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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낯선 도시 춘천에서 누려본 소소한 낭만 몇 가지

등록|2024.10.21 19:52 수정|2024.10.21 19:52
사람은 누구나 익숙함에서 안온함을 느낀다. 지난 12일 학회 참석 차 방문한 낯선 도시, 춘천이 그랬다.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풍경이 현실에 펼쳐지면 자신도 모르게 공간에 마음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 도시를 좋아하게도 한다. 공간이 사람의 감성, 경험과 만날 때 일어나는 일종의 화학작용같은 것이다.

당일치기 방문은 많았지만, 숙박은 처음이다. 식당 밥에 질리면 그저 된장 뚝배기에 김치, 갓 지은 밥 한 공기라도 집밥이 그립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 부부가 운영하시는 족히 40~50년은 되어 보이는 빨간 벽돌집에 묵었다. 큰 기대없이 그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면 좋겠다 싶었다.

은퇴 후 여행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좋아 민박을 시작하셨다는 어르신들의 집은 오래되었지만 오랜 손길이 정성스럽게 묻어나오는 정갈하고 단아한 곳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기에 집에 머무를 시간은 잠깐 눈을 붙일 정도의 시간밖에 안 됐다.

도착이 늦어지자 어르신들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셨다. 가파른 비탈길로 된 골목길에 차는 많고 주차를 못해 이 골목 저 골목 도돌이표를 무한정 찍고 있을 때다. 사정을 들으시곤 어르신들은 대문 밖으로 나오셔서 주차할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손님이 아니라 멀리서 온 가족처럼 말이다.

꽃무늬 이불수 십년 전,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 준 이불이 생각난다. 목화솜을 타서 광목으로 씌우고, 가운데는 꽃무늬 수를 놓은 비단을 덧댔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미처 생각조차 못했던 이불이다. 민박하기를 잘했다 싶은 순간이다. ⓒ 김은아


기억에만 있었던 그것

사람과의 교감과 경험은 공간에 대한 매력도를 높인다. 어르신들의 빨간 벽돌집, 그리고 내가 묵을 방에 마련된 이불이 그랬다. 어릴 적 엄마는 목화솜을 손수 떠서 광목을 덧대어 이불을 만들어 주셨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엄마 집에 가면 꼭 그 이불을 꺼내어 덮는다. 얇은 이불에 면을 덧대었는데 수가 놓인 분홍 꽃무늬 비단을 보니, 어릴 때 언니들과 한 방에서 오글거리고 살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보리 문양의 오래된 벽지와 방바닥의 노란 장판 역시 그러했다.

커튼도 요즘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는 어릴 적 보았던 커튼처럼 예스럽다. 특별히 세련되지도, 침구가 근사하지도, 그리고 방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릴 때 살았던 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그 '단순한' 평안함이 마음을 홀린 것이다.

집집마다 자리잡은 감나무가로등 아래 노란 감이 성탄절에 반짝이는 작은 전구만 같다. 푸근하고, 아름답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 김은아


내친 김에 비탈진 골목을 따라 동네 마실도 나가본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무와 흙, 그리고 바람의 냄새가 있다.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들이 혼을 쏙 빼놓는다. 예전에는 마당 있는 집 치고 감나무 한 그루 없는 집이 없었는데... 그립다.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에 감나무는 두세 그루는 항상 있었다. 가을이면 감 따 먹고 겨울이면 곶감을 기다렸다. 도시에서 자라 우리 집엔 감나무가 없었지만, 늘 그 감나무가 그리워 방학을 기다리곤 했었다.

먹을 과일이 풍성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학교를 벗어나 뛰어놀 수 있었던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에게 감나무는 고향이자 어머니와 같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가을에 노랗게 익다가 추위가 오면 볼그르르하게 발개지는 감.

전봇대 아래로 감들이 노란 전구처럼 반짝인다. 이 감들이 한두 달 있으면 모두 홍시로 변할 테지. 낯선 도시에도 찾아보면 예상치 못한 발견의 기쁨과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모두 다 말이다.

