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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우월한 인공지능, 미래에서 온 섬뜩한 경고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국립극단의 SF 연극 <모든>

등록|2024.10.16 15:37 수정|2024.10.17 11:31
국립극단에서는 '창작공감: 작가'라는 이름으로 작품 개발 사업을 이어왔다. 올해 사업의 마지막 작품은 신효진 작가의 동명 <모든>이다. 세상은 멸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돔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인공지능에게 관리를 받으며 살아간다. 신박한 설정의 SF 연극이며, 동시에 디스토피아 작품이다.

사실 SF 장르를 무대에 구현하기는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이 SF 연극을 만날 기회도 적었다. 필자 역시 관람한 SF 연극을 떠올려보고자 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모든>은 기대가 됐다.

▲ 연극 <모든> 공연사진 ⓒ 국립극단


통제받고 소외되는 디스토피아

연극 <모든>을 보고 있자면 많은 작품과 이론가들이 스쳐 지나간다. 15살이 된 '랑'이라는 인물은 '생산 가능 인구'로 판정받는데, 여기서 생산 가능 인구는 보통 쓰이는 경제학적 개념과는 다른 뜻이다. 흔히 생산 가능 인구라고 하면, 노동을 통해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15~64세 연령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 세계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유전자를 가져 후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아이를 낳는 데에도 공장과 기술의 힘을 빌리고, 인공지능의 통제를 받는다. 공장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이를 찍어내는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여느 디스토피아 소설 속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관리되는 것을 편하게 느끼고,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쥔 사람 또는 집단이 생각하는 것을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모든>에서는 인공지능이 바로 그 권력을 쥔 주체다.

관람 중 '책 듣기'라는 표현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끼칠 만큼 섬뜩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너무나 감각적으로 표현한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행위와 듣는 행위를 비교해보시라.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읽어나가는, 능동적인 행위다. 반면 책을 듣는 행위는 수동적인 행위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제를 갈구한다. 누군가 자신을 통제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통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가 없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결국 인공지능의 통제에 종속되어 버린다.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는 당시 종교에 대해 논의하며 '소외'를 개념화했다. 그에 따르면 소외란 자신이 만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이후에는 대립하게 되며, 결국 만든 것에 지배받고 종속되는 것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위치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연극 <모든>의 세계는 이런 소외로 점철된 세계라 할 수 있겠다.

최근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면서 윤리적인 고민의 필요성이 늘 대두됐다. 하지만 편리함의 덫에 빠져 위험성을 외면하는 경우도 많다. 연극 <모든>은 이를 경고하며 동시에 실천적 태도를 주문한다.

▲ 연극 <모든> 공연사진 ⓒ 국립극단


생각하지 않는 사회,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연극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의 이름은 '라이카'다. '랑'은 생산 가능 인구가 되면 두 글자 이름을 얻게 된다. 그 이전에는 한 글자 이름, 더 나은 존재라고 인정을 받으면 두 글자 이름. 사람들은 두 글자 이름을 원한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 보면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은 세 글자 이름을 가졌다. 이 역시 섬뜩하다.

라이카는 가장 우월한 존재여서 그런지 자신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사실과 진리를 꿰뚫고 있다는 양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시라. 의심하지 않는 게 과연 가장 우월한 것인지 말이다.

이런 고민에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데카르트 철학의 핵심은 '의심'이다.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계속 의심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를 때에야 비로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설파했다.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더 나은 존재가 되려면 의심을 거두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의심해야 한다. 연극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한 인물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자살을 두고 온갖 추측을 내뱉는데, 말미에 이르러 누군가 깨달았다는 듯 말한다. 그는 자살을 통해 인공지능과의 연결을 끊었고, 그로써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했다고.

▲ 연극 <모든> 공연사진 ⓒ 국립극단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인물은 분명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고, 인간이 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는 오직 인물들의 대사로만 묘사되지만, 필자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의심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고민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라이카,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과 다르다. 생각이 금지된 사회에서도 생각하고,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주어진 것을 의심하는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 요구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한편, 연극 <모든>은 10월 2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강민지, 류혜진, 안병식, 이미숙, 이상은, 최희진이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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