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엉엉 울며 걸었다"... 4000명 이끈 '명상'의 비결
[제주 사름이 사는 법] '걷기 명상' 이끄는 강홍림 작가
▲ 강홍림 작가서귀포 토박이로,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에서 소재를 발굴해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9년째 서귀포 걷기 명상을 진행하고 있다. ⓒ 황의봉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제주도에서도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도에서 특히나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한강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있다. 제주 지역 55개 단체가 속한 제주4·3 기념사업위원회가 공동성명에서 "(제주4·3이) 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하게 세계인들에 각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4·3은 미래와도 작별하지 않는 이야기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한 데서 제주 사회의 정서가 잘 반영돼 있다.
제주4·3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새삼스럽게 주목받은 제주도의 근현대사는 한마디로 지배당하고, 빼앗기고, 피를 흘려야 했던 수난의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조선시대 유배지로, 일제의 전쟁기지로, 4·3과 6·25로 고통 받았던 땅이다. 이 과정에서 유배된 자, 돌아가지 못한 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사연이 겹겹이 쌓여 있다.
"쓰러지고 좌절하는 사람들, 용기 주기 위해 썼다"
▲ 태풍서귀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 어머니의 좌절과 극복의 여정을 그린 강 작가의 소설 <태풍서귀>에 수록한 작품 배경 사진. ⓒ 강홍림
강 작가가 최근 펴낸 소설집 <서쪽으로 돌아가다>에 실린 세 편의 소설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이 소설책에는 소설사진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서귀포 곳곳의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이 곁들여져 눈길을 끈다. 강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다.
"소설 <아버지의 바다>는 가정 안팎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아버지들을 위로하기 위한 소설로 화자인 아들이 서귀포를 여행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소설 <태풍서귀>는 자신의 사회적 성공만을 추구하다가 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게 된 어머니의 좌절과 극복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지요. 역시 서귀포 여행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서귀포는 대한민국에서 태풍이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불어오는 곳입니다. 우리 주변엔 인생 태풍에 쓰러지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쓴 글입니다.
소설 <막달라>는 독자들로부터 가장 관심을 끈 작품입니다. 남영호 침몰사고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박춘희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지난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태 살아남았을까? 우리 모두 생존자인 셈이지요.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든 우리는 잘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이런 평소의 문제의식을 소설로 풀어낸 것입니다."
남영호 침몰사고는 1970년 12월 15일 제주도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여객선이 여수시 남동쪽 35㎞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자 338명 가운데 326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연말 성수기에 판매할 감귤 상자를 과적한 것이 사고원인으로 지목됐고, 희생자 대부분이 서귀포 일대의 주민이었다.
소설 <막달라>에서 서귀포 유흥업소 접대부인 박춘희는 '마담 언니'의 돈을 훔쳐 고향인 부산으로 가기 위해 몰래 남영호에 오른다. 그러나 서귀포를 출항한 남영호가 성산포항에 잠시 기항한 틈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절도범으로 체포된다. 한편 남영호는 이튿날 새벽 침몰하는 운명을 맞는다. 소설은 이후 박춘희의 제주교도소 생활, 출소 후 장사로 돈을 버는 과정,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을 갚기 위해 남영호 희생자 유가족을 수소문해 도와주는 사연이 잔잔히 펼쳐진다.
남영호에서 극적인 반전으로 살아남은 한 여인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도 현실감이 돋보인다. 어디까지가 실화일까.
"소설 <막달라>가 실화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인공 박춘희가 여자 감방에서 만난 '방장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 인물들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당시 남영호 사고와 관련된 인물과 유가족을 수소문해서 그들의 그 후 삶을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창작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박춘희는 술집 송화정에 드나들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그분들의 기억으로 되살려냈고, 남영호를 타고 도망가려다 성산포항에서 붙잡히는 바람에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교도소를 나온 후의 삶은 창작의 영역에서 풀어낸 것이고요. 남영호 희생자의 유족들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다 사실입니다."
남영호 사건은 10년 전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도 한다. 전국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대형 선박사고라는 점, 제주도가 출발지 혹은 목적지였다는 점,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라는 점 등에서 많이 닮았다. 강 작가가 추적한 남영호 사건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을까.
