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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의료급여 개편, 제도 후퇴가 약자복지?

[윤석열 정부의 의료급여 개악③] 의료급여 개악이 아니라 '강화'가 필요하다

등록|2024.10.22 09:23 수정|2024.10.22 09:29

기초생활보장제도 평가 및 제도개선 토론회2024년 9월 5일 국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참여자들은 정부의 의료급여 개편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모았다. ⓒ 빈곤사회연대


지난 9월 5일 국회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평가 및 제도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낮은 기준중위소득과 급여별 선정기준, 부양의무자기준과 근로능력평가와 같이 까다로운 보장수준에 대한 개선 방안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토론회를 한달 남짓 남긴 7월 25일 정부에서 의료급여 본인부담체계 정률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2023년 8월 발표된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도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았던 내용이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된 것이다.

10월 국정감사에 나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토론을 거쳤다고 답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정부 산하 모든 위원회 가운데 가장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회의 과정과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으며, 속기록도 남기지 않고, 의견을 전달할 통로도 없다. 수급 당사자를 대표하는 위원을 포함하지도 않는다.

9월 5일 토론회 참가자들은 정률제 개편안에 대한 우려와 제도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발제자로 참석한 수급 당사자는 '현재에도 비급여 등으로 인해 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데, 정률제로 개편되면 의료이용을 하지 말라는 소리밖에 안된다'고 지적했고, 수급 당사자들과 보건의료 전문가들 모두가 정부의 개편안이 개악안이라고 평가하며 철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약자복지'는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는 복지'를 지향하는가?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본인부담체계가 17년 동안 변동 없이 유지되며 실질적 본인부담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비용 의식 약화로 인한 과다 의료 이용 경향이 있다'고 언급하며, '1인당 진료비가 건강보험 대비 3.3배, 외래이용일수가 건강보험 대비 1.8배 높'은 것을 정률제 개편안에 대한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이다. 의료 이용률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의료 필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기초생활수급가구의 41%가 노인이고,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구의 비율은 91%다. 건강보험 가입자와 비교해 병원 방문 일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의료급여 수급자의 미충족의료 경험률은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높은 것으로 일관되게 드러난다. 아파도 치료를 포기한 비율은 수급가구에서 27.8%에 달하고, 진료비 부담이 포기 사유인 경우는 87.1%다.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수급자의 평균 의료이용량을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각 집단의 실제 의료필요도가 얼마나 충족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비용 의식' 운운은 전체 재정 규모를 보더라도 사실이 아니다. 2018년~2022년 4년간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총진료비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 7.3%(건강보험) 7.2%(의료급여)로 유사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번 국정감사 당시 김선민 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지난 10년간 의료급여와 건강보험 진료비 총액 증가 추이는 건강보험 2.07배, 의료급여 1.99배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즉, 의료급여의 재정 지출 상승은 건강보험과 동일하게 수가 변동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타당성 없는 정률제 개편을 관철하기 위해 빈곤층에 대한 편견을 근거로 제시한 셈이다. 이것이 초래할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약자복지'의 실체인가?

의료필요도가 높은 환자일수록 병원비 증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문을 열어라!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폐쇄적 논의를 하고 있음을 규탄하며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빈곤사회연대


