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매너온도 50도의 비밀
[지구를 위한 플랜 A]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나다운 삶' 찾고 싶어
"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기자말]
▲ 나의 당근마켓 프로필 캡처 사진. 현재 매너온도는 51.5도다. ⓒ 신민주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은 부엌과 방이 분리되지 않은 좁은 원룸이었다. 층간소음이 심해 이게 내 방인지 내 옆집 사람의 방인지 헷갈렸던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4년을 살았다. 살면서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층간소음 외에는 그렇게까지 힘든 점은 없었다. 어느 날 음식 냄새를 맡지 않고 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작은 충동은 너무 크게 부풀어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됐다.
보이는 모든 회사에 이력서를 집어넣던 취업준비생 때처럼, 보이는 모든 주택 청약에 서류를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가가 땅을 빌려주고 민간이 주택을 지어서 만든 '사회주택'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이후에는 모든 사회주택에도 입주 지원 서류를 집어넣었다. 아주 운이 좋게, 서류를 넣은 사회주택 중 하나에 붙었다. 당시 살던 곳과는 먼 경기도에 있긴 했지만 거실과 주방이 있고, 방이 두 개나 있지만 시세보다 꽤 저렴한, 그런 판타지같은 집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 집으로 계약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사 예정인 집에 살고있는 세입자에게 혹시 버리거나 팔고 싶은 가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전 세입자에게 커튼과 협탁과 소파와 책장을 샀고, 당근마켓으로 의자와 식탁과 청소기 등 아주 많은 것을 샀다. 유일하게 우리 집에 새것으로 된 것은 옷장인데, 그건 옷장을 사기로 한 이사 당일 거래가 불발되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새것이라곤 옷장밖에 없는 집이 완성되었다. 다 헌 것들뿐인데, 꽤나 그럴싸해보였다.
그동안 당근마켓 매너온도가 50도가 됐다. 매너온도는 거래한 사용자들이 해당 거래가 괜찮은 경험을 남겼는지 토대로 보내는 후기에 좌우된다. 사기를 치거나 아주 비매너적인 태도로 거래하는 사용자들은 많지 않기에 보통은 그냥 거래를 많이 하면 온도가 오르게 된다. 50도의 온도는 대략적으로 100개 정도의 물건을 거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주변에 새 집을 자랑하면서, 매너온도와 그럴싸해보이는 우리집 헌 것들에 대해서도 자랑했다. 내 주변엔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나의 현명한 결정에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똑같이 자랑을 했는데 건너편 사람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자격지심의 몫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긴 했겠지만,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 그 표정을 읽은 후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내 삶은 정말 구질구질할까?
▲ 가지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왜 '취향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 unsplash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이 없다는 점이었다. 청소년이라면 모름지기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옷에도, 화장품에도, 신발에도, 전자기기에도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렸고, 여전히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이 없다.
그런데 가지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이 사회에선 '취향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취향은 모두 어디에 돈을 쓰는지에 관련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 심각하게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구질구질하거나 찌질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주류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꼬리표를 잔뜩 붙이고 살아간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끔은 열심히 나 자신을 꾸며내기 위해 노력해보기도 했다. 필요치 않은 것들을 사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내 자신이 누구였는지 점점 알 수 없어졌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가 걸친 것과, 내 외모와, 내가 가진 것이 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격과 나의 가치관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나를 대표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후자의 기준에 따라서 보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의 것들이 훨씬 나다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 때문에 나는 나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한 때 좋아했지만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체력을 들여 무료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좋다. 남이 좋아했던 것을 싼 가격에 사거나 나눔을 받으며 친절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 비싼 옷을 입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공원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는 흰 티 하나를 만드는데 한 사람이 3년간 마실 물이 필요하고, 매일 40톤의 옷이 헌 옷 수출업체에 들어온다는,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알고 난 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주 많이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삶은 언제나 여러 모양이고, 하나의 기준은 모두를 포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답게 사는 방법은 단 하나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제멋대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월 18일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있다. ⓒ 연합뉴스
너무 많은 것을 만들고,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라고 부추기고, 팔리지 않은 것들을 모조리 폐기하는 사회의 문제는 환경 문제에서 큰 이슈로 다루어진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놓여 있는 지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지구는 유한하고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물건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것이 우리 자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마다 진짜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오리무중이 된다. 물건은 물건이고, 내 자신이 될 수 없는 탓이다. 그러나 사회는 물건을 사람인 것처럼 치부한다. 나는 진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매일 발버둥 치지만, 내 자신보다 내가 가진 것들에 관심이 더 많은 사회 앞에서 자주 나다운 삶을 사는 일에 실패한다.
나답게 사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 끊임없이 무엇을 소비하라고 부추기는 사회를 바꾸고, 당근마켓 매너온도가 한 사람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돕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무엇을 사지 않으면 뒤처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위협하는 광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유행을 억지로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에 반기를 들고, 마음대로 물건을 찍어냈다가 안 팔린 물건을 버리는 관습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볼 수도 있다. 환경을 고민한다는 것이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이어지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물건으로 내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멋지지 않다는 이야기도 더 필요하다. 다들 잘 아는 것처럼 진정한 멋쟁이, 진정한 패션 리더는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유행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다. 이 시대의 새로운 유행은 나다운 것이어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각자의 유행을 만들어보자. 우리는 좀 제멋대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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