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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와 왜가리 서식지 주변에 쥐 명당이?

임실 신안리와 장재리 고향 시골길 걷기 여행

등록|2024.10.22 09:14 수정|2024.10.22 09:14
어느 마을이나 사람 사는 세상의 세월이 지나면서 역사가 쌓이고, 사람들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고향 마을을 이상향으로 세우려 한다. 작은 마을에 전해오는 역사, 설화와 이야기를 찾으면서 색다른 세상을 엿보기도 한다. 10월 하순, 추수가 시작되는 황금 들녘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서 고향 시골길 걷기 여행을 하였다.

임실읍 동중학교에서 출발하여 쉰재 고개를 넘어 신안리 여러 마을을 거치고, 장재리 장재 마을을 지나 찔루고개를 넘고 임실천을 따라 도로를 걸어서 동중학교로 돌아오는 12.6km의 여정이다. 이 고향 시골길 걷기는 원불교, 천도교, 유교와 천주교의 여러 교당, 서원과 교회를 순례하는 듯 의미 깊은 여정이었다.

- 임실 신안리와 장재리 고향 시골길 걷기 12.6km 여정 구간
동중 - 쉰재 - 정촌 4.0km
정촌 - 낙촌 - 신안서원(금동) 1.2km
신안서원 - 장재 - 찔루고개 - 정월삼거리 2.9km
정월삼거리 - 천주교 임실성당 - 동중 3.5km

임실 동중학교에서 원불교 임실교당, 성가리 치즈 시원지, 천도교 임실교당, 성가리 백로 왜가리 서식지, 쉰재를 거쳐 정촌까지 걸었다.

임실 동중학교는 봉황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 이곳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 위치에 조선 시대에 임실현의 객사인 운수관(雲水館)이 있었다.

이곳 객사의 규모가 전라도 관찰사가 있는 전주부성의 객사인 풍패지관(豊沛之館)보다 컸다고 한다. 전라감영에 공적인 업무가 있는 전라좌도와 남도의 관리들이 임실의 객사에 머물며 차례를 기다렸다고 한다.

원불교 임실교당이 있는 위치는 조선 시대 임실현의 현감이 나랏일을 보던 동헌 자리였다.

임실 치즈 최초 공장 옆 산비탈에 치즈 숙성 동굴이 있다. 1967년부터 임실 치즈 개척의 무대였던 이곳은 치즈 공장이면서 산양협동조합이 있었다. 최근에 디디에 카페(디디에 Didier, 임실 치즈의 개척자 지정환 신부의 세례명)로 단장하여 임실 치즈의 시원지인 관광지로서 거듭나며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

동학(東學) 정신을 계승한 천도교 임실교당은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식이 '사람 인(人)' 한자처럼 생긴 좌우 대칭형(ㄱ 모양) 한옥 건축물에 반영되었다. 이곳 교당은 1940년대엔 천도교 중앙본부가 머물며 활동하기도 했다.

이곳의 본채, 바깥채와 문간채 건축물 3채는 모두 사람 인(人)자(ㄱ 또는 ㄴ) 모양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천지관(天地觀)은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표현된다. 옛날 화폐 둥근 동전의 가운데에 네모 구멍이 있는데, 이 천원지방의 우주관을 화폐에 반영한 것이다.

천도교 임실교당의 본채와 바깥채는 'ㄱ 과 ㄴ'의 마주 보는 형태가 되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의 모양을 이룬다. 천지인 원방각(天地人 圓方角)이라고 했다. 하늘은 둥글고(원), 땅은 네모(방)이고, 사람은 세모(각)라는 이치이다. 이곳 천도교 건물의 본채와 바깥채에서 하늘을 보면 천원지방을 이루고 있다.

▲ 임실 성가리 천도교 임실교회 ⓒ 이완우


성가리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를 멀리서 바라보며 지나갔다. 야생조류보호구역인 소나무 숲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이곳에 재미있는 풍수지리 이야기가 전해 온다.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 가까이 작은 산봉우리에 쥐 명당이 있어서 백로와 왜가리가 배고프지 않게 잘 머문다는 것이다.

쥐는 배가 고프면 먹이를 이곳저곳 찾아다닌다. 이곳의 쥐 명당 기운으로 한 식당이 번창했다. 그런데 식당을 너무 깨끗이 하면 안 되었다는데, 쥐가 약간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쉰재(五十峙)를 넘었다. 고갯길이 험해서 쉰 명이 모여서 함께 넘었기에 고개 이름이 쉰재란다. 옛 고갯길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자동차가 구불구불 길게 경사를 낮추어 넘는 길이 되었다. 봄에 벚꽃 피는 계절이면 이 고개는 아름다운 벚꽃 터널을 이룬다.

▲ 임실 쉰재 (임실읍 성가리에서 신안리 넘어가는 고개) ⓒ 이완우


신안리(新安里) 정촌(程村) 마을에 도착하였다. 신안리의 정촌, 낙촌과 금동 마을은 백이산 기슭에 자리 잡고, 마을 앞에는 너른 들녘을 바라보고 있다. 신안리의 신안(新安)은 주자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중국 남송 주희(주자, 1130~1200)의 고향에서 지명을 따왔다. 신안리 앞에는 낙천이 흐르고, 백이산에서는 구곡천(신안천)이 흐른다.

