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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 하니-한강 패러디 논란, 놓친 게 있습니다

[주장] '정부에 역행하는 종북좌파'라는 말의 폭력성 등 따져봐야

등록|2024.10.22 14:23 수정|2024.10.22 14:24

▲ SNL 코리아 시즌 6 배우 김의성 편에 나온 '국정감사' 패러디 ⓒ 쿠팡플레이


풍자 코미디로 유명한 < SNL 코리아 >가 국정감사에 출연한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를 패러디했다가 '조롱'과 '인종차별'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19일 공개된 SNL 코리아 시즌6 '배우 김의성' 편에서는 국정감사에 출연한 하니가 등장합니다. 배우 지예은이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의 어눌하고 서툰 한국어를 흉내 냈고, 이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국정감사에 나온 사람을 희화화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영어를 못하는 아시아인들을 조롱하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을 받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SNL 코리아를 보며 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증언 사라진 국정감사

▲ (위) SNL 코리아 시즌 6 배우 김의성 편에 나온 '국정감사' 패러디 (아래)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영화 '말레나'의 한 장면 ⓒ 쿠팡플레이. 유튜브 갈무리


기자는 이날 방송을 하니를 둘러싼 과도한 관심을 풍자한 패러디로 봤습니다. 방송을 보면, 국정감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안영미가 와서 인증샷을 찍고 나갑니다. 국회의원으로 분한 정상훈은 서명을 받은 후 자기 옷에 사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배우 김의성은 국정감사 당시 하니와 셀카를 찍어 비난을 받은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을 연기합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하니로 분한 지예은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는데, 그때 이곳저곳에서 휴지를 내밉니다. 이때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한 영화 <말레나>가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의 한 장면이 아주 유명한데요, 노천카페에 앉은 모니카 벨루치가 담배를 입에 물자 수많은 남자가 성냥과 라이터를 내민 장면입니다. 여주인공의 '외모'에 집중해 관심을 표하는 남성들의 행태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니는 직장 내 괴롭힘을 증언하기 위해 국회에 출석한 '용기'를 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국회에서는 그의 말 보다 유명한 여자 아이돌이라는 자체에 관심을 두고 사진을 찍는 거 같은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SNL 코리아가 이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본질을 벗어난 지나친 관심'을 향한 풍자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 아이돌의 용기 있는 증언보다 외모와 울음에만 관심이 쏟아진 행태를 비꼰 것 아닐까 하고요.

한강 작가 조롱?

▲ SNL 코리아 시즌 6 배우 김의성 편에 나온 한강 작가 패러디와 독서모임 리포트, 황교안 전 총리 인터뷰 ⓒ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는 뉴진스 하니 외에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패러디했습니다. 한강 작가 특유의 느린 말투를 흉내 내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이 역시 일부에서는 한강 작가를 희화화했다고 지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이후에 SNL 코리아가 방송한 코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논란이 된 한강 작가 인터뷰가 끝난 뒤 'MZ 세대의 한강 신드롬'이라는 뉴스 리포트가 재연됩니다. 텍스트힙(독서하는 게 멋지다는 의미에서 등장한 신조어 - 기자 말) 독서 인증 열풍으로 SNS에 한강 작가의 책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거나 독서 모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자리에서 모임 참석자들은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적어도 육식주의자는 아니겠구나", "저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상에 걸맞은 소설가라고 생각을 해요. 소설이 영어로 Novel이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리포터는 '과시용 독서, 독서 놀이에 빠진 MZ'라는 자막과 함께 "독서 열풍이 그저 유행으로 지나가지 않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요?"라고 되묻습니다. 사실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곱씹어야 하는 부분 아닐까요.

또 이날 '근황쳌'이라는 코너에는 황교안 전 총리가 나옵니다. 리포터인 지예은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언급하면서 황 전 총리에게 "왜 박근혜 정부 때는 블랙리스트였을까요?"라고 묻습니다.

황 전 총리는 "내가 조윤선 장관에게 물어보니 블랙리스트를 본인이 만든 바가 없다고 했다. (당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역행하는, 특히 종북좌파는 지원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고 설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10년 전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정부 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돼 논란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번 SNL 코리아의 진심은 무엇일까요. 제작진이 아니니 정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해당 회차에는 하니 패러디나 한강 작가의 말투를 흉내 낸 것 말고도 생각해 볼 지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정부에 역행하는 종북좌파'라는 말이 지닌 폭력성, 그리고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황 전 총리, 그 시절 박근혜 정부에서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는 것 등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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