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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하룻밤 잘 여자 찾는 남자... '베타메일'을 아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 862] 29회 부산국제영화제 <인서트>

등록|2024.10.23 20:32 수정|2024.10.23 20:32

▲ 영화 <인서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문학과 영화,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여성서사가 주요한 흐름을 형성한 게 벌써 십 수 년쯤 된 일이다.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는 다양한 시도가 의식 있는 독자며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낸 덕분일 수 있겠다. 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지원사업에서도 이 같은 소재가 우대를 받고 의미 또한 효과적으로 발굴되니 한국에서 여성서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 끊이지 않고 제작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올 여름만 해도 <한국이 싫어서>, <딸에 대하여>, <빅토리>, <리볼버>, <그녀에게> 등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 여럿 등장했다. 이중 상당수가 문학작품 기반으로 탄탄한 드라마를 갖춘 여성서사란 점에서 이 시대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서사가 크게 늘어났음을 확인하게 한다.

반면 남성서사 작품을 살펴보면 아쉬움을 금하기 어렵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살피자면 일상적 소재보단 극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영웅적 인물, 재난적 상황, 또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 대다수인 가운데 현실을 살아가는 남성들이 제 모습을 투영할 만한 작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루저, 베타메일... 이 시대 남성의 일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섹션에 초청된 <인서트>는 이러한 흐름 가운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근래 보기 드문 남성서사, 그것도 이 시대 평범한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단 점에서 그러하다.

요 근래 회자되는 알파메일(우두머리 수컷을 뜻하는 말로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주도적인 남성을 일컫는다)과 베타메일(알파메일에 대비해 결점을 가진 남성들로 이성과의 관계에서 도태되는 이들을 가리킨다)의 대비 속에서 베타메일의 연애담을 가까이 그려냈다.

인터넷 상에서 유행처럼 떠도는 알파메일과 베타메일의 대비는 이를 소비하는 남성 가운데 상당수를 이루는 이들이 스스로를 베타메일로 규정하고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사회 젊은 남성이 패배감을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로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시사IN>이 20대 남성의 정치적 세력화에 주목해 시작한 3부작 연속보도, 또 그를 바탕으로 펴낸 책 <20대 남자>에서도 20대 남성 가운데 다수가 마이너리티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해 화제가 됐다.

마이너리티가 무엇인가. 소수자이며 약자다. 지난시대의 남성, 그것도 젊은 남성에게선 좀처럼 관측되지 않던 정체성이다. 그럼에도 문학과 영화 등의 창작물에선 남성들의 박탈감이나 소외감, 패배감과 무력감을 다룬 작품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남성서사는 멋지고 대단한 남성들, 또는 일상에서 벗어난 자극적 이야기로 소비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지난 십수 년 간 여성서사가 일상을 파고들고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이야기로 이어진 것과는 대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귀를 기울여야 할 이야기

▲ 영화 <인서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이 시대 젊은 남성 가운데 다수는 어째서 스스로를 상대적 약자로 바라보는가. 예술이 삶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무엇이라면 마땅히 그를 주목하고 반영하며 해석해야 하는 일이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지난 시대 젊은 남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왔던 영화가 비로소 그를 비추기 시작하니, <인서트>가 꼭 그와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영화는 상업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 진주석(남경우 분)의 이야기다. 그는 영화 도입에 쓰는 배경, 즉 인서트 장면을 찍는 인서트 감독으로 일한다. 꼭 있어야 하는 역할은 아니라지만 딱히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그를 안쓰러워 한 감독이 불러다 일거리를 준 것이다. 성격 좋기로 유명한 감독의 제안에 진주석은 마다 않고 일한다. 일이라고 해봐야 영화의 배경이 될 지역의 호숫가에 카메라를 두고 하염없이 그를 담는 것뿐이지만.

그저 배경을 비추던 카메라에 한 여자가 들어온 건 제법 운명적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사연을 알 수 없는 여자 마추현(문혜인 분)이 카메라 앵글 안, 그러니까 호숫가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더니 배낭을 벗고 갑자기 물 안으로 뛰어든다. 깜짝 놀란 주석이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고 빼내려 한 건 차라리 자연스럽다. 그녀도 죽을 생각까진 없었던 듯 어찌어찌 뭍 위로 올라온다. 촬영팀과 추현의 첫 만남이 그러했다.

