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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첫 현장, 박찬욱 감독이 한 말... "대본 다 다시봤다"

[29th BIFF]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기자회견

등록|2024.10.17 11:03 수정|2024.10.17 11:18
지난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전,란>은 지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도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 및 제작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처음 선정한 OTT 작품이기도 했다. 화려한 액션과 각각의 군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물 간의 대비가 뚜렷하게 드러나며 짜임새 있게 완성된 영화는 예상보다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2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이제 막 영화를 접한 관객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내용이 넘쳐났는데, 그중 일부를 요약하여 전달한다. 이 자리에는 김상만 감독과 함께 배우 강동원·박정민·차승원·진선규·정성일·김신록 배우가 참석했다.

한편, 영화 <전,란>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왜란의 시대에 적이 돼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조의 최측근 무관으로 왕을 보필하는 일이 우선인 인물과 의병으로 국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인물의 대립 속에서 파란의 세월이 그려진다. 넷플릭스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시각화"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기자회견 ⓒ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가 어느 정도 실화에 기반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강동원·박정민 배우의 경우 검술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액션에 어떤 부분을 신경 쓰면서 연기하셨는지요.
김상만 감독 : "임진왜란이라는 시대 배경 자체에서 출발했습니다. 선조 시대를 그리고 있다는 것 외에는 전부 창조된 인물이고요. 실화 기반이라기보다는 배경 정도에서만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들을 많이 시각화하려고 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강동원 배우 : "제가 맡은 천영은 자유분방한 검을 쓰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상대했던 인물의 검을 바로 흉내 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천재 검사죠. 여러 인물과 검을 나누는 장면이 많았기에 그때마다 상대방에 대한 다양한 감정에 대해 무술팀, 감독님과 이야기 나눴던 것 같습니다. 감정을 잘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열심히 찍어봤습니다."

박정민 배우: "저도 천영과 헤어지기 전에는 비슷한 검술을 쓰는데요. 헤어지고 나서 7년 정도의 시간 동안 왕을 호위하고 군대 안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조금 다른 느낌의 검술을 구현하고자 감독님, 액션팀과 많은 상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로 천영보다 조금 더 굵고 큰 검을 쓰고, 세로 형식의 검술이 아닌 머리 위에서 가로의 형식으로 가져가는 검술로 고민해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최근에 한국 극장가가 힘들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상만 감독: "영화가 어렵다는 이야기 있는데요. 어느 시대마다 그런 고비가 항상 한 번씩은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시대가 변하는 과정에서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영화 자체가 없어지거나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요. 조금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생명을 유지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신록 배우 : "일단 저희 영화가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가 되는데요. 전 세계 190개 국가에 공개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저희 영화를 사랑해 주시면 이게 스크린으로도 이어지고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도 함께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정민 배우 : "아시다시피 저희는 항상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 노력을 계속해서 해나갈 것이라 믿고 있고요. 그 노력을 놓지 않는 한, 한국 영화가 많은 분들께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후반부의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통상적으로 클라이맥스에서 검무를 할 때 보통은 2명이 합을 맞추는데, 이 영화는 3명이 겨루는 게 큰 특징이었습니다. 캐릭터 구축에서 어떤 주안점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주연이 아닌 다른 인물들이 당시의 집단, 사회적 입장을 정교하게 대표하고, 통념을 벗어나는 인식과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캐릭터 구축에 배우들의 어떤 의도가 담겼는지요.

김상만 감독 : "일단 말씀하신 장면에서 세 명의 인물이 싸우는 부분은, 시나리오에는 '3인이 싸운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설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과 같은 작품을 레퍼런스 삼아 보기는 했지만, 검술로는 이게 또 다른 부분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생각한 아이디어 중 하나가 안개였습니다. 서로의 상대가 계속 바뀌면서 오리무중의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 또 어떤 순간에는 싸움으로부터 격리돼 어디서부터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런 고독감도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리자면, 어쨌든 이 영화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사회·계급 시스템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인물이 시대마다 분명히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 사고하는 각자의 틀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을 대표하는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각자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하셨는지 저도 듣고 싶네요."

