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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탄 작가의 책, 그럼에도 읽지 않는 건

채식주의자, 읽으려 했지만... 도서 선택의 기준, 수상 여부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등록|2024.10.16 18:27 수정|2024.10.18 08:05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자 중국과 일본 사이,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이 작은 나라에 고요한 쓰나미(?)가 몰려왔다.

나도 작가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마치 나의 영광처럼 명예로웠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의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대한민국엔 BTS도 있지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을 만큼 벅차올랐다.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다. 시민들이 추가로 진열된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구입하고 있다. ⓒ 이정민


뉴스와 방송은 한강 신드롬에 관한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6일 만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고 하고, 작가가 운영하는 서촌의 작은 서점은 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마치 성지순례 하듯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책 좀 읽었네 하는 사람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의 연혁을 줄줄 읊어대며 자신이 아는 걸 뽐내기도 하고, 심지어 책이라고는 교과서 외엔 보지 않는 내 둘째 아이조차 '한강'과 '채식주의자' 두 단어를 입으로 내뱉기까지 했다.

나도 며칠을 축제 분위기 속에서 들떠 있었다. 며칠이 지나 내 안의 작은 축제 열기가 사그라지자 불안이 찾아왔다. 내 불안의 원인은, 내가 작가의 대표 저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작가가 채식주의자라는 소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후였다. 내가 도서관 좀 들락거리고, 책 좀 읽었다고 주변에 소위 '젠체'하기 위해서는 그 소설을 읽어야 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채식주의자를 빌려 처음엔 편안한 자세로 책장을 넘겼다. 편안했던 자세는 점점 잔뜩 힘이 들어가서 불편했다.

어쩌면 자세가 불편한 게 아니라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으려고 하는 내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책은 잘 읽히지 않았고, 결국 반납 기일이 되어 다 읽지도 못한 채 채식주의자를 도로 반납한 후로 나는 그녀의 글들을 적극적 자세로 외면해 왔다.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끝내 읽지 못한 것은 한 인간의 아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더 깊은 인간의 폭력성의 심연의 바닥을 들추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다소 무겁고, 얇은 유리처럼 깨질 듯이 긴장되는 소설의 분위기와 두렵고 폭력적인 문장들이 당시 나에게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저 취향의 차이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수상했다고 해서 꼭 읽어야만 할까

추가 공급되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가 추가공급되고 있다. ⓒ 이정민


100만 부라는 판매 수량을 단순히 계산해 봐도 전 국민의 50분의 1. 즉, 50명 중 한 명은 채식주의자를 읽었다는 말이 된다(내가 책을 빌려놓고 읽지 않은 것처럼, 책을 구입하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간과해 주기 바란다).

뉴스와 통계 숫자들은 나에게 다시 채식주의자를 읽을 것을 권하고 있었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그 책은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게 비난 받을까 불안했다.

나는 읽지 않을 결심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마다 영화, 의복, 음식 등의 취향이 다르듯이 독서에도 취향이라는 게 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역대 개봉영화 중에 범죄도시나 마블 시리즈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영화들을 보지 않았다.

싫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다.

천만 관객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내 체면이 구겨진다거나 나의 지적 수준과 취향을 의심 받지 않지만, 유독 독서에 있어서 사람들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나는 에세이, 따뜻한 소설, 만화, 요리책, 그림책들도 참 좋아하는데, 대체로 쉽게 읽히거나 예쁜 책들이다. 내가 에세이나 그림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은근히 얕잡아 보며 깔보기도 하고 고전이나 유명한 수상작들을 읽을 것을 강권하기도 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고전을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나 또한 공자의 <논어>나 믿음사에서 나온 문학전집에 있는 책들을 때때로 읽으며 즐기기도 한다.

다만 도서 선택의 기준이 굳이 백만 독자가 선택한 책이어서가 아니라 내 취향에 부합하거나 지금 내 상황에 필요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자유의지가 바탕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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