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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과 인공지능

김성우의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를 읽고

등록|2024.10.22 08:43 수정|2024.10.22 08:43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 김훈 <연필로 쓰기> 시작에서

김훈 작가는 지금도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걸로 유명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프롬프트에 키워드만 잘 입력하면 거대언어모형에서 그럴듯한 글을 써주는 시대, 워드프로세서도 아닌 연필로 원고지에 작업하는 김훈의 글쓰기는 작가가 소망하는 대장장이와 같은 장인정신의 전형일까, 아니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완고함 내지는 디지털 전환에의 부적응일까?

아직 김훈의 글은 인공지능에서 뽑아낸 생기를 잃은 꽃처럼 아무런 향기 없는 글보다 훨씬 맛깔나고, 삶의 체취가 배어 있어 그가 보고 들은 것이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되는 힘을 지닌다. 김성우 작가는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에서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평균적이며 무난한 텍스트는 필자의 정체성과 위치성, 지역성과 역사성을 오롯이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습니다. - 473쪽

통계적으로 처리한 매끈한 문장보다 대단한 지식을 담고 있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고통과 내면의 목소리에 용기 있게 대면하며 써 내려간 울퉁불퉁 좌충우돌 문장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 474쪽

인공지능이 인간의 글쓰기를 뛰어넘는다면?

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 리터러시의 새로운 개념, 개인의 읽기와 쓰기의 변화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한다. ⓒ 유유출판사


인공지능이 더 진화하여 어느 순간, 어떤 인간의 글도 인공지능의 글보다 못한 시대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의 저자 김성우는 인공지능 자체에 대한 활용 능력보다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이고 창의적이며 윤리적인 접근에 대한 고려가 우선해야 한다(358쪽)고 말한다.

인류의 사회경제적 토대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인류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을 가하는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삶을 흔드는 기술의 부상은 인류의 역사에 늘 있던 일이며, 인간이 기술을 이해하는데 비고츠키의 중재개념을 차용한 '슬기로운 기술 활용'을 제안한다.

즉 기술을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보지 말고 삶과 관계를 바꾸는 중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302쪽)이다. 인간이 주체성을 갖고 세계를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더 넓고 더 깊게 만날 수 있는 중재도구로써 인공지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평균으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경제적-정치적, 기술적 특성을 지닌 구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성찰적이고도 비판적인 리터러시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마다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재발명

프롬프팅은 글쓰기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 - 258쪽

읽고 쓰는 인공지능이 나온 지금, 저자는 '인공지능이 읽고 쓰는데 나는 무엇을 하나?'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읽기와 쓰기를 어떻게 재발명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에 매몰되지 말고 표현과 내압이 끊임없이 교섭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글쓰기와 인공지능과의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한 상호보완적 멀티 리터러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멀티 리터러시 능력은 프롬프트를 글쓰기의 출발점 삼아 인공지능이 제시한 글을 읽고 분석해, 때로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더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내용을 도출해낼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프롬프트만 잘 만들면'이나 '좋은 질문만 던지면'이라는 말은 얼마나 앙상한 제안인가(264쪽)라고 되물으며, 여전히 깊이 있는 읽기 능력이 인공지능이 생성한 글의 수준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글쓰기는 표현과 내압이 끊임없이 교섭하는 과정, 끄집어내는 일임과 동시에 끄집어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 이 두 과정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돌아가는 일(135쪽)이라고 주장한다.

성찰의 계기로서 인공지능을 받아들여야

어떤 인간을 갖다 대도 기계 더 낫다는 사고가 상식으로 자리 잡을 때, 교육적, 사회적 실천의 지식 토대를 구성하는데 '머리를 맞댄 숙의'보다 엘리트 집단의 적절한 프롬프팅이 더 깊은 신뢰를 획득할 때, '인간이 발버둥질해 봐야 기계를 어떻게 따라 가'라는 생각이 당연시 될 때, 오랜 시간 진행한 민주적 논의 끝에 도달한 정치적 결론보다 인공지능의 제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만연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 358쪽

지금의 현실은 저자가 진단하고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대세'라는 사회적 담론이 자연스럽게 확산하고, '시대에 걸맞은 역량'이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논의와 정책 제언이 줄을 잇고 있다(204쪽).

과연 인공지능은 삶의 많은 영역에서 '성심성의껏' 우리를 돕는 조수일까, 아니면 우리의 디지털 발자국을 기록하고 심지어 목소리까지 엿듣는 무시무시한 감시자일까?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적 기술 거버넌스를 앞당기는 조력자일까, 아니면 기꺼이 거대 자본의 편에 서는 집행자, 기술 엘리트와 자본의 교차점에서 만들어지는 기술자본 권력의 대리인(62쪽)일까?

저자는 인공지능을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언한다. 저자는 대다수가 궁극의 기술인 문자를 기술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듯이, 인공지능 또한 기본적인 삶의 조건으로 자리 잡을(344쪽) 날이 올 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사회가 인공지능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와 인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작가의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가 우리 모두에게 도래할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비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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