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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발굴지 토사를 '흙 필요한 분' 처분이 웬 말

'남원성 북문터 발굴지' 인근 현수막 논란... 남원시 "오염된 표층 걷어 반출, 앞으론 잘 보관할 것"

등록|2024.10.18 13:54 수정|2024.10.18 17:51

▲ (구)남원역사 앞 삼일운동기념비 ⓒ 이완우

▲ (구)남원역사 앞 삼일운동기념비 ⓒ 이완우


남원시 동충동에는 (구)남원역 역사, 승강장과 철도 선로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구)남원역사 앞 광장에는 삼일운동기념비(三一運動記念碑)가 서 있다.

지난 16일 (구)남원역을 찾아가 보았다. 삼일운동기념비 주위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도로에서 접근하는 길도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삼일운동기념비 양 옆에는 두 그루의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가 무성하게 자라 우뚝 서 있었다. 개잎갈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들어와 국내에 퍼진 대표적 수종으로 일제 잔재로 알려져 있다.

(구)남원역 역사와 철도 부지는 조선 시대에 남원읍성 북문터 자리였다. 일제는 1931년에 전라선 철도를 남원까지 부설하면서 남원성 북문터에 남원역을 세웠고, 1933년부터 철도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남원역은 2004년에 남원시 신정동으로 이전했다.

남원읍성을 헐고 그 자리에 남원역 지은 일제

400여 년 전인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은 전라병마군 1000명, 명나라군 3000명, 승병과 남원 백성 7000명이 남원성을 포위한 5만8000명의 왜군 병력에 맞서 당당하게 사흘 밤낮을 싸웠다. 남원성이 불타고 차례로 함락되며 마지막 북문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었고 성안에서 왜군에게 항쟁한 일만 명이 순국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일부러 전라선 철도의 남원 구간 선로가 남원성 북문터를 지나가게 설계했다. 일제는 남원읍성을 헐고 그 자리에 전라선 남원역을 지었다.

(구)남원역 구내에서 수백 미터(m) 떨어진 동북에는 선로 구배가 심하면서 곡선으로 휘돌아가는 철도가 놓였고, (구)남원역을 지나 서남쪽으론 곡선으로 휘돌아가는 철도가 놓였다. (구)남원역은 철도역으로 삼기엔 지형 조건이 불리한 곳인데도, 일제는 정유재란의 대표적 항쟁지인 남원성을 파괴하려고 남원성터로 철도가 지나가게 하고 북문터에 남원역을 조성하였다.

남원성 북문터에는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한 만 명의 무덤인 만인의총(萬人義塚)의 원래 무덤과 충렬사가 있었다. 일제는 남원성 북문터와 만인의총 원래 무덤 자리를 (구)남원역 부지로 편입하고 철도를 놓은 뒤 증기기관차의 타고 남은 석탄 찌꺼기를 퍼부었다. 만인의총과 남원성을 짓밟으며 남원성 전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

만인의총과 충렬사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구)남원역 부지와 가까운 북쪽에 모셔져 있다가, 1964년 현재의 남원시 향교동으로 이전했다. 도편수 이한봉(李漢鳳, 남원 광한루 방장정 시공 도편수)씨는 만인의총 봉분을 모시고 부속 건축물을 세웠다.

일제는 남아있던 남원성 성벽을 뜯어내어, (구)남원역 승강장의 기초석 석재로 활용하는 등 남원성에 서려 있는 민족혼을 짓밟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구)남원역 승강장 옆의 선로에는 현재 잡초가 무성하다.

▲ 구 남원역 승강장 ⓒ 이완우


현재 남원시는 (구)남원역과 남원성 북문터 자리에서 만인공원(萬人公園)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남원시는 광복 70주년 일제강점기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2025년까지 남원성 북문, 남원성 북성벽 복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인공원 조성사업은 남원읍성 복원과 연계하여 만인정신과 역사성에 부합되는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로 2027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현재 문화재 조사를 위한 발굴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남원성 북문터 발굴 지표조사 현장 ⓒ 이완우

▲ 남원성 북문터 발굴 지표조사 현장 ⓒ 이완우

▲ 남원성 북문터 지표조사 발굴 중 토사 야적더미 ⓒ 이완우


남원성 북문터 발굴 조사지를 찾았다. 조사지는 가로 세로 50~60m가 넘는 넓은 구역에 대해 2m 가까운 깊이로 표토를 걷은 상태였고, 발굴지에서 파낸 토사를 (구)남원역 부지에 길이 60m, 폭 30m와 높이 4m의 거대한 야적장처럼 쌓아 놓았다.

