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12신고 대응 안 했는데 무죄? 구조요청 어디에 해야 하나"

[현장] 김광호 전 서울청장 등 1심 무죄... 유가족들 "1년간 기소 안 한 검찰, 면죄부 준 법원"

등록|2024.10.17 11:45 수정|2024.10.17 17:47

무죄 받은 김광호 전 청장, 항의하는 이태원참사 유가족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유가족의 항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기사대체 : 17일 오후 4시 53분]

법원이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간부 3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법원이 지난달 3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일선 관할경찰서 관계자들에게 유죄를 내린 것과 달리, 상급기관인 서울청에는 참사 발생의 구체적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김 전 청장은 지금까지 이태원 참사로 기소된 인사 중 최고위직으로, 당장 "159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를 용산서 차원에서 꼬리 자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부장판사 권성수·박진옥·이준엽)는 17일 김 전 청장과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관리관, 정대경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3팀장의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1심 재판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내 2인자로 서울 전체 치안을 총괄하는 자리지만, 재판부는 김 전 청장에게 인파사고 대처에 대한 '일반적인 책임'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의무'까지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의 일반적인 질서 유지 필요성에 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보여지긴 한다"면서도 "용산경찰서 관할의 자치사무는 원칙적으로 용산경찰서의 소관"이라고 했다.

이어 "안전 사고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예측하기 위해선 최소한 인파가 운집하는 형태나 시간 및 장소나 특징들이 파악돼야 하는데, 서울 전체를 관할하는 서울 경찰청장으로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본적인 사정을 직접 파악하는 게 아니라 1차적으로는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가 제공한 정보에 의존해서 파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김 전 청장이 받은 보고서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2022년 10월 28~30일까지 이태원 일대에 다수의 인파가 상당히 집중될 것이라는 내용을 넘어서, 이 사건과 같은 대규모 인파 사고가 발생될 여지도 있지 않겠냐는 우려나 그와 관련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미리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022년 핼러윈은 3년 만의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로 인파 운집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서울청장이 구체적으로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사전에 예견해 대비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용산서에 넘기며 무죄를 주장해온 김 전 청장이 재판 내내 견지해온 논리다.

김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 2주 전부터 4차례(▲2022.10.14 서울경찰청 정보부 '핼러윈 데이(10.31)를 앞둔 분위기 및 부담요인' ▲2022.10.24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 '핼러윈 축제 관련 관광경찰대 특별현장 활동 계획' ▲2022.10.27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핼러윈 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 ▲2022.10.27 '2022 핼러윈 데이 교통관리 계획 보고) 이상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한 보고를 받은 바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최새얀 변호사는 선고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대목 판결의 취지는 김 전 청장이 서울청이나 용산서로부터 보고를 받았음에도 이태원 참사와 같은 다중 인파 안전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는 건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사고를 말 그대로 예견할 수 있는 건 신 외에 아무도 없다"라며 "구체적인 사고가 아니라도 위험성이 있으니 미리 안전 대책을 세웠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건데, 재판부가 너무 협소하게 해석했다. 용산서 선에서 꼬리를 자르려는 느낌이 강하다"고 했다.

112 '압사 신고' 빗발 쳤는데… 사전대비 단계뿐 아니라 참사 당일 대응에도 '면죄부'

눈물 보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받자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연합뉴스


재판부는 참사 이전 대비 단계에서는 물론,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의 대응에서도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참사가 일어난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6분으로부터 4시간여 전인 그날 오후 6시 34분부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주변에서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시민들의 112 신고가 11건이나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는 서울청 경찰들의 잘못이 아니라 경찰 내부의 "인적·물적 한계"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당일 근무한 112 신고 접수반원은 25명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의 신고를 처리했다고 진술하고 있다"라며 "서울경찰청 112 상황실에서 (참사 당일)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이뤄진 1800건의 112 신고 접수 상황과 코드 분류 내용들이 반드시 불합리하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통상 서울 지역에서 시민들이 112신고를 하면 서울청 112상황실에서 최초 접수한 뒤 중요도에 따라 코드0~4를 분류해 관할 경찰서로 내려 보내는데, 이태원 참사 전 11건의 신고가 중복됐던 것만으로는 서울청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할 만한 시스템이 미비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참사 전)오후 9시를 전후해서 수분 간격으로 112신고가 접수된 건 맞지만, 서울청 112 시스템의 콜백 기능만으로는 특정 장소에 동일한 안전 사고 우려 신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실제 혼잡 상황은 현장에 출동한 관할 경찰관이 가장 잘 알고, (서울청은)관할 경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관할서인 용산서가) 112 신고를 종결 처리하는 이상, 서울경찰청에서 별도로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조치해야 될 법적인 주의의무까지 부과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같은 논리로 법원은 참사 당일 112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류미진 전 서울청 112상황관리관과 정대경 전 서울청 112상황3팀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참사 당일은 토요일이어서, 류 전 상황관리관이 주말 당직 순번의 형태인 112상황관리관으로서 서울경찰청장의 상황관리 업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그 하급자인 정대경 전 112상황3팀장은 야간 당직을 서고 112신고에 대응하고 있었다.

