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청자와 달항아리, 인사동에 뜬다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 개인전, 더스타갤러리에서 23일부터 28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황청자(黃靑磁)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형우 도예명장이 오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더스타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전시 활동이 왕성한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의 이번 개인전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도전에 나선다. 황청자와 함께 난생 처음으로 백자 달항아리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형우 명장의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황청자(黃靑磁)의 뿌리는 고려청자(靑磁)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고려의 청자(靑磁)와 조선의 백자(白磁) 달항아리는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다.
그렇다면 황청자(黃靑磁)는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청자는 옅은 청색을 띄는 비색(翡色)이 주류지만, 역사적으로 청자의 시작은 3~4세기 중국 월주가마(越州窯)에서 나온 누런색이 나는 초기 청자다.
누런빛이 나지만 황자(黃磁)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화학적으로 산화제2철의 황변(黃變)현상과 산화제1철의 녹변(綠變)현상에 따른 것으로 산화제2철 단계에서 구워지면 누런 빛이 나고, 산소를 적게 공급해 환원 번조(燔造)하면 초록빛으로 변하는 녹변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고의 황자(黃磁)는 고려 때 만들어진 국보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銘 壺, 사진 국가유산청)를 보면, 이 항아리가 만들어진 때가 순화4년(서기 993)이고 용도는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신 고려의 태묘 제1실 향기(享器, 제사용 그릇)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기술의 발전으로 옅은 청색을 띠는 비색 청자에 금속 표면에 홈을 파내고 금·은과 같은 재료를 두드려 감입하는 입사(入絲)기법과, 목기의 표면에 얇은 금·은판을 오려 옻칠과 함께 부착하는 평탈(平脫)기법 등을 도자기에 접목한 상감(象嵌) 기법을 적용한 가장 고려적인 특색의 상감청자가 제작되었다.
청자의 역사를 보면 당연히 누런빛에서 옅은 청색으로 발전해 왔지만, 누런빛을 더 맑고 곱게 만들어 '황청자(黃靑磁)'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 바로 경기 여주시에서 활동하는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이다.
그는 19세 때 인천 한국청자연구소에서 도예에 입문한 이후 20대 후반에 우연히 황금빛 청자(黃磁)에 매료되어 재현을 위해 전국을 돌며 연구한 20여년 만에 독창적인 방법으로 황금빛 청자(黃磁)의 재현에 성공했다. 그는 더 맑고 은은한 누런빛의 도자기를 위해 천착한 결과 이제 그만의 독보적인 청자 기법으로 만든 황금빛 청자를 만들고 '황청자(黃靑磁)'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황청자와 함께 달항아리를 선 보이게 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이 있다.
이형우 명장의 이번 개인전에는 출품하지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그는 10여 개월의 시간을 들여 높이와 폭이 90cm에 가까운 초대형 진사(辰砂) 달항아리(붉은 달항아리)를 제작했다.
이형우 명장은 진사(辰砂) 달항아리를 만든 이유에 대해 "그때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힘들었잖아요. 동짓날 붉은 팥죽이나 붉은 복주머니와 같이 우리 전통에서 붉은 색은 구복벽사(求福辟邪)를 의미하기에 '붉은 달항아리'를 만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빨리 끝나길 염원했던 것 같아요. 청자와 진사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12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에는 진사를 상감으로 쓴 것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래서 진사로 붉은 달항아리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해 작업을 했는데... 첫 작품은 실패했고, 지금 우리 전시실에 있는 작품이 두 번째 작품입니다"라며 작품을 만들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형우 도예명장이 말하는 고려청자는 대한민국 보물 제346호인 '청자 상감동채모란문 매병'이다).
"조심스럽죠. 달항아리는 오로지 도자기의 모양으로 조형성과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저의 표현이 어떻게 관람객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지 조심스럽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호방한 작품을 만들어 온 이형우 명장의 입에서 '조심스럽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황청자(黃靑磁) 명장'이라는 수식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매달려온 작업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40년 넘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듯하다.
"작업은 재미있었어요.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흙을 빚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편안해 지더군요"라는 이형우 명장. 그는 "관람객들께서도 제가 작업하면서 느낀 편안함을 느끼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달항아리는 자유분방한 표현이 생명이니까요"라며,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황청자와 함께 달항아리를 내놓게 된 계기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여러 제한으로 전시회를 열기 어렵게 되면서, 자신의 작품과 작업을 반추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작품의 표현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도자기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해 40년 넘게 외길을 달려 온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의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잘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성실함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21세기 대한민국 도예가의 도전 정신은, 수 세기 후 대한민국의 도예가들에게 21세기의 예술혼으로 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 ⓒ 이형우
전시 활동이 왕성한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의 이번 개인전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도전에 나선다. 황청자와 함께 난생 처음으로 백자 달항아리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의 백자 달항아리 ⓒ 이형우
이형우 명장의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황청자(黃靑磁)의 뿌리는 고려청자(靑磁)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고려의 청자(靑磁)와 조선의 백자(白磁) 달항아리는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다.