형창우 남원 만인의총의 만인의사(萬人義士) 유족으로 활동하고 있는 형창우(남원시 인월면)씨는 말했다.

▲ 남원성 북문터 지표조사 발굴 중 야적더미 토사 ⓒ 이완우


"북문터에서 발굴하여 산더미처럼 야적해 놓은 토사에서는 도자기나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불에 탄 검은 흙과 녹았다가 다시 응결된 물체들이 수없이 많이 발견돼요. 400여년 만에 발굴된 소중한 역사적인 유적지의 유품들이 토사에 다 담겨 있는데 방치돼 있는 거잖아요. 빗물에 씻겨나가고, 햇볕에 노출되어 훼손되고 있어요.

흙 한 줌도 불에 탄 숯 조각 하나도 400여 년 전에 침략한 왜적에 맞선 호국 영령의 넋과 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유품이 될 수 있어요. 화살촉 하나의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만인의 순국한 남원성 북문터 만인의총 원래 자리에서 발굴한 흙은 한 줌도 소중한 문화유산이지요. 이곳 정유재란의 항쟁터 남원성터에서 나온 검게 그을린 흙, 녹아서 다시 응결된 재, 이 모두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문화유산이에요?

화살촉 하나 이런 거 찾는 유적 발굴이 되어가고 있어요.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합의를 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데, 그냥 개발 공사를 하듯이 만인공원 짓겠다며 밀어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요. 이렇게 야적장에 쌓아놓은 흙더미처럼 방치할 것이 아니라, 발굴된 위치 장소와 깊이 등의 토양을 분류하여 소중하게 보존했어야 마땅했어요."

▲ 남원성 일부 북성곽 발굴 지표조사 현장 ⓒ 이완우


남원성곽 일부 발굴현장을 살펴보았다. 남원성 북성벽의 일부는 이미 복원되었다. 현재 포크레인이 작업하고 있는 구간은 아마 성곽의 해자가 있던 곳을 보였다.

남원성 북성벽 발굴지는 길이가 100m는 될 것 같고 폭이 수십 m가 넘는 등 규모도 상당히 커 보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사는 어디에 보관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가끔 트럭이 발굴지를 드나든다고 한다.

이곳 남원성 북문터 발굴지와 남원성 북성벽 발굴지 사이의 도로 한편에 지난 9월 하순 현수막이 하나 걸렸었다고 한다.

"흙 필요하신 분 연락 주세요
연락처 010 - **** - ****"

이 현수막은 9월 하순에 걸렸다가, 10월 초순에 황급히 철거되었다고 한다. 오호 통재라. 문화재 발굴지의 소중한 흙을, 400여 년 만에 발굴된 남원성 전투에 순국하신 만인의사의 얼과 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역사적인 유적지의 토사를 아무렇게나 처분하려 했던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에 대해 남원시 문화예술과 학예연구사 A씨는 18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남원성 북성벽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는 층이 아닌 근대 생활공간의 오염된 표층은 문화재 발굴 도움이 안 되어 걷어서 야적한다"라며 "그 표토층의 토사를 유적 발굴지의 좁은 현장에 모아두기 어려워 일부 반출하였다. 앞으로는 이러한 토사도 공간을 찾아 잘 보관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이곳에 '만인공원'을 제안한 주민은 '남원읍성에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지역주민들과 군인들이 나라를 뺏기지 않고 또한 지역을 지키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며 남원성 전투로 1만여 명이 전사하는 등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하여 만인의 뜻인 지역과 나라 사랑을 기리고 알아가자는 의미'로 의견을 냈다고 한다.

남원 만인의사(萬人義士) 유족으로 활동하고 있는 형창우씨는 "남원성 북문 발굴지에서 출토된 토사는 만인의총 정신을 추모하고 승계하려는 의미에서도, 봉분토로 보존하여 왕릉의 고분처럼 의미 있는 봉분을 조성하면 바람직할 것"이라며 "(그것이) 이곳에 조성하려는 만인공원의 취지에도 맞다고 본다. 남원성이 일부 복원되고, 남원성 북문터가 복원되면 그 역사적 중심지에 원래의 만인의총 무덤이 자리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40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호국영령들의 충혼이 어려 있는 흙으로 의미 있는 봉분이 조성되는 만인공원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 남원성 일부 성곽 발굴 지표조사 중 걸려 있었던 현수막(2024.10.01) ⓒ 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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