성격 좋은 감독은 이 일도 그저 지나치지 못한다. 스스로 물에 몸을 던진 추현에게 일거리 제안을 한 것이다. 영화판에서 일할 생각은 없느냐며 스탭일을 제안한다. 추현은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그들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성별 고정관념을 뒤틀어내는

영화는 주석과 추현의 관계로 이어진다. 추현이 촬영팀에 합류하며 주석과 교류가 있게 되고, 둘이 점차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둘이다. 주석은 추현에게 마음을 주고 그녀를 끌어안고 애정을 고백한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 뒤 여느 때처럼 다음 날을 맞는다. 함께 밤을 보낸 주석의 작업실에서 먼저 눈을 뜨는 건 주석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일어난다.

영화 내내 주석은 못난 사내의 전형이다. 주목할 것은 나쁜 사내가 아니란 것이다. 나쁜 게 아니라 못난 사내, 그리하여 자신과 상대를 망치는 이다. 함께 눈을 뜬 날엔 일어나 휴대폰을 잡고 게임을 켠다. 요 며칠 빠져 있던 게임이다. 세상 흔한 게임하는 남자, 그것도 옅은 수준의 중독성을 보이는 이다. 곁에는 첫날밤을 보낸 여자가 잠이 들어 있다. 게임 소리에 여자가 눈을 뜨고 한바탕 일이 벌어진다.

하필 성격이 만만찮은 여자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며 촬영 현장으로 찾아와 생쇼를 벌였던 이다. 그녀의 전 남친이 게임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했던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그녀에게서 주석은 호되게 까인다. 뒤늦게 잘못을, 말 그대로 빌어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주석의 일상이 와장창 무너진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버려진 남자의 고통이 이후를 잠식한다.

<인서트>는 여러모로 기존 성별의 고정관념을 뒤틀어 놓았다. 뒤틀었다고는 하지만 뒤늦게 오늘의 현상을 바라봤다 하는 편이 옳겠다. 여전히 여성들을 핍박하고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못된 남자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 편엔 여성과 교류할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하고, 만나도 외면 받고 조롱당하며, 제 자존감을 지키려 여성을 혐오하는 못난 이들이 수두룩하다.

'성인지 감수성'으로 대표되는 지난 몇 년 간 법원의 전향적 판례들과 성범죄 무고로 고생한 수많은 사례들, 그로 인해 벌벌 떠는 사내들의 존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 패배감과 결핍감, 두려움이 못난 남자의 마이너리티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나랑 잘 사람?" 그 허망한 외침

▲ 영화 <인서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인서트>의 클라이맥스, 그러니까 촬영이 모두 끝난 쫑파티 자리에서 주석을 따로 불러낸 추현이 그를 호되게 몰아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해도 좋다. '남자들은 무슨 하룻밤만 같이 보내면 죄다 사귀는 것인 줄 아느냐'고 윽박지르는 그녀에게 주석은 그야말로 쩔쩔맬 뿐이다. 그런 그녀가 주석이 아닌 촬영팀의 다른 이와도 깊이 관계를 맺어왔음을 드러낼 때 영화는 그 블랙코미디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무참하게 나가떨어지는 사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너절하지만 분명한 재미를 준다.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는 주석이 부둣가를 홀로 걸으며 반복하는 마지막 대사를 통해 참담한 인상을 빚어낸다.

주석은 부둣가에 매인 배를 보며 '나랑 잘 사람'하고 묻는다. 반복해 거듭 자기와 잘 사람을 찾는 만취한 주석이다. 묶인 배는 답이 없다.

주석과 같이 못난 사내가 적잖은 세상이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벌이가 시원찮은 직업을 갖고 성공하지 못한 채 여자 앞에서 졸아드는 사내들이 스스로를 강화한다. 자기와 잘 사람을 찾지 못하고서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채로 늙어간다. 마이너리티적 정체성이 응고해 패배감을 학습하고 공격적으로 분출된다. 이미 그와 같은 세대가 유의미한 집단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이제야 <인서트>와 같은 작품을 맞이한다. 쪽팔리지만 사실적인 이야기, 민망하지만 나와야만 할 작품이 아닌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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