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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예능 '흑백요리사', 사실 안 보고 싶었다

[주장] '경쟁' 원초적 본능이지만... 사회적 압박·강요, 누적된 피로에 거부감도

등록|2024.10.22 15:27 수정|2024.10.22 15:27
넷플릭스의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이 지난 8일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흥행이 뜨거웠던 만큼 종영 이후에도 그 열기가 쉽게 식지 않는 분위기다. '흑백요리사'는 검증된 유명 요리사들과 동내 맛집 요리사들이 참가해 최고의 요리사를 가린다는 독특한 포맷으로, 이전에 없던 참신한 평가 요소까지 더해 비유하면 시청자에게 '미슐랭 스타 3'를 받았다.

'흑백요리사'에 대한 기고 의뢰를 받은 후 기사화되었을 때, 필자는 18년 전 사장과 아르바이트로 인연을 맺은 후 지금도 매년 연락하는 청년, 아니 지금은 외국계 기업의 중간 관리자로 어느덧 사십 대 중년이 된 그에게 카톡으로 해당 기사를 제일 먼저 공유했다. 그로부터 돌아온 짧은 답장에는 피로가 담겨 있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요샌 경쟁하는 거에 지쳐서 (흑백요리사 시청은) 거르고 있어요"

그 답장을 읽는 순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필자도 비슷한 이유로 기고 의뢰를 받기 전까지는 흑백요리사를 시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과 시대의 최고 채찍, '경쟁'

▲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사실 '경쟁'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원초적 본능으로 우리 문명의 진보를 이끈 강력한 동력이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이던 시절부터, 오늘날 스포츠와 이런 경연 예능에 이르기까지, 경쟁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혁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가장 본질적인 즐거움의 원천이 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덕분에 우리는 인류사에서 최고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 국가가 현재의 싱가포르라고 한다. 2021년 기준, 싱가포르의 1인당 GNI는 10만2450달러(약 1억3200만원)인 것으로 조사돼 1인당 GNI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등극했다. (미국의 경제전문 온라인 매체 247월스트닷컴) 물론, 현재도 싱가포르는 굉장히 잘 사는 나라다.

그런데 싱가포르에는 '키아수(Kiasu)'라는 문화가 있다. '키아수'란 무언가 놓치거나 뒤처지기 싫어하는(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로, 자녀 교육, 직장 내 경쟁, 심지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항상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뜻한다.

물론 '경쟁'이 개인의 발전과 성취를 북돋아 인류 문명에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박과 두려움, 그리고 만성적인 피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 사회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사회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화면 갈무리 ⓒ 넷플릭스


2011년, 어느 프랜차이즈 기업과 창업 현장 답사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추천 받은 상가 좁은 골목 맞은편엔 이미 같은 업종의 다른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있었다. 최근 개업한 듯 세련된 디자인의 선명한 간판과 예쁜 인테리어의 가게 안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가 어린 알바와 함께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왜 하필 여기냐'는 내 질문에 영업 사원은 '보는 것처럼 손님이 많은, 검증된 상권'이라 답했다. 이에 나는 '저 앞집 노부부의 손님을 빼앗으란 말인가?' 하고 되물었다.

내 말에 그 영업 사원은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점잖지만, 훈계하듯 단호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장님, 장사는 경쟁입니다.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 장사하면 망해요. 저 가게는 이웃이 아니고 경쟁자예요."

2021년, 과도한 업무에 치인 게임사 직원의 자살, 돌연사가 기사화되며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3년이 지난 현재는 적자생존이라는 비인간적 경쟁에 내몰린 택배기사, 배달 라이더, 물류 센터 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기사화되며 그 '경종'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졌다.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다

'흑백요리사'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큰 흥행을 거둔 예능 방송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일부는 서두와 같이 피로감과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시청자뿐 아니라 해당 예능의 주역인 미슐랭 스타 요리사들에게서도 나타났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를 계기로 만들어진 어느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미슐랭 등급을 받은 요리사 상당수들이 등급 유지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일부는 등급 유지를 위해 주방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자신의 비인간적 모습에 회의를 느끼다 어렵게 획득한 미슐랭 스타를 반납하고 폐업을 선택하는 사례도 있었다.

독일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킨 책 <피로사회>(한병철 작가)에서 작가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는 데 현시대는 '긍정성 과잉'에 따른 질병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긍정성 과잉'이란 '~할 수 있다'라는 사회적 정서를 뜻한다. 작가는 이런 분위기가 자기를 착취하게 만들고 이는 현대 사회의 주요 병리 현상인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위기가 위험한 건 자기착취가 마치 자유의지인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요즘 젊은 세대 유행어가 바로 '누칼협'이다. 이 낯선 단어를 풀면 '누가 칼들고 협박했어'라는 과격한 문장이 된다.

타인의 명백한 압박 또는 강요 보다 더 과격한 이 사회적 압박과 강요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넘어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을 혹사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책 <피로사회>의 아래 문장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중략) 우울증은 성과 주체가 더는 할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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