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울 눈, 커다란 코... 도깨비 돌장승 찾아 떠난 여행
[사진] 백성들 아낀다던 석장승... 백두대간 운봉고원 돌장승 탐방 역사 문화 여행
▲ 백두대간 운봉고원 인월면 유곡리 돌장승 ⓒ 이완우
장승은 마을 입구에 세운 나무나 돌 기둥으로, 벅수라고도 한다. 남녀 한 쌍을 이루어 남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여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명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 장승의 유래는 사찰의 경계, 미륵불, 마을 당산과 선돌 등 아직은 분명하지 않지만, 마을의 수호신 구실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낙동강 상류인 백두대간 운봉고원에는 돌장승이 밀집하여 분포한다. 이 지역 인월면 유곡리, 운봉읍 권포리, 서천리(서림공원)와 권포리 등 10km 이내 지역에 돌장승 10기가 모여 있다.
돌장승들은 마을 어귀의 길 양쪽에 남녀 한 쌍으로 서 있었다. 옛길은 좁았으므로 남녀 돌장승이 좁은 길섶 양쪽에 더 가까이 마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좋은 샘이 있었고 마을 앞에는 작은 방죽(웅덩이, 둠벙, 연못)이 있으면, 마을 어귀의 돌장승 가까이에 여름이면 어리연꽃도 피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여느 논이나 가까이에 작은 방죽이 있었으며 생태계의 보고였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인월면 유곡리 돌장승 ⓒ 이완우
인월면 유곡리 돌장승을 찾아가는 길에 덕곡연못 어리연꽃의 둥근 잎이 생기롭다. 어리연꽃 푸른 잎은 하트형으로 수면에 떠 있다. 유곡리 돌장승을 찾아 가는 길에 만난 연못과 어리연꽃은 돌장승 탐방 여행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돌장승 옆에 자연 연못(방죽), 여름에는 어리연꽃 하얀 꽃을 피웠다.
운봉고원 유곡리 닭실마을 앞에 있는 이 마을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천하대장군 돌장승과 지하여장군 돌장승이 있는데 명문이 희미하다. 천하대장군은 높이 250㎝, 두께 32㎝와 너비 57㎝이고, 지하여장군은 높이 220㎝, 두께 32㎝와 너비 45㎝의 크기이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어리연꽃 (2024.09.24 촬영) ⓒ 김태윤
천하대장군 돌장승은 투박한 사모관대를 쓰고 있다. 눈은 둥글고 코는 크다. 이 돌장승 어깨 너머로 멀지 않은 곳에 가야 고분으로 알려진 유곡리와 두락리의 삼국시대 고분군이 보인다. 지하여장군 돌장승은 천하대장군 돌장승과 형태가 유사하나 부드러운 자태이다.
두 석장승이 모두 두렷한 왕방울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북천리 돌장승 ⓒ 이완우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북천리 돌장승 ⓒ 이완우
황산대첩비지가 있는 황산 옆의 북천리 돌장승을 찾아갔다. 백두대간 운봉고원은 고려 말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격멸한 황산대첩 전승지이다.
동방축귀대장군(東方逐鬼大將軍) 돌장승과 서방축귀대장군(西方逐鬼大將軍) 돌장승 한 쌍이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눈을 위로 치켜 뜨고 송곳니가 두드러진 동방축귀대장군은 위협적인 표정이고, 감투를 쓴 듯하고 귀가 길게 늘어져 미륵부처가 연상되는 서방축귀대장군은 평온하고 친근한 표정이다.
이 돌장승은 콘크리트 기단에 하부가 묻혀 있고 현재 약 1.5m 정도가 드러나 있다. 돌장승의 하부가 콘크리트 기단에 고정된 모습은 안타깝다.
운봉고원에 모여 있는 수수께끼 같은 돌장승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서천리 돌장승 ⓒ 이완우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서천리 돌장승 ⓒ 이완우
운봉고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람천 옆에 서림 숲이 있다. 이 숲 어귀에 약 300년 전에 세워진 서천리 돌장승 한 쌍이 서 있다.
