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품은 유행템이 아니잖아요
한강 작가 외 작품들도 판매량 증가... 한국 문학을 위해 천천히 꾸준히 읽었으면
'책이 없어 책방에 온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야 한다더라'라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군산 동네책방 마리서사를 찾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날아든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염려와 달리 책방 주인은 괜찮다며 잔잔한 미소를 주었다. 처음 며칠은 입고가 어려웠지만 이제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세상의 소란에도 '아들과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던 한강 작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 아직도 세계에서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며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준비하던 마을 잔치를 만류했다던 한강 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작 당사자는 차분하게 집필하고 있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만 흥분하여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며 흥분했나 보다.
한강 작가 대신 독자가 연 잔치
그러나 사실, 이것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드디어 우리말로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한 책모임에서는 지난 3월, 이미 한강 작가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무지개독서회는 우리만의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파티'를 열었다. 한강 작가를 초대하지 않았지만, 슬픔 앞에서 한껏 애도해야 하는 것처럼, 기쁨 앞에서 한껏 축하하고자 했다. 그저 가벼운 식사 자리였지만 한국의 노벨문학상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흥분, 예전에 읽거나 최근에 다시 읽은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토론, 여행 중에 스웨덴 한림원에 다녀온 에피소드, 한국 문학의 위상에 대한 시각 등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린 시절에는 읽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세계 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 문학을 은근히 경시했던 경험도 고백했다. 반대로 아무리 번역이 좋고 유명해도 우리말 작품을 읽어야 교감이 잘 되어 한국 문학을 우선으로 찾아 읽었다는 사례도 나누었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욘 포세(2023년)와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2022년)의 작품에 대해서도 짧게 거론했다. 국내외의 여러 문학상 수상 작가와 작품 목록은 독자에게 유용한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상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을 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철도원 삼대>, <해질 무렵> 등 책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황석영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좋았는지도 나누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었을 때 마침 제주도에 계셨다는 회원이 말을 꺼냈다. 무지개독서회에서 <작별하지 않는다>와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를 함께 읽었던 기억이 나서 4.3평화공원에 다녀왔다고. 당시 우리는 작가가 집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걱정하며 그의 안녕을 기원했다.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읽으며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나누었다.
한국문학의 생동감을 느낄 때
윤동주는 <팔복>이라는 시에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여덟 번 반복한다. 문학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슬퍼하는 것. 행복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 그것은 희귀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구하기 힘들었던 한강 작품 수급이 나아지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는 것 자체가 아프고 힘겨워서 몇 번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고, 결국 책을 끝내기 전에 몇 번이나 덮어 버리고 싶어진다.
다른 동네 책방 한길문고를 방문했다. 그곳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이 넉넉하게 있었다. 미리 주문했던 독자를 위한 책은 한 켠에 높이 쌓여 있다. 계산할 때는 적립을 위해 회원번호를 묻는데, 최근에는 서점 회원이 아닌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새로운 독자층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을 때 <채식주의자>의 판매량만 늘어나는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아 기쁘지만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 한때의 유행처럼 스치고 지나는 현상이 아닐까 걱정했다.
이제는 그때와 다를 것 같다. 서점에서는 한강 작가 외의 작품들도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연관검색문학'은 무궁무진하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나 작가가 추천한 작품,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작품이나 광주 5.18을 다룬 임철우 작가의 <봄날>이나 제주 4.3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단과 출판사, 책방 그리고 독자가 함께 기뻐할 일이다. 한국문학 생태계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동할 일이다.
문학에는 타인의 아픔을 알게 되는 힘듦이 있다. 또한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삶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희열이 있다. 빠르게 읽고 빠르게 잊을 일이 아니다. 천천히 사색하고 음미하고, 함께 나누며 꾸준히 이어갈 일이다.
책을 당장 읽고 싶어도 며칠만 기다리면 동네 책방에서도 책을 만날 수 있다. 한강 작가도 동네 책방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면서 우리 같이 천천히 꾸준히 읽어가자.