이곳 신안리의 여러 마을 지명도 유교적 관점으로 해석되어서 특별하다. 이 지역에 살아온 유림 선비들은 이곳을 유교적 이상향으로 삼고자 했나 보다.

정촌 마을에서 낙촌 마을을 거쳐 금동 마을까지 걷는다.

정촌 마을에서 한참이면 낙촌(洛村) 마을에 이른다. 이곳의 정촌과 낙촌 두 마을은 중국의 낙양에 살던 성리학과 양명학의 원류로 알려진 정호(1032~1085)와 정이(1033~1107) 형제를 의미하여 정자동이라고도 했었다.

낙촌 마을을 지나 금동(琴洞)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높은 곳에 신안서원의 은행나무가 눈에 띈다. 신안서원에는 주희가 모셔져 있는데 원래 낙촌 마을에 있다가 이곳 금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곳 금동 마을에서 공자가 거문고 배우는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다.

공자가 서른 살이 되어 거문고를 배웠다. 공자는 한 곡을 배웠고 열흘 동안 그 한 곡만 연주했다. 거문고를 가르친 사람이 새로운 곡을 배우라고 권했다.

'이제 악보는 그런대로 알지만, 익히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소' 하며 공자는 며칠 그 한 곡을 계속 연주했다. 그리고 '이제는 익히는 방법은 터득했으나, 이 곡에 깃든 감정과 의미를 깨닫지 못했소' 하며 또 며칠을 더 그 곡을 익혔다.

공자의 거문고 소리는 이제 정교하고 아름다워졌다. 그러나 공자는 '아직 알 수 없는 게 있다'며 거문고 한 곡 배우는 데서 스스로 거듭 이치를 깨달아 나갔다. 학문과 배움에 이르는 진정한 길을 시사하는 이야기이다.

▲ 임실 신안리 금동 신안서원 ⓒ 이완우


신안서원(금동 마을)에서 장재 마을을 거쳐 찔루고개를 넘어서 정월삼거리까지 걸었다.

장재리 장재 마을은 마을 앞에 소나무 숲(솔몽댕이)이 있어야 한다고 전해온다. 이곳 장재 마을이 풍수지리로 옷감을 짜는 베틀 형국의 동네란다. 삼베를 짜려면 삼실이 있어야 하는데 소나무의 솔잎이 삼베를 싸는 삼실 역할을 한다. 소나무가 이 마을 앞에 무성해야 마을이 번성한다고 소나무를 잘 보호했다.

이곳 장재리(장자동) 장재 마을은 중국 송나라의 장재(장횡거, 1020~1077)의 이름을 따랐다. 장재는 고향 지명인 횡거를 호로 삼아서 횡거 선생이라고 한다. 장재는 공자와 맹자의 유교적 논리에 태허(太虛), 기(氣)와 음양(陰陽)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장재는 태허와 기로 우주를 설명한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제창하여 시대를 천 년 이상 앞선 천체물리학자라는 평가가 있다.

▲ 임실 장재리 앞 황금 들녘 ⓒ 이완우


찔루고개를 넘었다. 옛길은 흔적이 없고 임도보다 큰 도로의 고개를 넘어 정월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정월삼거리에서 천주교 임실성당을 거쳐 동중학교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정월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박사골 삼계면으로 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임실천의 흐름을 따라 도로를 걸었다. 임실천은 두만산에서 발원하여 임실읍을 지나 흘러서 섬진강 상류에 합쳐진다. 임실천은 떠 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맑고 좋은 기운을 담아서 흐르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 서쪽에서 샘 솟아 동쪽으로 흐르는 물)의 명당 하천이라고 한다.

천주교 임실성당에 도착하였다. 지정환(1931~2019, 池正煥, 디디에 세스테번스 Didier t'Serstevens) 신부가 1964년에 부임하여 임실성당 사제관에서 산양유 임실 치즈를 구상하고 개척을 시작한 곳으로 임실 치즈 역사의 발원지이다. 오후의 태양이 천주교 임실성당 첨탑 뒤에서 빛나는 장면이 숙연하게 아름다웠다.

고향 시골길에는 역사와 설화가 살아 있으며, 수많은 이야기가 피어난다. 고향 시골길 걷기 여행의 여정 중에는 때때로 설렌다. 고향 시골길에는 뜻밖에 만나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적한 고향 시골길 마을에서 공자, 주자와 장재 등 유교의 태산북두(泰山北斗) 같은 인물을 의미하는 지명을 만났다. 조선 시대 유림 선비들이 지향하는 이상향으로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 임실 천주교 임실성당 오후의 하늘, 구름, 태양, 성당의 장엄한 조화 ⓒ 이완우

▲ 고향 시골길 (임실 신안) 개요도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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