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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까지 무려 10개월... 그의 마음이 무너졌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기약없는 기다림, 산재 신청

등록|2024.10.18 17:41 수정|2024.10.18 17:43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산업재해 상담을 요청했다. 상병은 손목터널증후군과 방아쇠 증후군. 재해자는 매일 수천 개의 화장품 용기를 쉼 없이 조립했다. 해당 작업을 수행한 기간도 상당했다. 작업 사진과 동영상, 매일의 생산량이 기록된 서류, 제품 샘플까지 충분한 정보와 자료도 준비되었다.

수십 장의 종이 위에 빼곡하게 적힌 글과 그림은 재해자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너무도 잘 보여주었다. 누가 보아도 병이 생길 만한 작업이었다. 딱히 다른 이유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 사건은 이미 7개월 전에 산재 신청이 이루어져 재해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선생님 충분히 잘 준비해 주셨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해조사가 많이 지연되었지만, 이 정도라면 업무 관련성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재해자는 대리인을 선임하고 싶다고 했다. 굳이 비용을 들여 대리인을 선임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눈물이 맺히며, 꼭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불안하게 했을까? 그날 저녁, 재해자는 아픈 손으로 긴 편지를 써서 보내왔고, 결국 사건을 돕기로 결심했다.

▲ 재해자가 아픈 손으로 간곡하게 써 보낸 편지. ⓒ 이성민


산업재해 신청 후, 기약 없는 기다림

재해자가 호소한 가장 큰 어려움은 '조사 기간'이었다. 재해자는 2023년 10월 초 요양 급여를 신청하였는데, 나와 상담을 진행한 2024년 6월까지, 무려 8개월간 사건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결정되리라 생각진 않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언제 결정될지 기약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재해자는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어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신청일로부터 승인까지 걸린 기간은 무려 10개월. 일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중단된 재해자는 채무조정 신청까지 해야 했다. 살고 있던 집을 급히 팔아 생활비와 치료비로 충당했고, 두 자녀와 함께 월세로 이사한 그는 매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자책했다.

사실 산재 처리 기간이 너무 긴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2021년 고용노동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기간 단축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그때 당시 평균적으로 172일 소요되던 산재 처리 기간을 100일 이내로 단축하겠다고, 특히 근골격계 질병의 경우 60일 이내로 줄이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오히려 2023년 평균 처리 기간은 214일, 2024년은 236일로 늘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산업재해 처리 절차

길어진 조사 기간만큼, 깜깜한 과정도 재해자의 불안을 키웠다. 병원을 통해 산업재해 신청은 했지만, 대체 어떤 조사가 언제 진행되는지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하면, 조사하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이야기만 되돌아왔다. 혹시나 담당자의 심기를 건드려 판정에 불이익한 결과를 초래할까 진행 상황을 묻는 전화 한 통도 수십 번 망설였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나, 당신의 사건에 대입해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역시나 재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마냥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가끔 작성 방법도 알 수 없는 양식에 내용을 채워 제출하라는 통보만 있었고, 그때마다 손의 통증을 참으며 빼곡히 글을 써 내려갔다.

누군가로부터 지금 어떠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통해 필요한 서류라는 점, 조사가 지연되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안내라도 받았다면 약간의 위로가 되었을까? 수년간 산업재해 업무를 수행한 나조차 여전히 산업재해 처리 절차에 대한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알아서' 설명해 주지 않는다.

재해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립과 두려움

재해자는 스스로를 씩씩한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고백했다. 기약 없는 오랜 조사는 재해자의 단단한 마음도 무너뜨렸다. 어느 순간부터 근로복지공단 번호로 전화가 오면 덜컥 눈물이 났다. 연락을 바로 받지 못해 부재중 전화로 남아있으면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쫓기는 마음이다. 재해자가 뒤늦게라도 대리인 선임을 원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근로복지공단과의 소통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재해자는 매일 '지구가 한순간에 뒤집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일을 해서 아프게 된 곳은 손이지만, 산업재해 신청 후 얻은 마음의 병이 더 고통스럽다. 혼자 버텨내야 하는 고립은 재해자를 더욱 힘들게 했다.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노무사로서, 나의 주 수입원은 수임료다. 그런데, 상담을 요청하고 사건 진행을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 재해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선생님, 이 사건은 정말 대리인 없이 진행하셔도 됩니다. 혹여라도 불승인으로 결정된다면, 그때 다시 찾아오시면 도와드릴게요"

이미 충분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담당한 사건들이 너무 많아 업무 수행 여력이 없어서 그럴까, 그것도 아니라면 더 이상 일이 하기 싫어서는 아닐까? 그럴 리 없다. 진정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일하다 아프게 된 것도 억울한데, 불필요한 비용까지 사용하며 대리인을 선임할 필요는 없다는 다소 건방진 생각도 함께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재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기에, 함께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산재 처리 기간 단축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재해자들을 '나이롱 환자'로 취급하기까지 한다. 과연 정부는 산업재해의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에 관심이 있을까? 근로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에 대해 신경 쓰고 있을까?

일하다 다친 재해자들이 마음 편히 치료받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이어야 할까, 산재보험은 더 나은 안전망이 될 수 없을까? 수많은 개선 방안을 상상하지만, 이제는 기대조차 어렵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이성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노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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