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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이후 120일

아리셀은 중대재해 참사의 책임을 인정하는가

등록|2024.10.22 15:03 수정|2024.10.22 20:50

▲ 아리셀의 모기업 에스코넥 앞에서 유가족들이 매일 농성을 하고 있다 ⓒ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 협의회


2024년 6월 24일. 화성시 전곡산단에 위치한 (주)아리셀에서 1차 리튬배터리가 폭발했다. 아리셀 공장의 11개 건물동 중 3동 2층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는 23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9명의 노동자가 부상을 입었다. 18명의 희생자는 이주노동자였고 1명을 제외하면 17명의 이주노동자는 재중 동포였다.

인명 사고가 있기 전 언제나 전조 현상이 있다는 것을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말해왔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1년 11월에는 전지 폭발과 화재 사고가 있었고, 2021년 12월에는 전지 박스가 쏟아져 폭발 사고가 있었다. 또 2022년 3월에는 폐전지 내부 열로 화재가 발생했고, 6월에는 발열전지가 폭발한 일이 있었다. 2022년 아리셀과 에스코넥이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전지가 누액, 발열, 팽창 등이 발생했다는 1,429건의 제기가 있었고 육군본부는 전지 안전성 향상 조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2024년 6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기 이틀 전인 6월 22일에도 비슷한 폭발사고가 있었다. 역시 과거의 사건처럼 규모가 작았고 작업자가 진압했다. 회사는 무사히 넘어간 중대산업재해의 전조 현상에 안도했다. 원인을 찾고 개선하지 않았고 회사 내에서 사고를 공유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사고를 누가 막았는지 누가 다쳤는지만 확인했다.

결국 아리셀 중대산업재해로 리튬 배터리가 폭발하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해 본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배터리가 폭발하면 비치된 소화기로 그 불을 끌 수 없다는 것을 회사가 알려준 적은 없었다. 유일한 출입구 앞에는 폭발한 배터리가 가로 막고 있었다. 폭발에 이어 시커멓고 자욱한 연기가 유독 가스를 품고 40여초 만에 작업 공간을 채웠다. 대피 훈련을 받은 적도 비상구 위치를 알지도 못했던 불안정한 고용 상태의 작업자들은 대부분 피하지 못했다. 운 좋은 일부 노동자는 정규직들만이 열 수 있는 문이 열릴 때 그 뒤를 따라 비상구로 탈출할 수 있었다.

2024년 6월 24일의 중대재해 참사는 그렇게 순식간에 발생했다. 참사는 순식간이었지만 참사 이후 수습과 복구, 회복은 아직 더딘 진행형이다.

(주)아리셀의 모기업 (주)에스코넥의 한 부서에서 만들기 시작한 1차 리튬배터리는 '아리셀'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홍보되고 납품되었다. 한 부서가 (주)아리셀이 되었던 2020년 이후에도 에스코넥은 아리셀이 자신들의 제품이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국방부에 1차 리튬배터리 납품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리셀이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에스코넥은 투자하고 대여금을 매년 지급하면서 운영비를 마련해줬고, 출자와 대여뿐 아니라 지급 보증도 섰다.

그런데 지금 에스코넥은 아리셀과는 독립된 기업인 양 모르쇠한다. 아리셀의 대표이사이자 에스코넥의 대표이사였던 '박순관'씨가 구속되자 에스코넥은 대표이사가 구속된 것은 맞지만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공시했다.

경영 책임자인 박순관씨는 6월 24일 참사 이후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유가족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으나 그는 유가족들을 만나기를 피하며, 자신이 정해놓은 배상금 기준에 따라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아서 합의하자고만 했다.

유가족들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고 피폐해졌다. 아직 희생자 장례를 치르지 못한 가족들도 있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가족을 잘 보내주고 싶었기에 미루고 미뤘다.

2024년 10월 21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발생 120일이 되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와 가족협의회가 싸운 지 120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 아리셀 본부장 박중언은 구속되었다. 구속된 그들의 태도는 여전했다. 사과도 없고 피해자 측의 마음을 헤아린 대화도 잘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최초로 사전 구속된 경영책임자가 된 박순관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에 책임이 있다고 본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관련 10월 21일 공판준비기일 후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2024년 10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3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참사 위에 참사가 얹히는 세상이다.

아리셀 중대재해 120일 되어 진행된 공판준비기일은 허무하게 끝났다. 피고측 대리인들이 아직 재판 자료를 열람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공판준비를 하지 못하였고 결국 공판준비기일도 한 차례 더 잡게 되었다. 재판자료 열람과 준비에만 2개월을 소진하게 되어 6개월이라는 피고인의 구속기간이 끝나기 전에 과연 이 재판이 끝날 수 있을지 우려된다. 6개월 안에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중대재해참사의 핵심적 책임이 있는 '박순관과 박중언'이 석방되어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사 재판으로 모든 잘못이 드러나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재판은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이 적용되는 시간이며, 그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잣대를 옮기기도 하는 계기이다.

아직까지 책임자들은 중대재해 참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측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사망했으니 중대재해가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형사 재판에서 여러 증거와 주장과 정황이 다뤄질 것이고 앞으로의 형사 재판 기간 내내 유가족들은 더 피폐해지고 울부짖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재판들이 그러해왔다.

그 고통의 과정이 있다 해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책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해자들은 버티며 우리 사회의 정의를 기대한다.

그 최소한의 기대가 현실이 되어야 할 정당함이 있기에, '안전한 사회' '중대재해가 없는 사회'를 바라는 사회 구성원들도 올바른 판단이 내려지는 재판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권미정 기자는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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