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윤석열 대통령, 정말 포기하시겠습니까?

[이동철의 노동OK] 상병수당 시범 예산 뭉텅이로 잘라낸 윤석열 정부

등록|2024.10.23 11:12 수정|2024.10.23 11:12

▲ 팔이 부러지고 손가락이 잘리는 업무상 사고에 비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 같은 업무상 질병은 입증이 까다로워 산재 승인율이 굉장히 낮다. 자료사진. ⓒ 픽사베이


경기도 수원시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이아무개씨는 미뤄뒀던 어깨 수술을 고민 중입니다. 의사는 수술 후 2주간 안정을 취하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여름휴가로 연차유급휴가를 거의 소진한 이씨의 잔여 연차는 2일. 수술 후 휴식과 치료에 소요되는 2주를 버티기엔 부족했습니다.

다행히 이씨의 회사에서는 개인 질병으로 인한 경우 인사규정을 통해 30일 범위에서 유급병휴가를 줍니다. 이씨는 유급병휴가제도를 활용해 2주간 임금의 삭감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치료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며 인근 광명시의 제조업체에 다니는 강아무개씨는 2년 전 일하다 중량물이 발 위로 떨어져 다친 상처가 덧나 병원을 찾았습니다. 왼쪽 엄지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절단도 문제지만 수술 후 치료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할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산재 인정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공단은 발가락 절단 원인을 강씨가 가지고 있던 당뇨로 인한 합병증 때문으로 보고 업무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정했습니다. 2년 전 회사에서 차에 물건을 싣다 다쳤기에 산재가 될 것을 믿었는데 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공단 질병판정위원회 결정에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이의를 제기했지만 두 번째 결정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나옵니다.

팔이 부러지고 손가락이 잘리는 업무상 사고에 비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 같은 업무상 질병은 입증이 까다로워 산재 승인율이 굉장히 낮습니다. 게다가 업무상 질병 판정에 소요되는 기간은 2023년 기준으로 214.5일입니다.

일하다 아픈 거라고 인정받아 치료비와 휴업을 보상받기까지 짧게는 7개월 이상이 걸립니다. 그동안은 개인 질병으로 취급받습니다. 일을 못 하니 당장의 생계가 걱정입니다. 강씨의 회사는 앞의 이씨의 회사처럼 개인 질병에 대한 병휴직 기간을 유급으로 보장해 주지도 않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 아프면 쉴 권리

이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프면 쉬고 치료받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니는 회사의 능력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병휴가 관련 상담 사례를 종합하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300인 이상 중견기업 일부에서 작게는 6일에서 많게는 90일까지 개인질병에 따른 유급병휴가를 주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수 민간기업에서는 업무상 질병이 아닌 개인 질병으로 유급휴가를 주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상병수당 본사업 시행연기 규탄 및 법정유급병가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49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있습니다. 상병수당의 필요성을 알리고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는데요. 이들이 전국의 15살 이상 1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88%가 '아파도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사업장에 개인질병에 따른 병가제도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약 50%로 절반에 불과했고, 유급 병가가 마련돼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약 28%에 불과했습니다. 아플 때 사회가 지원해 줄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62%는 '병가'라고 답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업무와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거나 기술적 이유로 연관성이 증명되지 못해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할 경우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이유로 질병을 참고 일하거나 회사를 그만둬야 합니다. 회사로서는 인력이 유출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고 재해 노동자는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만약 해당 노동자의 질병이 전염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생계의 위기에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수하며 회사에 출근해 다른 동료들까지 감염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불과 3년 전 코로나19 대확산기에 이러한 구조적 위기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로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비정규직이나 여성, 저소득 취약 노동계층에 집중됩니다. 이들은 아파서 일자리를 잃고 일자리를 잃어 빈곤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만약 아플 때 일정 기간 쉴 수 있게 하고 건강하게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유급휴가를 부여한다면 재해 노동자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요.