정성일 배우 : "겐신이라는 인물 같은 경우는 대본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겐신이 무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사무라이 역이긴 하지만 무사도 정신이 아닌 살인이 살육으로 변해가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을 통해서 대결하고 실력을 쌓아가는 모습보다는 말이죠. 마지막에는 결국 자만하고 오만해서 스스로 무너지는 그런 인물로 저는 생각하고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진선규 배우 : "김자령은 의병장입니다. 양반 출신으로 의병을 모아서 전란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자 했던 인물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이상만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 것 같기도 했어요. 왕인 선조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데도 왕권에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양반이기도 했고. 양쪽 모두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병을 통해서 어떤 모습이 서민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었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김신록 배우 : "범동 같은 경우에는 의병인데요. 의병장인 김자령 장군을 무척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김자령 장군이 유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인물이었다면 범동이 믿는 것은 생각이나 관념 같은 것이 아니고 자기 몸과 마음으로 깨우친 삶의 순리 같은 것을 중요시하는 인물이죠.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산천초목과 내 가족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 것 같아요.

처음 대본을 쓰셨을 때는 남자 캐릭터였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한테 캐스팅 제안을 주셨을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시절에 여자가 의병에 합류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이런 참혹한 시기를 겪으면서 그냥 발을 동동 구르는 일밖에 할 수가 없어서 되려 나서게 되는, 굉장히 선하고 용감한 사람을 그리고자 했어요. 이 사람의 원동력이 신념이나 체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삶의 경험을 통해서 소중하다고 믿게 되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감독님과 나눴습니다."

차승원 배우 : "선조라는 인물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워낙 손을 많이 탔던 캐릭터라 표현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별로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민을 되게 많이 했던 부분이었고요. 두 가지 정도만 생각하고 연기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고약한 맛. 그리고 왕으로서의 위엄있는 맛. 이 두 가지가 뱀이 똬리를 틀듯이 마음속에 딱 자리잡아서 그게 한 신 안에서 양쪽으로 파생될 수 있게 그런 캐릭터로 구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칫하다가 저울의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기울면 약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경계를 잘 타야 했던 인물이었죠. 다행히 감독님께서 여지를 많이 열어주셔서 캐릭터에 살을 풍성하게 입히는 데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 제안으로 연출"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기자회견 ⓒ 부산국제영화제


- 박찬욱 감독이 제작을 맡고, 모호필름이 참여한 작품으로 많이 홍보되는데요. 정확히 박찬욱 감독이 어떤 도움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상만 감독 : "박찬욱 감독님과는 < 공동경비구역 JSA >(2000)의 미술 감독을 했을 때 처음 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연출로서도 입봉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는데요. 제가 감독이 되기까지 스승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도 그동안 제가 했던 작품에서 어떤 장점을 봐주셨는지 감독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셨는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작품의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각색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도 시나리오를 일일이 다 보시면서 이야기 나눠주셨어요.

현장에는 많이 못 오셨는데요. 하나 기억나는 게, 현장에 오셨던 날 대사 한마디를 정확하게 디렉션하며 조언을 해주셨던 장면인데요. 이 이야기는 동원씨가 직접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좀 놀라웠어요. 그 장면이."

강동원 배우 : "박찬욱 감독님이 현장에 처음 오셨던 날이었어요. 제가 한 장면을 연기하고 모니터로 돌아왔는데, '방금 그 단어 장음이다. 그거 단음이 아니라 장음이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장원 급제'라고 말했던 부분이었는데, 박 감독님께서 '장-원 급제다'라고 지적해 주셨던 기억이 나요."

