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없이 천주교 믿은 이 사람, 공원이 생겼습니다
인천시, 지난 9월 이승훈 역사공원 개장으로 순교의 역사 기려
▲ 이승훈(베드로)역사공원이승훈(베드로)역사 공원 전경 ⓒ 박윤신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상지진(水上池盡)"(달은 지더라도 하늘에 남아 있듯이 내 신앙은 천주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물이 솟구치더라도 연못에 다하는 것 같이 내 신앙은 결국 천주 안에서 다한다)
1801년(신유년) 이승훈이 신유박해로 서소문 형장에서 순교하면서 했다는 말로 전해진다.
지난 9월 인천광역시는(시장 유정복) 한국천주교의 첫 세례자이자,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발적인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이승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승훈 역사공원'을 개장했다.
이 공원은 남동구 장수동 산 135-4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4만 5928㎡에 달한다. 최근 이 공원에 직접 가 봤다.
▲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2층에 있는 전시실 ⓒ 박윤신
이승훈 역사공원에는 인천시 지정 기념물 제63호인 이승훈 묘역까지 이어지는 데크로드(일명: 십자가의 길)가 조성되어 있으며, 4대에 걸친 순교 내력을 상징하는 피에타 연못,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각종 전시회가 열릴 수 있는 이승훈 베드로 광장, 공공정원 개념을 도입한 자수화단 등이 마련되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이승훈은 1756년 인천 장수동에서 부친 이동욱과 모친 여주 이씨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776년 다산 정약용의 누이와 혼인을 하고, 1780년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후 1783년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壯官)에 임명된 부친 이동욱을 따라 북경으로 가면서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1784년 2월 예수회 선교사인 그라몽(Louis de Grammont)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게 된다.
이승훈은 순교 후 평창(平昌) 이씨의 선산인 현재의 장수동 조곡(鳥谷)마을이라 불리던 반주골에 묻혔고, 1981년 천진암 성역화 추진위원회에서 그의 유해 이장을 위해 무덤을 열었으나, 거의 진토가 되어 있어 수습할 수 있는 유골만 경기도 광주시 천진암으로 옮겨졌다.
현재의 묘는 이승훈의 진묘(眞墓)이며, 그 아래에 이택규, 이신규 두 아들의 묘가 함께 있다.
▲ 이승훈베드로묘역이승훈베드로묘역 전경 ⓒ 박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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