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아이 팔아 돈 버는 한국... 출산율 꼴찌 선진국의 민낯
[김성호의 씨네만세 864] 29회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영화 < K-Number >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입양은 숭고한 행위라고들 한다. 왜 아닐까. 피가 섞인 아이 하나 기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남의 아이를 제 품에 받아들여 기르는 일이니 보통 마음가짐으론 어림없을 일이다. 심지어 피부색도, 문화도 다른 먼 타국에서 아이를 받아 입양하는 건 더욱 쉽지 않은 결정일 테다.
그럼에도 국제입양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어린아이가 다른 나라로 건너가 그 가정의 자식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획일적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부 기관이 자료를 추려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동을 받아들이는 나라와 보내는 나라 사이에 확연한 경향성이 발견된다.
국제입양은 그 과정에서 여러 민간기관이 참여해 수익을 챙기는 사업이기에 이를 수입과 수출로 바라보는 시선도 상존한다. 한국은 지지리도 가난했던 지난 세기부터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까지도 확고한 아동 수출국이다. 아무리 떨어져도 아동 수출순위 10위권 안에 자리했던 한국은 다른 나라가 코로나19 이후 해외입양을 크게 줄인 사이에도 그 숫자를 어느 정도 유지해 세계 3위까지 올라섰다.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가장 많이 자국 아이를 해외 가정으로 보낸 것이다. 출산율 세계 꼴찌, 사람이 없어 미래가 걱정된다는 이 나라가 벌인 일이다.
아이 팔아 돈 버는 한국 해외입양의 현실
< K-Number >는 한국 해외입양 정책의 문제를 추적한 조세영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기대를 모았다. 2024년 기준, 한국 제작 다큐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모이는 곳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 경쟁부문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신작 다큐를 출품할 권위 있는 장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현실 가운데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다큐인들에게 얼마나 귀한 기회가 되어주는지를 알 만도 하다. 지난해 대비 출품 편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한국 다큐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던 점만으로도 < K-Number >가 받는 높은 평가와 기대를 알 것만 같다.
제목의 'K-Number'는 한국인 입양아 문제의 상징적 기호다. 입양을 가는 아이들에게 붙는 개별번호로, 모든 입양아는 독자적인 K-Number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입양을 중개하는 홀트아동복지회 같은 민간기관·국가는 이 번호가 어떤 기준으로 매겨지고 분류 및 관리되는지를 속 시원히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저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기 쉽지 않은 해외 입양아들에게 K-Number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정보일 수밖에 없다.
영화엔 여러 입양아 출신 외국인이 등장한다. 그중 처음은 K-Number '723915' 미오카 밀러다. 미국에서 양부모와 갈등으로 쫓겨난 뒤 미옥이란 본명에 발음을 쉽게 돕는 a를 붙여 직접 '미오카'란 이름을 지었다. 그녀는 지난 2008년 이후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데, 제 뿌리를 찾는 것이 그 이유가 되겠다.
뿌리 찾는 해외입양아, 막아서는 법제도
다큐는 미오카가 제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뒤따른다. 어렵게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실종 아동이었다. 부모가 없는 고아도 아니고,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도 아니었다. 경찰 기록은 그녀가 독고개라는 곳 출신으로 길에서 발견됐다고만 적혀 있다. 고아가 아니라면 그녀의 부모가 애타게 한국서 잃어버린 딸을 찾고 있을 확률도 있는 것이 아닌가.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0에 수렴할 먼 타국으로 입양을 보내는 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감독은 해외입양인 뿌리를 찾는 모임 '배냇'과 함께 미오카가 제 부모를 찾는 과정을 뒤따른다. 입양을 매개한 홀트아동복지회와 그 기록, 주민센터와 경찰 등 온갖 기관에 접촉해 자료를 구하려 한다. 한국인이 아닌 데다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그녀로선 하나하나가 난항일 밖에 없다. 경찰도 어째서 자료를 내주어야 하느냐 불편한 기색을 내보인다.