김상만 감독 : "더 놀라운 건, 강동원씨가 그날 돌아가서 자기 대사 분량에서 장음, 단음을 다 체크해왔더라고요. 동원씨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소한 디테일 같은 것이 저한테는 충격적일 정도로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편집본 낼 때도 제가 관성적으로 편집한 부분이 조금 있었는데요. 그런 부분도 다 일일이 뜯어보시고 '잘 찍어놓고 왜 이렇게 편집했어'라며 원래 의도를 다 살려서 마무리하는 데 도움을 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 박찬욱 감독님께서 제안했을 때 이 영화에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오늘 언급하신 것처럼 영화는 계급과 신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금 시대에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연출하셨는지요.
김상만 감독 : "시대를 보는 관점에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계급에 대한 관점과 같은 부분은 평소에도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작품은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각자가 그 시대에 대한 관점을 모두 다르게 갖고 있고 그것을 잘 녹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모두 다르잖아요. 그런 부분을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동안 사극 연출을 거의 안 했는데요. 만약에 한다고 해도 고증이 너무 선명한 조선시대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핵심이 되는 임진왜란, 가장 큰 이벤트의 시간 7년을 제외하고 전후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그런 부분도 참신하다고 느꼈고... 그런 부분들에 이끌려 작품을 연출하게 됐습니다."

- 김신록 배우는 영화의 홍일점이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신 개인적인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김신록 배우 : "말씀하셨듯이 범동은 자령의 오른팔이 천영이라면 왼팔이 범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무예가 뛰어난 인물입니다. 다만 이 무예가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실전에서 수많은 게릴라 전투를 통해 얻은 자신만의 싸움을 구사할 줄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액션스쿨을 다니면서도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범동이 쓰는 도리깨라는 무기도 원래는 그 시절 백성들이 깨를 털 때 쓰는, 곡식을 터는 농기구거든요. 평범한 백성이 그걸 무기 삼아 들고나와 어떻게든 싸워내려고 했던 전사가 어쩌면 동력이자 에너지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무기를 제작할 때도 저의 신체 사이즈, 움직임의 반경, 힘의 세기 같이 여러 부분을 고려해서 도리깨의 두께, 길이, 강도, 탄성 같은 것들을 여러 차례 시범 제작했습니다. 그런 많은 노력이 들어간 액션이 가장 큰 미션이었습니다.

범동의 움직임이 깔끔하거나, 배워서 익힌 움직임이 아니라 조금 더 투박했으면 좋겠다고 무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네요. 이 인물이 책상 앞에서 책으로 어떤 인간의 도리를 익힌 사람들과는 다르게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 같은 것이 보였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연기할 때도 이성적으로 사유하거나 추론해 내는 눈빛이나 표정을 짓는 대신, 충동적이고 직감적으로 사태를 맞이하는 모습을 어떻게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대동계 말고 다른 이름이 필요한데 어떤 이름이 좋을까?' 하는 물음에 천영이 '범동계 어때?' 세상이 두루 하나다. 범.동' 이렇게 말하면서 웃고 춤추는 군중들을 보여주면서 끝나는데요. 마지막에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름의 역할을 했다는 것도 정말 뿌듯했고 좋았습니다."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란> 기자회견 ⓒ 부산국제영화제


- 강동원 배우는 영화 <군도>에서는 양반 역할을 하면서 도포를 입고 말 타는 액션을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몸종이 돼 허름한 옷을 입은 채로 말을 타고 액션을 하셨습니다. 그때와 지금 어떤 차이가 있으셨을까요?
강동원 배우 : "제가 몸종이나 노비 역할은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이 들어왔을 때 좋았어요.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었거든요.

사실 양반 역할을 하면 제약이 많습니다. 말도 조심해서 해야 하고 감정 표현도 절제해야 되거나, 덜 자유롭다고 할까요? 어쨌든 양반으로서의 기품과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정민씨 몸종을 하면서 편하고 자유롭게 연기해서 좋았습니다. 연기할 때도 감정 표현을 할 때 기존에 했던 캐릭터보다 더 크고 많이 하려고 했었고. 액션 자체도 조금 더 자유롭게 마음껏 했던 것 같네요. 칼을 움직일 때도 형체가 딱딱 떨어지지 않는 움직임을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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