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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례식장은 왜 붐빌까? 죽은 이들의 무서운 공통점

[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 고립된 삶과 죽음의 증가... 적확하게 대응하려면

등록|2024.10.22 13:27 수정|2024.10.22 13:27

▲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3661명. 최근 발표된 2023년의 '고독사' 현황입니다.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했고, 영국의 '외로움부 장관'처럼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최근 몇 년 동안 '고독사'에 대한 언론, 시민사회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독사라는 단어의 법률적인 정의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하고 있습니다. 처음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 조문에서 정의하던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였습니다.

이 정의는 거듭 개정되어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임종하는 것을 말한다"가 되었습니다. '홀로 사는 사람'이 '사회적 고립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 '임종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법률 제정의 목적에 맞게 조문이 개정되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꼭 혼자 살다가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어야만 고독한 죽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

얼마 전 한 부자(父子)의 장례를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로 치렀는데요. 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뒤, 건강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아들이 시신을 지자체에 위임했습니다. 그 후 아들의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했고, 먼저 사망한 아버지 외에 가족이 없었던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고요.

며칠 간격을 두고 부자의 장례를 치른 이 사례는 제정 당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고독사가 될 수 없습니다. 혼자 산 것도, 아버지의 경우 혼자 임종을 맞은 것도, 시신이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된 것도 아니니까요. 이들이 고립된 상태로 살았다 하더라도 법률에 따르면 고립된 죽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법률이 개정되어 이제 이런 부자의 죽음도 '고독사'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어떻게 죽었느냐가 아닌, 얼마나 고립된 삶을 살았느냐가 되었으니까요.

앞선 연재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요. '무연고 사망자'란 장례를 치를 연고자가 ①없거나 ②알 수 없거나 ③있으나 거부·기피한 경우를 뜻합니다.

'고독사'가 고립된 삶을 살던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면, '무연고 사망자'는 죽음 이후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고립된 삶을 살던 고인의 장례를 치러줄 누군가가 없다면 고인은 '고독사'한 '무연고 사망자'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나타나 고인의 장례를 치러준다면 고인은 '고독사'했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아니게 됩니다.

다르지만 교차해서 보아야 하는 두 개념

▲ '무연고 사망자'의 삶의 흔적: 사망장소 ⓒ 나눔과나눔


이렇듯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는 교집합을 공유하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그 때문에 이 둘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공영장례 현장에 찾아오는 기자들도 종종 이 차이를 모를 정도입니다.

구태여 앞의 문단들을 '고독사'의 정의와 '무연고 사망자'와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에 할애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연재를 계속하면서 언젠가 꼭 짚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는 전혀 다른 개념이면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우선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약 30퍼센트가 거주지에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고독사 의심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 통계에서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결코 적지 않은 비중입니다. 때문에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와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고독사 예방을 위한 중요한 기초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중년의 남성이 거주지에서 사망했고, 사체검안서에 '기타 및 불상'(사인을 모른다는 뜻입니다)이 적혔고, 장례를 치를 누군가가 없었다면 고인의 삶을 추적해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는 것은 고인이 제도적인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기타 및 불상'의 이유로 거주지에서 사망했다면 높은 확률로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고인을 찾은 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장례를 치를 누군가가 없었다는 사실까지 합쳐지면 고인이 고립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와 자료로 '사회적 부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교집합을 공유하는 만큼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가 증가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둘의 통계를 체계적으로 수립해 교차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서로의 통계에서 누락되는 고인을 찾아내고, 부족한 정보를 보완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 자료를 '고독사'한 고인의 사회적 부검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는 국가 통계가 없다

▲ 유택동산에 모셔진 고인의 유골함과 위패 ⓒ 나눔과나눔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고독사'는 국가 통계가 있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국가 통계가 없거든요. 또, '고독사'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일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각 지자체가 책임 주체가 되고요.

그렇다 보니 '무연고 사망자'의 생애 정보에도 지역 격차가 생기고 있습니다. 공영장례 현장에서 만난 사별자의 증언으로 알게 되는 고인의 생애 정보가 있는데, 모든 지자체가 공영장례를 시행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서도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금처럼 각 지자체 별 통계의 단순 취합이 아니라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국가 통계를 내고, 공영장례 또한 지역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편적인 사회 보장 제도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영국이 '외로움부 장관'을 만든 것처럼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 등 죽음과 관련한 문제에 대응하는 정부 부처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지금처럼 책임 부서가 달라 생기는 행정 소요를 줄일 수 있다면 보다 빠르고 적확한 대응이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골든 타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는 매년 수천 명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요. 서울시의 경우 2024년이 아직 두 달 이상 남았음에도 벌써 '무연고 사망자'가 1000명을 넘겼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빈소는 하루에 고인 네 분을 모시는 걸로 부족해 여섯 분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립된 삶과 죽음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에 나온 사례는 개인을 특정 지을 수 없도록 재가공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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