영화는 미오카를 중심으로 여러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두루 담는다. 미국과 호주 등으로 나갔다가 제 뿌리를 찾기 위해 돌아온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장벽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중 상당수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당혹스러운 문제들이다. 저 자신과 관련된 자료를 구하는 일부터 힘에 겹고, 국가며 지자체, 또 책임 있는 기관의 조력 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진 비슷한 사정에 놓인 이들의 커뮤니티가 그나마 힘이 되어주는 듯하다. 또 일부 시민단체가 손을 뻗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바뀌지 않는 제도, 그를 비추는 작업의 의미
책임 있고 유능한 언론과 언론인을 찾아보기 어렵고, 법원의 태도 또한 소극적이기만 하다. 이 과정에서 지치고 상심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다. 2017년 발생한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의 투신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테다. 1983년, 어린 나이에 미국에 입양됐으나 시민권이 취득되지 않았고 성인이 된 2012년 강제추방을 당해 한국에 돌아온 지 5년 만에 죽음에 이른 것이다.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의 죽음에 한국 해외입양의 부조리한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미오카를 중심으로 여러 해외 입양아 출신 외국인들의 오늘을 마주하는 동안 한국의 해외입양 제도의 참담한 운영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부터 이윤을 쫓아 부를 불리는 과정의 민망함 또한 여실히 확인된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의 증언을 통해 내다보는 해외입양의 현실을 보다 보면 영화가 이를 '홈쇼핑', '국가 차원의 인신매매'에 빗대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부족하나마 몇 차례 언론과 영화, 애니메이션, 다른 다큐를 통해 조명된 바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해외입양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일지 않았고 관련 법이나 대책은 제대로 수립된 적 없다. 법원 또한 국가의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정부... 바뀌어야만 한다
영화의 백미는 해외입양아들이 참석한 어느 간담회 자리다. 코로나19 국면 가운데 해외입양아에게 보내진 마스크를 받고 도리어 모멸감을 받았다는 어느 이가 격렬하게 제 입장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그녀를 향해 국가의 노력이 그렇게 가닿아 반가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극장 곳곳에서 실소가 비어져 나오는 민망한 순간이다. 그와 같은 태도, 자세, 공감력이 오늘의 문제를 만들었음을 관객이 비로소 알게 되는 장면이다.
입양, 그것도 해외입양이 어느 누구의 삶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또 그를 위한 제도를 완비하는 것이 혹시 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해외입양아를 위한 길이란 걸 우리의 정부와 법 제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로부터 예고됐던 문제가 거듭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자리를 잡았다 해도 제 뿌리를 찾으려는 이들이 거듭 좌절하고 절망한다. 정부와 책임 있는 기관들은 책임을 면피하기에 급급하다.
< K-Number >는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며 자화자찬하는 한국의 민망한 얼굴을 내보인다. 개선해야 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제도며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한다. 인간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조차 지려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면이라는 걸 더 많은 이가 알아야 한다고 외치는 작품이다. 나는 그와 뜻을 같이 한다.
입양은 숭고한 행위라고들 한다. 왜 아닐까. 피가 섞인 아이 하나 기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남의 아이를 제 품에 받아들여 기르는 일이니 보통 마음가짐으론 어림없을 일이다. 심지어 피부색도, 문화도 다른 먼 타국에서 아이를 받아 입양하는 건 더욱 쉽지 않은 결정일 테다.
국제입양은 그 과정에서 여러 민간기관이 참여해 수익을 챙기는 사업이기에 이를 수입과 수출로 바라보는 시선도 상존한다. 한국은 지지리도 가난했던 지난 세기부터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까지도 확고한 아동 수출국이다. 아무리 떨어져도 아동 수출순위 10위권 안에 자리했던 한국은 다른 나라가 코로나19 이후 해외입양을 크게 줄인 사이에도 그 숫자를 어느 정도 유지해 세계 3위까지 올라섰다.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가장 많이 자국 아이를 해외 가정으로 보낸 것이다. 출산율 세계 꼴찌, 사람이 없어 미래가 걱정된다는 이 나라가 벌인 일이다.
▲ K-Number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아이 팔아 돈 버는 한국 해외입양의 현실
< K-Number >는 한국 해외입양 정책의 문제를 추적한 조세영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기대를 모았다. 2024년 기준, 한국 제작 다큐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모이는 곳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 경쟁부문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신작 다큐를 출품할 권위 있는 장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현실 가운데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다큐인들에게 얼마나 귀한 기회가 되어주는지를 알 만도 하다. 지난해 대비 출품 편수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한국 다큐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던 점만으로도 < K-Number >가 받는 높은 평가와 기대를 알 것만 같다.
제목의 'K-Number'는 한국인 입양아 문제의 상징적 기호다. 입양을 가는 아이들에게 붙는 개별번호로, 모든 입양아는 독자적인 K-Number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입양을 중개하는 홀트아동복지회 같은 민간기관·국가는 이 번호가 어떤 기준으로 매겨지고 분류 및 관리되는지를 속 시원히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저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기 쉽지 않은 해외 입양아들에게 K-Number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정보일 수밖에 없다.