보건복지부는 본인부담상한제 등이 있어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의료비 부담 증가가 적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럼에도 의료비 부담이 증가할 이들을 위해 현 월 6천 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1만 2천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 외래이용 상위 1%의 의료비 부담이 월 6,900원 증가할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균'은 누군가에게 부과될 파국적인 비용을 감춘다. 시민건강연구소에서 의료패널 조사자료(2021년)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어떤 의료기관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의료비가 1.9배에서 3.6배, 최대 48배 이상 증가하는 사례까지 존재한다. 비용부담 증가분을 금액별 구간으로 살펴보면, 1만원 이하가 49.8%, 1만원 ~ 2만5천원이 26.5%, 2만5천원 ~ 5만원은 16.6%, 5만원 ~ 10만원은 5.0%, 그리고 10만원 이상이 2.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건강생활유지비 증가분과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기초법공동행동에서 16명 의료급여 수급자의 2023년도 의료이용 기록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건강생활유지비 증가분을 적용한 이후 5명에 대한 의료비가 최소 36,190원에서 최대 277,791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정률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 증가로 누군가 필요한 의료 이용을 포기하게 된다면, 사회적으로는 보편적 의료 보장을 포기하는 셈이다. 특히 수급자 간 비용 부담 증가의 편차가 크다는 점에서, 어떤 의료 이용에서 어떤 이들의 부담이 더 많이 증가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진료 내용을 살펴보니 영상 검사 등 치료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에 더 높은 수가가 부여되고 건당 진료비가 많을수록 정률제 적용에 따른 본인부담 의료비 증가가 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어디가 아플지 고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예측할 수 없는 의료비는 재난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안의 문제는 의료비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비용으로 인해 의료이용을 포기하는 등 의료접근성과 건강권을 해치는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이미 의료급여 2종 수급자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기초법공동행동 조사에 참여한 조사자 중 유일한 의료급여 2종 수급자인 R씨는 1차(의원) 의료기관만 이용하고 있었다. 의료급여 2종의 경우 현재에도 2차((종합)병원)와 3차(상급종합병원) 의료기관 이용 시 정률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R씨의 경우 허리와 어깨, 다리 관절 통증이 심한 상황이지만 비용을 우려해 상급병원에 가지 못하고 침구과, 정형외과에 자주 간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통증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문제 삼는 대표적인 지출 항목은 물리치료인데 R씨의 사례는 정부의 접근방식에 오류가 있음을 알려준다. 환자들이 필요한 처치나 수술이 아니라 물리치료를 전전하는 이유는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직 수술할 정도가 아니라, 원인을 정확히 찾을 수 없어서, 비급여 치료비 부담 때문에, 선지출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서 등등 환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이를 환자의 '선택'이라고 보는 것에서부터 잘못이다.

2021년 기초법공동행동에서 진행한 수급가구 가계부조사에 따르면, 25가구의 평균 의료비 지출은 40,261원, 최소 0원에서 최대 343,525원으로 나타났으며, 가장 많이 지출하는 가구는 수입의 28.5%를 의료비로 사용했다. 의료비 지출이 많은 가구는 의료기기를 새로 구입하거나 보장구 소모품 교체, 비급여 치료 등 불특정한 지출을 예비하기 위해 식비를 최대한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 정률제 개편안이 통과된다면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병원 이용을 포기하거나 식비 등 생활비를 극단적으로 줄여야 하는 재난적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의료급여 개악이 아니라 '강화'가 필요하다

"의료급여는 아니래"의료급여에서는 부양 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지 않고 있다.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 담벼락에 이를 비판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 빈곤사회연대


의료급여 제도의 목표는 빈곤층의 의료보장, 건강할 권리 실현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의 관심은 오로지 비용통제와 재정절감 뿐인 것 같다. 실제 재정을 줄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복지부는 비용 의식을 운운하는 동시에 수급자들의 부담이 늘지 않을 것이라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를 통해 정률제 개편안에 대한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대책은 정률제 개편안 전면 철회다. 정률제 개편이 아니더라도 의료급여에서 손 볼 건 차고 넘친다. 66만 명의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는 것.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겪고 있는 소득 대비 과도한 의료비를 부담하는 '재난적 의료비', 경제적 이유로 인한 '미충족 의료'에 대해 파악하고, 제도에 내재한 차별적 요소들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의료접근성을 침해하고 건강불평등을 악화시킬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급여제도가 빈곤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질병으로 인한 빈곤화를 예방하면서 '모든 이들의 건강(health for all)'을 추구하기 위한 '최후의 의료안전망'으로 기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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