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民)의 주체성으로, 하늘땅살이·마을밥상 운동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잔치: 살림꾼 주제발표①
인류의 공동과제인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 앞에 민(民)의 주체역량으로 새로운 생태계 이루고자 2023년 살림학연구소가 태어났다. 그 길에 동참하는 개인과 단체가 모여 지난 10월 3~6일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를 열었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살림꾼 주제발표, 강연 등으로 나눠 연재한다. 첫 번째는 살림꾼 주제발표 <하늘땅살이와 마을밥상>이다. 농생활소농연대 미영/승화, 인수마을밥상 신우, 덕계마을밥상 성미 살림꾼(연구원)이 함께했다. |
▲ 살림학연구소 첫돌잔치에서 하늘땅살이, 마을밥상 주제로 이야기하는 살림꾼들 ⓒ 살림학연구소
한국 생명농사의 역사와 밝은누리 하늘땅살이운동
강원 홍천에서 농사짓는 승화 살림학연구소 살림꾼(연구원)이 물었다. 그는 "옥수수는 일 년에 한 번 거두는 작물인데 한 대에 열매 한두 개만 난다. 그중 가장 좋은 열매 하나만 천 원 남짓에 팔리는데 도대체 농민들이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생산과 소비의 단절로 농(農)이 소외된 현실을 짚었다.
한국 농운동의 흐름을 공부하던 승화 살림꾼은 산업화와 증산이라는 강력한 시대 요구에도 꿋꿋하게 생명농사 이어 온 정농회,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에 주목했다. 그러고는 이들의 저력이 삶터를 기반으로 한 운동에서 왔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세계화라는 거센 바람에 농촌이 무너지자 삶터 기반의 농운동들도 어려움을 겪는 한계를 마주했다.
자본과 국가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삶터를 일구지 않는다면 생명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움을 깨달은 승화 살림꾼은 민(民)의 주체역량과 마을(삶터)을 기반으로 농의 의미를 풀어 온 밝은누리 하늘땅살이(농사) 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밝은누리에서는 생명순환을 실천하는 농사, 나아가 하늘과 땅을 공경하며 생명 살리는 농생활을 '하늘땅살이'라 부른다.
▲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에서 하늘땅살이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살림꾼 승화 ⓒ 살림학연구소
11년 전 귀농한 승화 살림꾼은 농생활소농연대로 함께하며 토박이 씨앗 기르고 받는 생명농사를 이어 오고 있다. 화장실 변기 대신 생태뒷간을 사용하며 심고 키워 먹은 것을 밭에 돌려주는 순환을 실천한다. 덕분에 기계와 전기 없이 지속할 수 없는 관행농업, 즉 시장과 국가가 요구하는 농업의 기본 설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농촌과 도시가 연결된 마을에 살며 끊겼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농도상생"이라며 "돈과 권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소농들의 중심에는 마을이라는 든든한 삶터가 있다"고 말했다.
농산물 유통만이 농촌과 도시의 교류는 아니에요. 우리 소농들은 거둔 것을 팔기보다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는데, 주는 것보다 넘치게 받으며 풍요롭게 살지요. 꾸준히 함께하는 공부와 두레 울력 품앗이 문화로 연결된 마을의 관계성 덕분이에요. 이 생태계 속에 있으니 덜 쓰고 자족하며 살 수 있고, 겸허하면서도 생기 있게 지낼 수 있어요. -승화 살림꾼
▲ 강원 홍천에서 보낸 고구마줄기를 다듬는 서울 인수마을밥상 풍경 ⓒ 인수마을밥상
곡식 거둬 밥상에 올리는 순환의 삶, 서로 살리는 밥의 삶
살림학연구소에서 곡식 하늘땅살이 연구하는 미영 살림꾼은 "곡식은 심고 거두고 껍질 벗기는 노력 없이는 밥상에 올릴 수 없다"며 "올해 비가 길게, 많이 오면서 곡식 이삭에 싹이 텄다. 달라진 기후 속에서 지구 생명이 겪는 어려움 헤아리면서, 더 정성껏 알곡 남기고 꾸준히 밥상에 올려 서로 살리는 밥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살림학연구소에서 하늘땅살이를 주제로 연구하는 승화, 미영 살림꾼은 하늘땅살이와 밥상이 함께 가야 지속가능하다고 말한다. 직접 농사를 지어 보면 양껏 재료를 써서 화려한 요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대신 투박하지만 버리지 않고 전부 먹게 된다고 전했다.
반면 밥상이 없는 하늘땅살이는 수확물을 계속 쌓아 두고 내보내지 못해 순환이 막힌다. 이에 '마을밥상'을 통해 우리 땅에서 난 작물을 밥상에 올려 하늘과 땅, 사람의 순환을 실천하는 곳도 있다. 서울 인수마을밥상과 경남 덕계마을밥상이다.
▲ 살림꾼 미영이 거둔 수수 ⓒ 미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민의 힘으로 지속해 온 마을밥상
인수마을밥상 신우 살림꾼은 "살림학연구소에서 마을밥상을 주제로 연구하면서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 존속하는 마을밥상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서울연구원이 조사한 서울시 소재 마을부엌 사례 7곳 중 지금까지 그 취지에 맞게 운영을 이어 오는 곳은 인수마을밥상 한 곳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우 살림꾼은 "인수마을밥상 사례에 비춰 보면 마을밥상이란 누구나 편하게 들러 밥 먹는 공간은 물론, 민의 주체역량으로 일궈 온 지속적인 관계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음식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식당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인수마을밥상이 십수 년째 이어져 온 뿌리에는 제도화되지 않은 마을(삶터)이 있다고 했다. 마을에서 펼쳐지는 두레 울력 품앗이 문화가 있어 마을밥상에서도 밥 먹는 이와 짓는 이가 나뉘지 않고 함께 살림살이를 이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마을밥상에 꾸준히 밥 먹으러 온다는 거예요. 이 관계망이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자발적인 힘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마을밥상의 의미가 큽니다. - 신우 살림꾼
▲ 서울 인수마을밥상 풍경 ⓒ 인수마을밥상
함께 뜻 모으고 역량 쌓으며 피어난 마을밥상
덕계마을밥상 성미 살림꾼은 "처음에는 교육 공동체로 모였다가 함께 마을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밥상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같이 공부하며 뜻을 모으고 역량을 쌓아 2021년 12월 코로나 돌림병 도중 마을밥상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성미 살림꾼은 덕계마을밥상이 생기고 각 가정의 먹거리 문화가 바뀐 사례를 소개하며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는 토대에는 마을 사람들의 주체적인 자세와 끈끈한 관계망이 있다"고 나눴다. 특히 마을 대안학교 '밝은덕 배움터'와 공간을 함께 쓰면서 학교를 마친 아이들과 부모가 평일 저녁마다 자연스럽게 모이는 흐름이 자리 잡았다.
성미 살림꾼은 "덕계마을밥상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펼칠 수 있는 장"이라며 "학교 방학 중에도 아이들이 친구나 마을 이모삼촌들과 관계를 잘 지속하는 문화가 마을밥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살림꾼들이 삶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들은 '민의 주체역량에 뿌리내린 마을(삶터)이 있을 때 하늘땅살이(농사) 운동과 마을밥상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들은 농으로 흙을 살리는 일이 곧 나를 살리는 일이며, 건강한 밥으로 나를 살리는 일이 곧 온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순환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 덕계마을밥상 풍경 ⓒ 덕계마을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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