법원은 참사 당일 김 전 청장이 인근 용산 대통령실 앞 반정부 시위에 동원된 대규모 경찰관 기동대 중 일부만이라도 이태원에 재배치해 참사를 막았어야 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역시 관할서인 용산서로부터 기동대 지원 요청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급기관인 서울청 잘못이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용산서에서는 서울청에 (경찰관 기동대가 아닌)교통 기동대를 요청한 외에는 경력 요청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서울청 경비과에 이 사건 당일 저녁 8시 52분부터 56분경 사이 용산서장이 지휘하는 경찰관 기동대 경력까지 집회 시위 현장에서 해산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보내기도 했다"라며 "김 전 청장이 (경찰관 기동대 재배치 등)더 이상의 지시를 내리지 않았던 것이 감독 책임을 해태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 참사 현장에서 불과 1400미터 떨어진 대통령실 앞에는 67개의 경찰관 기동대가 배치돼있었다.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김 전 청장은 토요일임에도 이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출근해있었고, 오후 8시 33분께 시위가 마무리된 이후 퇴근했다. 경찰관 기동대 역시 그대로 해산됐는데, 이태원 일대에는 혼잡 경비 전문인 경찰관 기동대가 전혀 없었다.

퇴근한 김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후 1시간 20분이 지난 당일 오후 11시 36분에야 이임재 전 용산서장의 전화를 받고 처음 참사 상황을 인지했다. 정 전 112상황3팀장은 오후 10시 59분께 소방에서 연락을 받은 뒤에야 참사 사실을 알았고, 류 전 상황관리관은 오후 11시 39분에야 처음 인지했다. 심지어 류 전 상황관리관은 당직 근무 위치인 112상황실을 벗어나 있었는데, 법원은 이날 이를 '업무상 과실'로는 인정했지만, 참사와의 인과관계는 없다며 무죄를 유지했다. 설령 112 상황실에 정착근무를 했더라도 상황관리관 좌석에 112시스템이 설치돼있지도 않고, 112 신고 접수 및 지령대 쪽과는 거리가 멀어 대처하는 데 차이가 없었다는 류 전 상황관리관 측 주장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러한 물적 현황이 국민들 보기에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현장 관리에 관한 1차 책임자인 용산서장 책임과 별개로 이를 지휘하는 서울청장으로서 그 임무를 총괄하고 소관 경찰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할 지위에 있는 김 전 청장에 대해서도 그 직무 수행에 있어서 매우 유감스러운 측면이 있음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형사 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업무상 과실"이라고 했다.

용산구청 이어 서울경찰청에도 "전부 무죄"… 울부짖은 유가족들

김광호 전 청장 1심 무죄 선고에 눈물 보이는 이태원참사 유가족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무죄를 확정받자 유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판사의 전부 무죄 선고를 듣자마자 법정에서 소리 내서 흐느꼈다. "이게 나라냐", "이럴 거면 재판을 왜 하나", "모두 무죄인데 아이들이 다 죽었나"라는 성토가 법정에 울려 퍼졌다. 이태원 참사 사망자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이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정민씨는 판결 직후 기자들 앞에서 "112 신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도 안 한 게 무죄라면, 대체 국민들은 구조 요청을 어디에다 해야 되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이 위원장은 "사법부가 '윗선' 김 전 청장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애초에 검찰이 김 전 청장에 대해 1년 동안 방탄을 하며 기소를 안 했는데, 오늘의 결과는 국민의 편이 아니라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검찰의 방탄으로부터 나왔다"고 했다.

앞서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선상에 올랐던 이들 중 최고위직에 속하는 김 전 청장은 지난 1월 19일에야 기소됐다. 2023년 1월 13일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김 전 청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지만, 이후 검찰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나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곧바로 기소한 것과 달리 김 전 청장에 대해선 무려 1년 여간 기소를 미뤘다. '윗선 봐주기' 논란 끝에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까지 거친 뒤에야 김 전 청장을 재판에 넘겼다. 이날 무죄 판결은 김 전 청장 기소 9개월 만에 나왔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 류 전 과장과 정 전 팀장에 대해선 각각 금고 3년과 금고 2년 6개월을 구형했었다.

이로써 이태원 참사 발생에 책임이 있다고 검찰이 판단한 서울경찰청·용산경찰서·용산구청 중, 1심에선 일선 관할경찰인 용산서 관계자들만 형사책임을 인정받게 됐다. 지난달 30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이임재 전 서장 등 용산서 경찰관들은 1심에서 금고형의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청장 공판기사]
- 김광호 전 서울청장 "핼러윈? 미국선 아이들이 사탕 받으러 다니는 날" https://omn.kr/27rbr
- "핼러윈은 용산서가 대응"… 하급기관에 책임 돌린 김광호와 서울청 https://omn.kr/28f85
- 김광호 앞에서 진술 바꾼 부하경찰 "경력 배치했어야? 제가 경솔했다" https://omn.kr/28x4y
- 경찰 실무자들 "기동대 30분 내 도착 가능, 이태원 참사 막을 수 있었다" https://omn.kr/29rx0
- '금고 5년' 구형에 책임미룬 김광호 "사기 관리가 서울청장 역할" https://omn.kr/2a13l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