영화엔 여러 입양아 출신 외국인이 등장한다. 그중 처음은 K-Number '723915' 미오카 밀러다. 미국에서 양부모와 갈등으로 쫓겨난 뒤 미옥이란 본명에 발음을 쉽게 돕는 a를 붙여 직접 '미오카'란 이름을 지었다. 그녀는 지난 2008년 이후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데, 제 뿌리를 찾는 것이 그 이유가 되겠다.
뿌리 찾는 해외입양아, 막아서는 법제도
다큐는 미오카가 제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뒤따른다. 어렵게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실종 아동이었다. 부모가 없는 고아도 아니고,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도 아니었다. 경찰 기록은 그녀가 독고개라는 곳 출신으로 길에서 발견됐다고만 적혀 있다. 고아가 아니라면 그녀의 부모가 애타게 한국서 잃어버린 딸을 찾고 있을 확률도 있는 것이 아닌가.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0에 수렴할 먼 타국으로 입양을 보내는 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감독은 해외입양인 뿌리를 찾는 모임 '배냇'과 함께 미오카가 제 부모를 찾는 과정을 뒤따른다. 입양을 매개한 홀트아동복지회와 그 기록, 주민센터와 경찰 등 온갖 기관에 접촉해 자료를 구하려 한다. 한국인이 아닌 데다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그녀로선 하나하나가 난항일 밖에 없다. 경찰도 어째서 자료를 내주어야 하느냐 불편한 기색을 내보인다.
영화는 미오카를 중심으로 여러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두루 담는다. 미국과 호주 등으로 나갔다가 제 뿌리를 찾기 위해 돌아온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장벽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중 상당수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당혹스러운 문제들이다. 저 자신과 관련된 자료를 구하는 일부터 힘에 겹고, 국가며 지자체, 또 책임 있는 기관의 조력 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진 비슷한 사정에 놓인 이들의 커뮤니티가 그나마 힘이 되어주는 듯하다. 또 일부 시민단체가 손을 뻗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 K-Number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바뀌지 않는 제도, 그를 비추는 작업의 의미
책임 있고 유능한 언론과 언론인을 찾아보기 어렵고, 법원의 태도 또한 소극적이기만 하다. 이 과정에서 지치고 상심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다. 2017년 발생한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의 투신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테다. 1983년, 어린 나이에 미국에 입양됐으나 시민권이 취득되지 않았고 성인이 된 2012년 강제추방을 당해 한국에 돌아온 지 5년 만에 죽음에 이른 것이다.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의 죽음에 한국 해외입양의 부조리한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미오카를 중심으로 여러 해외 입양아 출신 외국인들의 오늘을 마주하는 동안 한국의 해외입양 제도의 참담한 운영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부터 이윤을 쫓아 부를 불리는 과정의 민망함 또한 여실히 확인된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의 증언을 통해 내다보는 해외입양의 현실을 보다 보면 영화가 이를 '홈쇼핑', '국가 차원의 인신매매'에 빗대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부족하나마 몇 차례 언론과 영화, 애니메이션, 다른 다큐를 통해 조명된 바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해외입양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일지 않았고 관련 법이나 대책은 제대로 수립된 적 없다. 법원 또한 국가의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정부... 바뀌어야만 한다
영화의 백미는 해외입양아들이 참석한 어느 간담회 자리다. 코로나19 국면 가운데 해외입양아에게 보내진 마스크를 받고 도리어 모멸감을 받았다는 어느 이가 격렬하게 제 입장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그녀를 향해 국가의 노력이 그렇게 가닿아 반가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극장 곳곳에서 실소가 비어져 나오는 민망한 순간이다. 그와 같은 태도, 자세, 공감력이 오늘의 문제를 만들었음을 관객이 비로소 알게 되는 장면이다.
입양, 그것도 해외입양이 어느 누구의 삶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또 그를 위한 제도를 완비하는 것이 혹시 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해외입양아를 위한 길이란 걸 우리의 정부와 법 제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로부터 예고됐던 문제가 거듭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자리를 잡았다 해도 제 뿌리를 찾으려는 이들이 거듭 좌절하고 절망한다. 정부와 책임 있는 기관들은 책임을 면피하기에 급급하다.
< K-Number >는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며 자화자찬하는 한국의 민망한 얼굴을 내보인다. 개선해야 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제도며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한다. 인간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조차 지려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면이라는 걸 더 많은 이가 알아야 한다고 외치는 작품이다. 나는 그와 뜻을 같이 한다.
▲ K-Number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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