예상치 못한 소소한 기쁨

"야! 김 밥풀! 이리 안 와?"

한참 감나무 구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어린 꼬마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온다. 하얗고 곱슬곱슬한 털이 반지르르하게 난 비숑 프리제 강아지다. 강아지가 갑자기 날 보고 달려오니 강아지 가족인 꼬마 아이가 놀라서 쫓아온 것이다. '김 밥풀'이라고 하면서!

목줄이 없었지만, 다행히 개를 좋아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밥풀떼기가 계속 따라오는 것이 문제일 뿐. 결국 밥풀떼기는 보호자인 아이의 아버지한테 끌려가고 말았다. 소소한 기쁨이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다 알 법한 동네다. 오래된 주택들이 바지런하게 들어서 있고, 주차공간도 질서 정연하다. 그래서일까? 목줄 안 했다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들도 딱히 없었다. 아마도 밥풀떼기가 자주 다니는 길목인지도.

사노라면, 삶이 서사인 것을

작은 기억 하나는 도시에 대한 느낌도 바꾸어 놓는다. 첫인상처럼. 춘천은 2년 연속 최우수 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묵은 동네에 그런 사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회 프로그램의 하나로 문화도시 사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했다.

춘천은 '모두의 살롱'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마다 방치된 빈집을 고쳐서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사용한단다. 살롱에 들어서며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 운영자가 살롱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지만, 그 공간 프로그램의 하나인 '사노라면'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라면, 그 중에 '사노라면'8월에 운영했다던 사노라면이다. 라면이름이 그렇단다. 취지를 들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곳곳에 이런 곳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 춘천문화재단


수요일 밤에만 먹을 수 있다는 '사노라면'이다(안타깝게도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누구나 와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인데 취지는 참 아름답고 사람냄새 물신난다. 다들 건축과 디자인을 하는 회원들이지만, 이 로컬리니즘을 살린 디자인보다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에 가장 눈을 반짝거렸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들러 행사장으로 복귀했지만, 소양강아가씨도 쏘가리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사노라면'이었다. 1년 예산이라곤 60만 원이면 족하다는 라면 프로그램. 그렇다. 공간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사연이 얽힐 때다. 서사를 사랑하는 인간.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서사이기에 가장 공감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모두의 살롱춘천 문화도시 사업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일명, '모두의 살롱'으로 불린다. 좁고 가파른 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 김은아


'모두의 살롱'은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공간이 협소해 모두가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를 가진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공간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면 참 좋으련만, 누군가는 밤 늦게까지 고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지역민들끼리 자발적으로 운영이 되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밤에 라면이 몸에는 안 좋다지만 그래도 인생 사노라면 고달픈 이야기들, '사노라면' 끓여 먹고 풀면 좋지 않겠나. 동네 주민들끼리 말이다.

몰래 왔다 흔적만 남기고 가는 낭만

건축가들을 홀리는 사람의 이야기, 일단은 낭만적이다. 근사한 건축물도 마음을 훔쳐가지만 군불처럼 잔잔한 온기를 주는 낭만은 사람이 공간을 만날 때 퍼져간다. 내가 덮고 잤던 그 꽃무늬 이불과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그 감나무가 마음의 방에 불을 지피듯이 말이다.

일부러 애써 생뚱맞게 어린왕자 조형물을 곳곳에 세워놓지 않아도 되고, 각종 사과, 한우, 인삼 등 조형물을 거대하게 세울 필요도 없다. 낭만은 참 똑똑해서 빤한 곳엔 머물지 않는다. 지나가는 여행객도, 거주하는 시민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슬며시 와서 몰래 불을 지펴놓는다. 그리고 웃게 한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밥풀떼기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살다보면, 그리고 사노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작은 낭만 한 조각들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 조각들이 퍼즐처럼 들어맞는 공간이나 여건이 될 때,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마치,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길에서 마시는 자판기 커피처럼 말이죠. 그 하나의 조각으로 오늘이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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