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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역사 개신교 수도원 남원 동강원, 이대로 사라지나?

스승 이현필의 가르침 따라 현재 31명 수도자 자급자족 공동생활

등록|2024.10.21 16:25 수정|2024.10.21 16:25
보슬비 내리는 18일 오후, 남원 동광원을 찾아갔다. 대학원 시절 잠깐 들른 뒤 26년 만이었다. 그사이 어찌 달라졌을지 궁금하였다. 남원 대산면 동광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차량이 한 대 겨우 다닐 만큼 비좁았다. 동광원은 아랫동네에서 약 1km쯤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다.

'동광원'이라 새긴 표지석이 놓인 정문을 지나자 작은 시골 마을 같은 곳이 나왔다. 그 길을 중앙으로 좌우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있고 잘 가꾼 나무들과 화초가 보였다. 수도공동체라 그런지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정갈하게 관리하는 거 같았다.

남원 동광원주차장에서 본 남원 동광원. 수칙인 "순결, 순명, 청빈"을 새긴 돌비가 놓여 있다. ⓒ 정병진


언님(*동광원에서 여성 수도자를 부르는 호칭, '어진님'의 준말) 한 분이 따뜻한 웃음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하였다. 동광원에서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는 유미자 언님이다. 그래도 육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그는 먼저 '이현필 선생 기념관'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예전에 왔을 때는 없던 기념관이다. 방순녀 원장(93세) 다리가 불편해 전동 스쿠터로 이동해 근처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현필 선생 기념관동광원 창립자 이현필 선생 기념관 ⓒ 정병진


이현필 선생(1913~1964)은 수도공동체 동광원을 시작한 설립자이다. 그는 전남 화순 도암 등광리 출신의 영성가 이공( 李空) 이세종(1879~1944) 선생의 수제자다. 한때 결혼하였지만, 스승 권유에 따라 '해혼'(解婚)한 뒤 1943년경부터 남원에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지리산 자락 서리내에 움막을 짓고 공동생활을 하기 시작해 자연스레 자생적 수도공동체를 이루었다. 방 원장은 그 무렵부터 함께하였다고 한다.

동광원의 생활 수칙은 '청빈, 순결, 순명'이다. 수도자로서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정절을 지키며 부지런히 일하여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추구한다. 동광원 사람들은 이 같은 수도 정신으로 한국전쟁기 넘쳐나던 고아와 결핵환자,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내 가족처럼 돌보았다. 한때는 동광원에서 생활하는 이가 6백 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동광원의 분원인 광주 귀일원에서는 지금도 지적, 정신, 등록 장애인들을 돌보는 복지시설을 운영한다.

이현필 선생 기념관 전시물들을 둘러보니 동강원 수도자들이 스승을 얼마나 존경하고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이현필 선생이 쓴 일기장, 편지, 들고 다니던 호롱불 등잔, 작은 옷상자까지 소중히 간직해 전시해 놓았다. 이현필 선생은 목사나 장로도 아닌 그저 평신도 수도자였다. 수도생활하는 동안 늘 맨발로 다녀 '맨발의 성자'란 별칭을 얻었다.

이현필 선생의 유품맨발의 성자로 알려진 이현필 선생의 유품 ⓒ 정병진


방순녀 원장은 "동광원 수도자들이 스승 이현필에게 배운 건 '성경 말씀'보다는 '생활 예법'의 비중이 더 컸다"고 증언한다. 그만큼 이현필 선생은 신앙과 삶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범이었다. 유미자 언님에 따르면, 그는 서울 나들이 갈 때 입으라고 언님들이 손수 베틀로 짜서 만들어준 옷조차 사치스럽게 여겼는지 끝내 입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이 그 옷이 고스란히 남아 전시돼 있다.

이현필 선생에 대해 설명하는 방순녀 원장동광원 창립자 이현필 선생에 대해 설명하는 방순녀 원장 ⓒ 정병진


한국의 독창적 종교사상가로 알려진 다석 류영모(1890~1981)는 23년이나 더 젊은 이현필의 수도적 삶을 흠모하여 그를 늘 존대하였다. 다석은 생전에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동광원을 방문하였다. 방 원장에 따르면 한 번 방문하면 한두 달씩 머물며 동광원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였다고 한다.

새벽 5시에 강의를 시작하면 오후 5시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내리 강의하였다. 딱딱하고 어려운 동양철학 강의를 그렇게 길게 하자, 언님들은 뭔 소린지 잘 알아듣기도 힘들고 좀이 쑤셔 들락날락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현필 선생만은 맨 앞자리에 꼿꼿이 앉아 경청하였다. 다석이 "이제 그만할까요?" 그러면 이현필은 "더해 주십시오"라고 여러 차례 청하였고 한다.

동광원 예배실동광원 예배실. 여느 에배당과 달리 정면에 십자가가 걸려 있지 않고 의자도 몇 개 없이 텅빈 마루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정병진


우린 기념관을 나와 약 40~50m쯤 아래에 있는 예배당을 들렀다. 예배실 내부 바닥은 마루 형태였고 좌우로 의자 몇 개가 놓인 거 말고는 텅 비어 있었다. 평소 방석을 놓고 앉아 예배 드리고 너무 연로해 무릎이 아픈 분들만 의자에 앉는다고 한다. 여느 교회당 앞쪽에는 십자가가 있는데 이곳에는 없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묻자, 방 원장은 "형식을 안 갖추려 한 거지 무슨 특별한 법이 있어 그런 게 아니다"고 하였다. 실제로 동광원은 가톨릭 수도원과 같이 내부 규율이 엄하진 않다.

현재 남원 동광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는 모두 31명이다. 그마저 대부분 연로한 상태라 앞으로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런 염려를 하였더니 방 원장은 대번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려 전해 주었다. "하느님이 동광원이 필요하면 이어지게 하실 거고 불필요하면 거두실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이현필 선생이 평소 이야기하였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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