상병수당, 아프면 쉴 수 있는 작은 보호막

다행히 강씨가 거주하는 부천시는 강씨처럼 업무와 무관한 질병으로 일을 못하더라도 유급으로 치료에 따른 휴업 기간에 대해 상병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15세 이상 65세 미만으로 부천시에 거주하며 취업한 시민이라면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일하지 못할 때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1일 4만 7560원의 수당을 최대 120일까지 지원합니다.

상병수당은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경제적 이유로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시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약속했고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켰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7월부터 부천시와 포항시에서 상병수당의 시범사업을 시작했는데요. 3년 여의 시범사업을 거쳐 2025년부터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본 사업을 실시할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 2022년 1월 11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현재 경기 부천시와 경북 포함시, 서울 종로구와 충남 천안시의 경우 전체 시민 중 근로 활동 불가 시민을 상대로, 전남 순천시와 경남 창원시 등에서 전체 시민중 입원 시민을 상대로, 경기 안양시와 용인시, 대구 달서구와 전북 익산시에서는 소득 하위 50% 이하 취업자를 상대로 보장 범위를 설계하여 단계별 시범사업을 시행 중입니다. 지난 7월부터는 강원 원주시와 전북 전주시 등 전국 17개 시군구로 늘려 상병수당 시범 사업이 시행 중입니다.

경기도 부천시의 경우 시범기간 중 2064건의 지급신청이 결정되어 신청자 1명당 평균 22.6일 동안 약 104만 4115원의 상병수당이 지급되었습니다. 시범사업 기간 투입된 금액은 약 21억 원입니다. 이처럼 21억의 예산은 2000명 넘는 시민들이 아픈 몸을 쉬고 건강을 회복해 일터로 복귀하거나 경제적 궁핍의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소중하게 쓰였습니다.

본 사업 2년 미룬 정부, 상병수당 포기하나

윤석열 정부는 목표대로 보장 범위별로 시범 사업 성과를 분석하여 내년부터 상병수당 본격화에 착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2025년부터 시작하기로 목표를 잡은 상병수당의 본 사업 실시를 2년 연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2027년 5월 초까지이므로 사실상 시행 포기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상병수당 시범 사업은 올해로 3년째이며 3차 시범사업 중입니다. 윤석열 정부 보건복지부 계획에 따르면 4차 시범사업 예산은 2023년 대비 약 75% 감액되어 약 3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시범 사업 시작해인 2022년 약 100억, 2023년 약 200억, 2024년 약 140억 원에 비하면 차이가 아득합니다. 사실상 상병수당 시행 포기라 의심할 만합니다.

기존의 최저임금 60%를 지급하던 지급액도 소득 대비 일정 비율 수당 지급(상한 최저임금의 80%인 6만 7200원)으로 바꿔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상병수당으로 지급하는 1일 수당액은 현재 최저임금 일액(7만 8880원)의 60%로 4만 7560원입니다. 아픈 노동자가 하루를 버티기에 충분한 금액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를 아픈 노동자의 소득대비 일정 비율의 소득액으로 바꾸면 상한이 6만 7200원으로 막힐 뿐만 아니라 상병수당을 신청하는 저임금 취약 노동계층에게는 그 실효성이 상당히 낮아질 것입니다.

2019년부터 '서울형 유급병가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전국 최초로 유급병가지원(서울형 입원 생활비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 근로취약계층이 입원할 경우 소득 공백에 대해 입원생활비로 1일 9만 1480원(서울시 생활임금 일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년도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 집행률이 미흡하여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의 실제 집행률이 약 33%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시범 사업이라 시민들이 상병수당 자체를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상병수당의 필요성이 높은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들이 적용에서 제외돼 있으며 2차 시범사업에서는 소득의 상한(소득 하위 50%)을 정해 대상과 범위를 좁혔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정부 논리대로 예산 집행률이 미흡하다면 다양한 정책 홍보 수단을 활용해 제도를 알리고 꼭 필요한 정책 대상을 포함하는 등 시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적극적 행정이 필요한 일이지 예산을 70% 넘게 뭉텅이로 삭감할 일이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픈 시민들이 건강권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이유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