 18분이다. 한 회의에서 다루는 평균 안건 수는 31건이다. 7월 11일에 열린 28차 차관회의에서는 불과 22분 동안 118건의 안건을 논의했다. 정부가 공개한 회의록에 따르면 차관회의 역시 토의 내용에 "이견 없음" 네 글자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 2024년 1~38회 차관회의 개최일, 회의시간, 안건수. 평균 회의시간 18분, 평균 안건수는 31건이다. ⓒ 정보공개센터


국무회의가 이렇게 진행되어서는 안 돼

문제는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이 번갯불에 콩 볶듯 처리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30일 행정안전부는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시민사회는 정부가 강행하는 이 법안이 윤석열 정부의 불투명한 행정과 정보은폐 기조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정부가 낸 이 알권리침해법은 현재 법제처 심사 중이다. 심사 이후에는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운영을 보건대 이 건이 회의에서 제대로 다뤄질지 의문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해칠 우려가 분명함에도 몇십초 안에 '이견없음' 단 네 글자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국무회의와 차관회의 회의록을 행안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국민의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위해 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가 졸속으로 진행되었다는 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물론 어떤 안건을 다뤘는지 그 안건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 시점이 문제다. 회의가 열리고 1개월여 지난 후에 공개되고 있어 정부가 어떤 현안을 다뤘는지 확인하기에는 늦다. 알권리침해법처럼 정부가 사회적으로 반대 여론이 큰 안건을 밀어붙일 경우, 한 달 이후 공개되는 이 공개주기로는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 행정안전부 국무회의/차관회의 회의록 ⓒ 행정안전부


민주주의는 신뢰성과 투명성, 국민의 참여 보장을 전제로 한다. 이를 국무회의 회의록에 빗대어 본다. 번갯불에 콩 볶듯 하는 회의를 보고 정부가 책임감 있게 일한다고 신뢰할 수 있을까. '이견없음' 네 글자에 투명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다 결정한 후 한 달여 뒤에야 공개하는 이 회의에 의견을 낼 수 있을까.

국무회의가 이렇게 진행된 것이 올해만의 일이거나 윤석열 정부만의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국무회의는 정부의 최고 정책심의기구다. 주 1회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 등 국무위원이 모여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 사항을 심의한다. 1949년 1월 처음 국무회의를 연 이후 계속되고 있다.

이 정도의 무게를 따져본다면 국무회의가 이렇게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 최고 심의기구마저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다른 정책 결정 과정에 신뢰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고 국민의 참여를 보장할 리 만무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에도 실립니다.정보공개센터는 모든시민이 알권리를 누리는 투명하고 책임있는 사회를 위해 활동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