▲ 마리서사의 한강 작가 책한강 작가의 책이 동네 책방 마리서사(군산)에 입고되어 있다. ⓒ 김규영
세상의 소란에도 '아들과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던 한강 작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 아직도 세계에서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며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준비하던 마을 잔치를 만류했다던 한강 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작 당사자는 차분하게 집필하고 있는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만 흥분하여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며 흥분했나 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드디어 우리말로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한 책모임에서는 지난 3월, 이미 한강 작가의 작품을 함께 읽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무지개독서회는 우리만의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파티'를 열었다. 한강 작가를 초대하지 않았지만, 슬픔 앞에서 한껏 애도해야 하는 것처럼, 기쁨 앞에서 한껏 축하하고자 했다. 그저 가벼운 식사 자리였지만 한국의 노벨문학상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 무지개독서회의 책읽기2024년 3월, 제주 4.3을 앞두고 무지개독서회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를 함께 읽었다. ⓒ 김규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흥분, 예전에 읽거나 최근에 다시 읽은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토론, 여행 중에 스웨덴 한림원에 다녀온 에피소드, 한국 문학의 위상에 대한 시각 등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린 시절에는 읽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세계 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 문학을 은근히 경시했던 경험도 고백했다. 반대로 아무리 번역이 좋고 유명해도 우리말 작품을 읽어야 교감이 잘 되어 한국 문학을 우선으로 찾아 읽었다는 사례도 나누었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욘 포세(2023년)와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2022년)의 작품에 대해서도 짧게 거론했다. 국내외의 여러 문학상 수상 작가와 작품 목록은 독자에게 유용한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상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을 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철도원 삼대>, <해질 무렵> 등 책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황석영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좋았는지도 나누었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었을 때 마침 제주도에 계셨다는 회원이 말을 꺼냈다. 무지개독서회에서 <작별하지 않는다>와 현기영 작가의 <제주도우다>를 함께 읽었던 기억이 나서 4.3평화공원에 다녀왔다고. 당시 우리는 작가가 집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걱정하며 그의 안녕을 기원했다.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읽으며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나누었다.
한국문학의 생동감을 느낄 때
윤동주는 <팔복>이라는 시에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여덟 번 반복한다. 문학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슬퍼하는 것. 행복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 그것은 희귀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구하기 힘들었던 한강 작품 수급이 나아지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는 것 자체가 아프고 힘겨워서 몇 번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고, 결국 책을 끝내기 전에 몇 번이나 덮어 버리고 싶어진다.
▲ 한길문고에 한강 작가의 책한강 작가의 책이 동네 책방 한길문고(군산)에 입고되어 있다. ⓒ 김규영
다른 동네 책방 한길문고를 방문했다. 그곳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이 넉넉하게 있었다. 미리 주문했던 독자를 위한 책은 한 켠에 높이 쌓여 있다. 계산할 때는 적립을 위해 회원번호를 묻는데, 최근에는 서점 회원이 아닌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새로운 독자층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2016년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을 때 <채식주의자>의 판매량만 늘어나는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한국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아 기쁘지만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 한때의 유행처럼 스치고 지나는 현상이 아닐까 걱정했다.
이제는 그때와 다를 것 같다. 서점에서는 한강 작가 외의 작품들도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연관검색문학'은 무궁무진하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나 작가가 추천한 작품,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작품이나 광주 5.18을 다룬 임철우 작가의 <봄날>이나 제주 4.3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단과 출판사, 책방 그리고 독자가 함께 기뻐할 일이다. 한국문학 생태계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동할 일이다.
문학에는 타인의 아픔을 알게 되는 힘듦이 있다. 또한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삶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희열이 있다. 빠르게 읽고 빠르게 잊을 일이 아니다. 천천히 사색하고 음미하고, 함께 나누며 꾸준히 이어갈 일이다.
책을 당장 읽고 싶어도 며칠만 기다리면 동네 책방에서도 책을 만날 수 있다. 한강 작가도 동네 책방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도 기억하면서 우리 같이 천천히 꾸준히 읽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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