높이는 2.2m의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돌장승은 고깔 같은 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왕방울 눈을 부릅뜨고 주먹코를 벌름거리고 있다. 굳게 다문 입에 송곳니가 튀어나온 듯하여 용맹하고 의지가 굳어 보인다.
높이 2m의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돌장승은 깊은 음각으로 표정이 굵은데, 시침 떼고 멍한 표정이 익살 맞다.
백두대간 운봉고원의 운봉 지역은 물에 떠가는 배의 형국이어서 배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짐대(솟대), 방어대장군과 진서대장군을 세웠다고 한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어리연꽃 (2024.09.24) ⓒ 김태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권포리 마을 어귀 돌장승 ⓒ 이완우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권포리 마을 어귀 돌장승 ⓒ 이완우
백두대간 고남산 아래 권포리에 있는 두 쌍의 돌장승을 찾아갔다.
이 마을 어귀 돌탑 옆에 한 쌍 돌장승이 있고, 이 마을에서 성산을 지나 운봉현 관아로 가는 옛길의 길목에 한 쌍 돌장승이 있다. 이렇게 한 마을 앞에 네 기의 돌장승이 밀집해 있다니 다소 특별하다.
마을 어귀 높이 1m의 돌장승은 이마에 굵은 줄이 있고, 왕방울 눈이 선명하다. 입 모양이 웃고 있는 형태로 귀엽고 친근하다.
길 맞은편의 높이 1m의 대장군(大將軍) 돌장승은 풍화가 많이 되어 얼굴 윤곽은 희미하지만, 웃고 있는 환한 모습으로 보인다. 키는 1m 남짓 된다. 이곳의 돌장승 모두 딱딱한 콘크리트 기단에 서 있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어리연꽃 (2024.09.24) ⓒ 김태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권포리 길목 돌장승 ⓒ 이완우
권포리 마을 앞 길목에 돌장승 한 쌍이 서 있다. 이 마을은 고려말에 이성계 장군이 '이 땅을 침노(侵擄)한 왜구를 물리치겠다.'고 맹세하며 하늘에 제사 지낸 백두대간 고남산의 당당한 정기가 어려있다.
대장군(大將軍) 돌장승은 '눈과 코가 크고, 콧구멍과 수염이 있으며, 두 손을 맞잡고 있다'고 전해오나, 풍화와 마모가 심하여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길 건너편 돌장승은 두 손을 높이 맞잡고 서 있다. 왕방울 눈에 눈동자까지 그려져 있고, 왕방울 코를 벌름거리며 보일 듯 말 듯 웃고 있다.
이곳 돌장승의 콘크리트 기단에 묻힌 하부에 '중종 18년(1523년)의 연대를 추측할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 분포하는 돌장승이 18세기 이후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이곳 백두대간 운봉고원에서는 16세기 초반에 돌장승이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운봉읍 권포리 길목 돌장승 ⓒ 이완우
운봉고원, 네 마을의 다섯 쌍 돌장승을 찾아보면서 이 돌장승을 처음 세웠을 때의 풍경이 자꾸 상상 되었다.
옛길의 폭이 좁은 길섶에 마주 선 돌장승 가까이 작은 방죽(둠벙, 연못)에는 맑은 물이 고여 출렁거리고, 계절 따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한 세상을 이루었을 것이다.
운봉고원에는 '도깨비들이 낮에는 장승으로 서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백성들을 지켜준다'는 민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 네 마을의 다양한 돌장승의 표정에서 백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월면 유곡리 덕곡연못에 활짝 핀 어리연꽃이 운봉고원 돌장승의 마음으로 여겨졌다. 운봉고원의 돌장승을 찾아보는 곳마다 주위에 '수면의 요정' 같은 하얀 어리연꽃이 피어 있는 상상을 하였다.
돌장승은 도깨비 같은 '땅의 요정'일까? 백두대간 운봉고원에 모여 있는 수수께끼 같은 돌장승들과 하트형 푸른 잎 순백의 꽃을 피우는 어리연꽃이 역사 문화 이야기와 상상력의 보물 창고가 되기를 바란다.
▲ 백두대간 운봉고원 어리연꽃 (2024.09.24) ⓒ 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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