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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정치 양극화, 출구를 찾아서

등록|2024.10.17 11:53 수정|2024.10.17 11:53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기자말]

▲ 중꺾정 -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 ⓒ 참여연대


야당 주도의 입법안 통과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면서 정부·여당과 거대 야당인 민주당 간 평행선 달리기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꽉 막힌 정국을 풀어보고자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대표들이 회담을 통해 "민생 공통 공약 추진 협의 기구 운영"의 설치 및 출범에 대한 합의를 발표하였지만, 일반 시민들이 체감할 만한 뚜렷한 성과물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여의도에서 협치의 증발은 입법 기능을 무력화하고, 국정의 난맥상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정치에 대한 강한 혐오와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상대를 무조건 부정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의 악순환이 초래하는 정치 불신의 책임과 그 피해는 정부·여당이나 거대 야당 중 어느 일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를 부정하고 우리 편만 바라보는 정치를 계속할수록 상대편 지지층의 결집은 더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정치적 내집단(in-group)의 지지에 고립되면 될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외집단(out-group)의 인지적 동원과 반감은 그만큼 더 강렬해지기 쉽다. 나와 우리 편의 확실하고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견고한 반향실(echo-chamber)에 갇히게 되고, 세상은 반으로 갈라져 정치는 더 심각한 병에 걸려들게 된다.

OECD의 2024년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국회 신뢰도는 20.56%로, 조사 대상 전체 30개국 가운데 28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조사 대상 집단인 OECD 국가들 평균치인 36.52%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를 갱신하여 국정 동력 상실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으로 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최근 8~9월 설문 결과를 보면 긍정 평가는 20% 초반대에 머물러 있다. 정치 양극화는 국민의 정치 혐오를 낳고 국회에 대한 불신과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권자 국민과 그들의 주권을 나누어 위임받은 국회와 행정부 모두 이 정치 양극화 시대에 만족스러운 행위자는 없다.

한국 정치 양극화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양한 차원에서 가능하다. 우선, 일제강점기와 한반도 분단 등 근현대사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기반하여 나타나는 진보-보수 간 과거사 문제나 남북 및 주변국 관계를 둘러싼 입장 차, 그리고 권위주의 독재 정권하에서 민주화 운동 과정을 통해 형성된 민주-반민주 진영 간 뿌리 깊은 균열 등 역사적, 이념적 차원의 분석이 가능하다.

거기에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쌓이고 누적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그 밖의 사회 불안정과 피로 요인 등 사회구조적 차원의 문제들도 한국에서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지역 불균형 발전과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동원에 따라 고착화되어온 영·호남 간 지역 대립 구도도 양대 진영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대립을 뿌리부터 뒷받침해 주는 구조적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구조적 차원과 별개로 거대 양당 세력 중심의 정치적 대결구도를 고착화시키는 한국의 정치제도 또한 정치 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대통령제와 결합한 다수제 선거제도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승자독식(winner-takes-all)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력집중과 야당에 대한 철저한 소외와 배제가 지속된다면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더 격화될 수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의 경험처럼 대통령이 의회 다수당과 다른 정당 소속인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인 경우 이러한 정치적 교착의 지속은 정치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지기 쉽다. 거기다 대통령제가 다수결적(majoritarian) 선거제도나 그에 친화성이 있는 양당제와 결합할 때 정당체계가 양대 진영을 중심으로 극단화되어 양극화는 고착화되는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정치 양극화를 추동하는 역사적, 구조적 요인을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치제도에 주목하여 그에 맞는 개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권력 분산의 제도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수직적, 수평적 차원에서 권력 분산을 제도화하여 권력의 집중과 양극화의 심화를 제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직적 권력분립은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권력 분배를 말한다면, 수평적 권력분립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정부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의미한다.

수직적-수평적 권력분립의 정도는 그 나라의 정치 구조와 민주적 원칙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데, 수직적 차원에서 한국은 지방지치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앙정부의 권한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구조라면, 수평적 차원에서는 삼권분립의 형식적 역할과 별개로 입법부나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과도한 권력 집중의 문제가 심심찮게 제기되어왔다.

먼저 수직적 권력구조 측면에서 지방의 중앙정치 논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중앙 차원의 고질적 갈등을 지방으로도 확산시켜 대립과 분열의 전선과 국면을 전국화시킬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중앙집중화된 권력 현상이 고질적 영호남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양극화의 고착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수직적 권력 배분의 제도화를 통해 지방자치와 분권을 강화하고, 중앙 정치의 분열 구도가 지역으로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현상을 제어하면서 동시에 지역 주민들이 중앙 정치의 대립 논리에서 벗어나 지역 정치 고유의 시각과 논리에 집중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수직적 차원의 권력 분산은 정치사회적 균열을 다차원화하고 대립 구도를 분산하여 갈등을 완화하고 나아가 지역주의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편, 중앙정치 수준의 수평적 차원에서도 국가 기구 어느 일방에 의한 과도한 권력 집중을 제도적으로 적절히 제어할 수 있다면, 정치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사전에 방지하고 정치 양극화의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대통령제라는 대통령 중심의 권력구조 틀 안에서 행정부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이라는 문제를 사전에 적절히 제어하기 위해서는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감독 기능이 건강하게 작동해야 한다.

물론, 정부 여당은 대통령과 함께 정권 창출에 성공한 공동 주주라고 할 수 있지만, 여당이 대통령의 권력의지와 일방적 정책 방향을 승인하는 수동적이고 보조적 역할에 그친다면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권력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실질적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오작동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정부 여당의 여당으로서의 정체성과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입법부 일원으로서의 정체성 간의 균형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법부는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 때 이를 법적 기준에 따라 중립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정치의 사법화가 정치과정의 마비를 유발한다면,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고 나아가 기관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훼손하여 사법부의 권력 감시와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사법부의 철저한 독립성 보장과 법치주의 확립이 다시금 강조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비교민주주의 연구들에 따르면, 정치 양극화가 진영 간 갈등과 대립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면서, 극단적인 정치 지도자나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출현 가능성을 높이고, 민주적 정치과정을 왜곡하여 민주주의 퇴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수직적, 수평적 차원에서의 권력 분산 시스템의 제도화를 통해 분열과 대립의 동력과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갈등과 균열의 차원을 다차원화하여 한국 정치 과정의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고 양극화 해소의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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