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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복귀' 일제 조선총독 글씨, 창원시 야간조명 중단

[보도 후] 열린사회희망연대 "옛 추산정수장 일제 석물, 즉각 철거" 촉구

등록|2024.10.23 13:56 수정|2024.10.23 14:19

▲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3일 창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옛 추산정수장 ‘일제 총독’ 석물 등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 윤성효


"창원시는 민족정기보다 일본의 마음이 더 중요한가? 옛 추산정수장 '일제 총독' 석물 등을 즉각 철거하라."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주차장 옆 터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과 마산부윤이 쓴 글을 새긴 석물이 유독 돋보이게 전시돼 있는 가운데,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3일 창원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요구했다.

1930년 옛 추산정수장이 조성된 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산명수청', 당시 마산부윤(시장) 판원지이(板垣只二)가 쓴 '수덕무강'이라는 한자 글씨가 새겨진 석물을 두고서다.

두 석물은 1995년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차원으로 철거돼 산호공원(용마공원) 화단에 있다가 2001년 마산박물관이 건립되면서 옮겨 왔다. 마산박물관 주차장 옆 화단에 있던 두 석물은 2022년 9월, 지금의 형태로 유독 돋보이게 밤에는 조명까지 비춰가면 전시가 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보도하면서 알려졌고, 창원시는 야간조명을 즉각 중단했다.

"당시 상수도 수혜자는 주로 일본인들이었다"

▲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3일 창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옛 추산정수장 ‘일제 총독’ 석물 등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 윤성효


열린사회희망연대는 회견문을 통해 "조선총독과 마산부윤은 자신들의 건설한 상수도 시설에 대해 스스로 감개무량하여 쓴 글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상수도 수혜자는 주로 일본인들이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수장 시설은 일본인들을 위한 사업이었다. 봉암수원지와 추산정수장 공사가 시작된 1928년 말 그 당시 마산 인구는 2만3734명이었다. 그중 조선인은 1만8300명 일본인은 5339명이었고 기타 외국인들은 95명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일본인들이 거주한 지역이 주로 추산동과 자산동을 비롯한 신마산일대 였고, 수도시설도 일본 가옥 중심으로 시설됐다. 그중 극히 일부 친일 부역자 조선인들만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조선인은 여전히 우물을 사용했다. 상수도에 동원된 노동 인력은 조선인들이었지만, 수도시설비와 수도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941년 발간된 <마산약지의전모>라는 책에는 당시 수돗물을 먹는 사람들은 800가구 4000명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언급한 열린사회희망연대는 "대다수 조선인들에게 '산명수청'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수덕무강'은 그저 헛된 소리일 뿐이었다"라며 "그런데 해방된 지 77년이 지난 2022년 땅바닥에 박혀 우거진 잡풀 속에 묻혀있을 석물을 아주 귀한 역사적 유물인양 모시고 있는 모습에 우리는 놀라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따.

이어 "그 시설물 앞을 지나는 모든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추어 그 무거운 석물을 높이 받들어 전시하여 시민들에게 그들의 업적과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비를 맞을세라 눈이 오면 눈맞을세라 지붕을 씌워놓고 등을 달아 야밤을 밝히며 밤낮으로 시민들의 시선을 받고자 애를 쓰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3일 창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옛 추산정수장 ‘일제 총독’ 석물 등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 윤성효


아래위 나란히 있는 두 석물의 양쪽에는 '어린이 헌장비', '3.1독립운동기념탑 이전 안내판'이 있다. 이같은 사실을 언급한 이들은 "기막힌 일은 전시된 문제의 석물은 마치 어린이 헌장을 짓누르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일제 강점기 일본 천황의 대리 통치자인 조선 총독과 일인 마산부윤의 석물이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야할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기를 팍팍 꺽는 모양새를 하고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1995년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를 위해 철거했던 사실을 언급한 이들은 "본래 이 근처 구석진 땅 위에 놓여있던 이 석물은 1995년 민족정기살리는 사업일환으로 마산 합포동 용마공원으로 옮겨졌다"라며 "언뜻 보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장소라 생각되지만, 이 석물들이 그곳으로 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용마공원에는 우리 지역 언론으로부터 존경받는 목발 김형윤 선생의 불망비가 있다. 목발이라는 호는 일제 때 조선인을 괴롭히는 못된 일본 헌병의 눈알을 뽑았다는 전설과 같은 일화를 남긴 분이시다. 그 불망비 앞 화단 바닥에 이 석물을 깔아놓아 화단을 건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밟고 지나가게 설치해놨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금과 같이 지나치리 만큼 귀중한 유물로 대접하여 존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민족정기를 말살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며 이는 일본이 좋아하고 친일 매국 세력들이 기뻐할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제총독과 마산 부윤 글씨를 새긴 석물을 즉각 철거하라", "문제의 석물을 지금처럼 전시하고자 기획한 책임자를 징계하라", "창원시장은 공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창원시 측 "빠른 시일 안에 기존 안내판 정비"

▲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주차장 옆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과 마산부윤의 석물. ⓒ 윤성효


김영만 상임고문은 "석물에 새겨진 두 글자는 우리 민족을 위한 내용이라기보다 당시 일본 왕(천황)을 위한 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며 "창원에도 일제강점기를 근대화로 받아들이는 뉴라이트 인식을 하는 공직자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철거해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는 "마산 최초의 정수장인 추산정수장으로 사용됐던 장소임을 알리고 우리 고장의 어두운 역사를 후세에 전달하며 이를 통해 어떻게 교훈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사업소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일제강점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다양한 형태의 관광과 교육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라며 "빠른 시일 안에 기존 안내판을 정비하고 내용을 보완해 설치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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