"교도소에서 출소한 주인공이 새 인생을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영자 이모'가 나오는데, 80대 중반의 이분을 어렵게 만났습니다. 남편이 남영호 사고로 사망한 후 잡화상을 하면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유복자로 태어난 막내딸에 의하면 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을 부르며 왜 그렇게 빨리 갔냐, 5남매 기르며 사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생존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유족들도 아픈 기억을 잊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남영호 사고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크게 미흡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서귀포항에 세웠던 희생자 위령탑이 항구 확장을 이유로 산속 공동묘지로 옮겨졌다가 유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몇 년 후 다시 정방폭포 입구로 옮겨 왔어요. 항구 확장과 위령탑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당시 군사정권이 참혹했던 과거를 덮고 싶었던 것이지요."
'서쪽으로 돌아가다'의 의미
▲ 소설집 <서쪽으로 돌아가다>강홍림 작가의 인생 화두가 된 ‘서쪽’은 꿈 자아 관계를, ‘돌아가다’는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소설집은 사단법인 사람과사람들(02-6204-4141)을 통해 판매한다. ⓒ 황의봉
강홍림 작가의 <서쪽으로 돌아가다>라는 소설집 제목은 한자로 표현하면 서귀(西歸), 곧 서귀포라는 지명이 된다. 서귀포 토박이인 강 작가는 육지로 나가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서귀' 지명의 유래를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쪽으로 돌아가다'라는, 이런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한 도시 이름이 있을까 싶습니다. '돌아갈 귀(歸)'자가 붙어 있는 도시를 찾아보았지만 없더라고요. 왜 '서귀'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는지 한국과 중국의 역사서를 두루 살펴봤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고 이런저런 이야기들만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입니다.
BC 219년 진나라 신선사상(神仙思想)의 제사장(방사)이었던 서복(혹은 서불)이 진시황에게 동쪽의 삼신산(봉래, 방장, 영주산으로 오늘날의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에 사는 신선을 만나 불로장생 비법을 알아 오겠다고 합니다. 이에 진시황은 신선을 생포해 오라고 지시했다는 거예요. 서복은 신선을 만나기 위해 봉래, 방장산을 뒤졌으나 만날 수 없었고 마지막으로 제주도에 오게 됩니다.
서복이 제주도에서도 신선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방폭포 절벽에 무엇인가 써놓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다 구한말 글로 기록되었습니다. 김석익의 '파한록(破閑錄)'에, '제주 목사 백낙연은 서복이 정방폭포 절벽에 남긴 글이 무척이나 궁금해 탁본해 오라고 지시해 그 내용을 파악하려 했으나 중국의 고대문자(蝌蚪文字)여서 해독할 수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또 다른 구전에 의하면 서복이 '불로초'를 찾으러 왔다가 가는 길에 정방폭포 절벽에 '서불과지(徐巿過之)'라 쓰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제가 제주 관련 역사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서 등을 모두 살펴보았으나 그런 기록은 전혀 없었어요.
지금까지 나름대로 조사한 바를 종합하면 서복이라는 사람이 제주섬에 왔다 간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방폭포 절벽에 무엇인가 써놓고 간 것도 사실인 듯하고요. 서복이 이 섬을 떠나 서쪽인 중국 시안(西安)으로 돌아간 것은 역사기록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서귀(西歸)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은 그럴듯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강 작가는 서귀포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서쪽', '돌아가다'는 말이 인생의 화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서쪽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서복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고, 서복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그가 신선도 불로초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한데, 왜 먼 곳으로 도망가지 않고 돌아갔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서복이 나름의 꿈을 품고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서' 서쪽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이 생겼습니다.
서복은 시안으로 돌아가 진시황과 담판을 한 끝에 황제를 다시 속입니다. 봉래산에서 신선을 만날 수 있었는데 괴물이 나타나 못 만났다, 활을 잘 쏘는 궁사들을 붙여주면 이번에는 잡아 오겠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진시황을 속이는 데 성공한 서복은 자신의 친인척 등을 모두 데리고 떠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게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서복의 마지막 모습인데, 결국 서복은 일본으로 가서 대륙의 문화를 전파하게 됩니다. 지금도 일본 서해안에는 서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아주 많습니다.