그렇다면 황청자(黃靑磁)는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청자는 옅은 청색을 띄는 비색(翡色)이 주류지만, 역사적으로 청자의 시작은 3~4세기 중국 월주가마(越州窯)에서 나온 누런색이 나는 초기 청자다.
누런빛이 나지만 황자(黃磁)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화학적으로 산화제2철의 황변(黃變)현상과 산화제1철의 녹변(綠變)현상에 따른 것으로 산화제2철 단계에서 구워지면 누런 빛이 나고, 산소를 적게 공급해 환원 번조(燔造)하면 초록빛으로 변하는 녹변현상이 나타난다.
▲ 고려 때 만들어진 국보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銘 壺) ⓒ 국가유산청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고의 황자(黃磁)는 고려 때 만들어진 국보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銘 壺, 사진 국가유산청)를 보면, 이 항아리가 만들어진 때가 순화4년(서기 993)이고 용도는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신 고려의 태묘 제1실 향기(享器, 제사용 그릇)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기술의 발전으로 옅은 청색을 띠는 비색 청자에 금속 표면에 홈을 파내고 금·은과 같은 재료를 두드려 감입하는 입사(入絲)기법과, 목기의 표면에 얇은 금·은판을 오려 옻칠과 함께 부착하는 평탈(平脫)기법 등을 도자기에 접목한 상감(象嵌) 기법을 적용한 가장 고려적인 특색의 상감청자가 제작되었다.
▲ 이형우 도예명장 황청자(黃靑磁) 작품 ⓒ 이장호
청자의 역사를 보면 당연히 누런빛에서 옅은 청색으로 발전해 왔지만, 누런빛을 더 맑고 곱게 만들어 '황청자(黃靑磁)'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 바로 경기 여주시에서 활동하는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이다.
그는 19세 때 인천 한국청자연구소에서 도예에 입문한 이후 20대 후반에 우연히 황금빛 청자(黃磁)에 매료되어 재현을 위해 전국을 돌며 연구한 20여년 만에 독창적인 방법으로 황금빛 청자(黃磁)의 재현에 성공했다. 그는 더 맑고 은은한 누런빛의 도자기를 위해 천착한 결과 이제 그만의 독보적인 청자 기법으로 만든 황금빛 청자를 만들고 '황청자(黃靑磁)'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황청자와 함께 달항아리를 선 보이게 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이 있다.
▲ 이형우 도예명장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제작한 초대형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 성형을 마친 기믈을 점검하고 있다 ⓒ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
이형우 명장의 이번 개인전에는 출품하지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그는 10여 개월의 시간을 들여 높이와 폭이 90cm에 가까운 초대형 진사(辰砂) 달항아리(붉은 달항아리)를 제작했다.
이형우 명장은 진사(辰砂) 달항아리를 만든 이유에 대해 "그때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힘들었잖아요. 동짓날 붉은 팥죽이나 붉은 복주머니와 같이 우리 전통에서 붉은 색은 구복벽사(求福辟邪)를 의미하기에 '붉은 달항아리'를 만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빨리 끝나길 염원했던 것 같아요. 청자와 진사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12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에는 진사를 상감으로 쓴 것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래서 진사로 붉은 달항아리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해 작업을 했는데... 첫 작품은 실패했고, 지금 우리 전시실에 있는 작품이 두 번째 작품입니다"라며 작품을 만들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이형우 도예명장이 말하는 고려청자는 대한민국 보물 제346호인 '청자 상감동채모란문 매병'이다).
▲ 이형우 도예명장이 코로나19 펜데믹 시기에 제작한 높이와 폭이 90cm에 가까운 초대형 진사(辰砂) 달항아리(붉은 달항아리) ⓒ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
"조심스럽죠. 달항아리는 오로지 도자기의 모양으로 조형성과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저의 표현이 어떻게 관람객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지 조심스럽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호방한 작품을 만들어 온 이형우 명장의 입에서 '조심스럽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황청자(黃靑磁) 명장'이라는 수식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매달려온 작업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40년 넘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듯하다.
"작업은 재미있었어요.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흙을 빚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편안해 지더군요"라는 이형우 명장. 그는 "관람객들께서도 제가 작업하면서 느낀 편안함을 느끼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달항아리는 자유분방한 표현이 생명이니까요"라며,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
▲ 이형우 명장의 이번 개인전에는 출품하는 투각 소품 ⓒ 이장호
그가 이번 전시에서 황청자와 함께 달항아리를 내놓게 된 계기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여러 제한으로 전시회를 열기 어렵게 되면서, 자신의 작품과 작업을 반추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작품의 표현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도자기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해 40년 넘게 외길을 달려 온 이형우 여주시 도예명장의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잘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성실함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21세기 대한민국 도예가의 도전 정신은, 수 세기 후 대한민국의 도예가들에게 21세기의 예술혼으로 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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