서복의 꿈을 상상하다 보니 그렇다면 '나의 서쪽은 무엇이며, 돌아가면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났고, 인생의 화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인 윤극영 선생의 <반달>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라는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또 불교에서는 서방정토를 이야기하고 있고요.
저는 '서쪽'을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미래로 받아들였어요. 이루고 싶은 꿈, 자아실현, 심신의 건강, 나 아닌 존재와의 관계 등이 되겠지요. '돌아가다'에는 회복의 의미가 있습니다. 잃어버렸거나 희미해진 꿈, 자아, 건강, 타인과의 관계 회복을 화두로 삼아 살아야겠다는 다짐인 셈이죠. 이번에 발표한 3편의 소설도 모두 관계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 서복전시관중국 신선사상의 방사인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한라산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절벽에 글을 남겼다는 설이 있다. 이를 홍보해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전시관이 정방폭포 부근에 세워졌다. ⓒ 강홍림
서귀포 정방폭포 부근에는 서복전시관이 있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관광객 유치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시설이라는 논란이 많이 제기된 바가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서복전시관에 대한 강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서복은 일본에서는 대륙의 문화를 가져온 고마운 존재로 여깁니다. 반면 중국 역사서에는 진시황을 두 번이나 속인 희대의 사기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세운 서복전시관에 중국인들이 많이 올까요. 마치 하와이에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이완용 기념관을 만든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강홍림 작가는 20여 년 광고 관련 일을 하는 한편으로 소설 <부부의 꿈><불로초를 찾아서> 등을 발표하고, 제주도와 관련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소설은 지역이 자주 배경으로 나온다. 독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이 특징이다. 춘천을 배경으로 쓴 소설 <부부의 꿈>은 독자들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바람에 춘천시에서 강 작가를 명예시민으로 위촉하고 홍보대사로 위촉한 일화도 있다.
그는 제주도의 문화 콘텐츠 가운데서도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잊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 조명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제주에는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고려 조선을 거치며 제주는 유배지로, 섬 전체가 교도소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언젠가는 임금님께서 불러 주시겠지 하며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다 끝내 돌아가지 못한 유배객의 손자의 손자가 제주 사람이 되어 살고 있는 겁니다.
유배객이 되어 제주에 왔다가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해 이른바 입도시조(入島始祖)가 된 분들이 남긴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또 6·25 전쟁 때 제주도로 피난 온 실향민 가운데 서귀포에 눌러앉은 사람들도 의외로 많고요. 이제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이분들이 자녀들에게 북한 땅에 두고 온 집 주소와 친척 이름을 달달 외우도록 했다는 등 짠한 이야기들이 흔합니다.
그런가 하면 1960∼70년대 먹고살기 힘들어 호남지방에서 제주도로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감귤 산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때였어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호남촌이 그 예입니다. 또 해남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해남촌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제주도는 육지와 격리된 섬이어서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숨어 들어온 사람들의 아프고 시린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강 작가는 광고회사를 운영하던 시절 '사랑'을 주제로 한 제주 지도 안내서를 펴내기도 했다. 이중섭과 마사코의 사랑, 이기풍 목사와 마펫 선교사의 인연, 조선시대 유배객 김춘택과 늙은 기녀 '석례'와의 우정 등의 이야기를 지도와 함께 소개한 바 있다. 강 작가에게 제주섬에서 있었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한 편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1952년 홍익대학교 국문과 교수이자 시인이었던 분이 대구 출신의 여학생과 눈이 맞았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애정의 도피행각이랄까, 제주도로 들어와 칠성통의 동화여관에 장기 투숙을 하게 됩니다. 그때가 12월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서울에 있는 시인의 부인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욕을 퍼붓는다든가 난리를 치기는커녕 시인과 여학생이 입을 겨울옷과 돈봉투를 내놓고는 한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냥 가버린 겁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대구에서 여학생의 아버지가 왔습니다. '당신 뭐 하는 거냐,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거냐'면서 딸을 데리고 부산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여학생을 떠나보내게 된 시인은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만 흘렸다고 해요. 선배 시인의 이 애타는 이별 장면을 지켜보던 제주 출신의 양중해 시인이 시를 써서, 그가 근무하던 학교 음악교사였던 변훈 선생에게 주어 작곡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곡이 유명한 가곡 <떠나가는 배>입니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로 시작해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로 이어지는 가사가 당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교수는 바로 박목월 시인입니다. 제주시 탑동 야외공연장 뒤에 <떠나가는 배> 노래비가 있습니다."
▲ <떠나가는 배> 노래비제주시 탑동에는 박목월 시인과 여대생의 이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곡의 노래비가 서 있다. ⓒ 강홍림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게 만드는 '걷기 명상'
강홍림 작가는 9년째 서귀포에서 '걷기 명상'을 이끌고 있다. '서쪽으로 돌아가다'라는 명상 주제를 가지고 서귀포의 명승지를 걷는데, 지금까지 200여 회에 걸쳐 4000여 명이 함께 했을 정도로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엔 이 행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사람과사람들'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강 작가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 글을 읽고 서귀포를 찾아온 독자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어요. 한 사람이나 일가족과, 혹은 기업이나 단체의 구성원들과 같이 서쪽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서쪽'을 각자의 꿈이나 인생의 목표로, 돌아갈 목적지는 '좋았던 관계'로 설정하고 각자가 '서쪽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슴 울리는 이야기가 많았고 꿈은 거창하지 않지만 간절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꿈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요.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전치 16주의 큰 부상을 입은 가장의 가족과 엉엉 울어가면서 걸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엔 걷기 명상으로 시작했는데, 함께 걸었던 신부님들이 신앙 관련한 프로그램을 가미해도 좋겠다고 해서 최근에는 희망자에 한해 '걷기 피정'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신자들이 마치 보험 들 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자신도 모르게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조용히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것이지요."
▲ 절벽에 남기고 싶은 글강 작가가 진행하는 서귀포 걷기 명상에서는 도중에 소암기념관에 들러 정방폭포 절벽에 새기고 싶은 자신만의 소망을 글로 표현해본다. ⓒ 강홍림
독자 한두 명과 함께 대화하며 서귀포 일대를 걷는 것으로 시작한 강 작가의 '걷기 명상'은 경험해 본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육지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전국적으로 걷기 열기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강 작가의 걷기 명상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사람들로부터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어떤 분들은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을 떠올리기도 합니다만, 저희는 서귀포라는 최고의 걷기 명소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걷는 도중에 서예가 현중화 선생을 기리는 소암기념관에 들러 화선지와 붓을 주고 '올해가 당신의 마지막 해라면 정방폭포 절벽에 무엇이라 쓰겠냐'라는 과제를 던집니다. 이에 대한 각자의 답을 붓글씨로 써서 발표해 보도록 하는데, 무척 반응이 좋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걷기 명상에서도 '호흡'이 강조되고 있습니다만, 저희도 걷기 도중에 호흡하는 법을 배워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분위기 좋고 인적도 드문 소남머리 같은 곳에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며 호흡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걷기 명상은 각자가 살아온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핵심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쳤는지를 솔직하게 끄집어내 보고, 자신이 가야 할 '서쪽'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진솔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도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한 소남머리는 경관이 뛰어날 뿐 아니라 4·3 때 처형 당한 장소이기도 해서 우리 역사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자구리는 화가 이중섭이 많이 가던 바닷가로, 이곳에서는 이중섭이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황우지, 돔베낭골, 서건도, 악근천 하구 등 경치가 아름답고 서로 이야기하기에도 좋은 곳으로 제가 꼽아 놓은 장소가 12군데 정도 됩니다."
강홍림 작가는 10년 전 제주섬에 발도 못 딛고 영영 돌아가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는 돌아갈 수만 있어도, 걸을 수만 있어도 행복이라고 했다.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에 담겠다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서쪽'을 향해 걷는 그의 여정이 내내 순조로웠으면 좋겠다.
서귀포 걷기 명상 관련 문의는 사람과사람들 064-747-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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